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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 the STAGE] 일상성을 위장한 비일상의 대화

최종수정2018.09.30 14:00 기사입력2013.05.05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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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13월의 길목’ 구태환 연출

▲ 연극 '13월의 길목'의 구태환 연출을 대학로 카페에서 만났다.     © 송현지 기자

▲ 연극 '13월의 길목'의 구태환 연출을 대학로 카페에서 만났다.     © 송현지 기자


 
(뉴스컬처=황정은 객원기자)
바람처럼 들어왔다 바람처럼 지나갔다. 흡사 '13월의 길목'과 유사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특유의 빠른 언어와 호탕한 목소리로 좌중을 압도했다.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대답하는 그에게서 작품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느껴졌다. 그렇게 구태환 연출은 강렬한 여운과 확실한 존재감을 심어준 채 홀연히 사라졌다. 호탕하면서도 묵직하고, 빠른 템포 속에서도 핵심을 쥐고 가는 그는 연극 '13월의 길목'이 있어 행복했노라고, 이야기했다.
 
# 결이 다른 연출가
 
연극 '13월의 길목'은 삶과 죽음, 채워있음과 비워있음에 대한 단상을 담고 있다. 인생의 변두리에 존재하는 보잘 것 없는 인물들의 보잘 것 없는 이야기를 간직한 채 관객과 조우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구조를 해제하며 사건과 갈등의 부재를 앞세우고 있는 만큼, 기승전결이 치밀한 구조주의 연극이 주류를 차지하는 현 연극계에서 이 작품은 생소할 수밖에 없다.
 
2008년도였다. 최창근 작가가 구태환 연출에게 작품을 들고 직접 방문한 것은. “결이 다른 사람인 것 같아 희곡을 맡긴다”는 작가의 한마디와 함께, 작품의 시작과 끝을 오롯이 받아든 구 연출은 첫 대면한 '13월의 길목'에 대해 “해독할 수 없는 암호 같았다”고 이야기했다.
 
“가장 먼저 이 작품이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될 수 있을까 싶었어요. 솔직히 이야기해서, 처음에는 정말 모르겠더라고요. 제 능력으로는 풀리지 않더라고요. 때문에 작품을 올리기 전 배우들과 모여서 이야기를 많이 했죠. 작가님과도 충분한 대화를 거친 후 일정 부분은 조율하고 극 이름도 ‘13월의 길목’으로 바꿨어요.”
 
이 작품의 원 제목은 ‘멀리서 오는 사람들: 우울증을 앓는 외로운 영혼들을 위하여’다. 그러나 최창근 작가로부터 구태환 연출에게 작품이 넘어가면서 극의 이름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카페, ‘13월의 길목’으로 바뀌었다.
 
13월의 길목. 두 번을 연이어 읽게 하는 이름이다. 별 생각 없이 접하면 익숙한듯하지만 다시 한 번 돌아보면 매우 생소한 조합이다. 구 연출은 “13월은 없다. 더 정확히 이야기 하면 있을 듯도 하고 없을 듯도 한 시간이다.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처럼, 제목 역시 잡힐 듯 잡히지 않는 ‘13월의 길목’으로 바꾸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 수많은 언어, 신경 쓰지 마라
 
연극 '13월의 길목'은 배우의 대사가 중심적으로 돋보이는 대사극이다. 뚜렷한 갈등도 사건도 존재하지 않은 채 비주류 사람들의 현학적인 이야기가 무대의 전체를 이끌어 간다. 기타 반주에 맞춰 시를 낭송하고, 자신이 맡았던 여주인공의 대사를 독백하며, 혜성같이 나타나 탱고를 추는 비일상적 인물들의 언어인 만큼 작품의 대사는 매우 시적이고 섬세하다.
 
더불어 바스키아, 랭보, 세고비아, 보르헤스 등 유명 작가와 시인의 이름이 난무하고 있어 일부 관객들은 관극 후 어려운 작품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구 연출 역시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작품의 특징은 기존의 연극적 질서와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점이에요. 기존의 작품들은 기승전결이 잘 짜여 있지만 이건 그렇지 않죠. 저도 처음에 힘들었던 점이 바로 그 부분이었어요. '13월의 길목'은 이야기가 나열된 상태예요. 상호 유기적인 이야기도 없고 사건도 없죠. 관객들에게는 난 데 없는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거예요. 더 부정적인 시선으로 본다면 인물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만 하다가 끝나는, ‘그런’ 작품일 수 있는 거죠.”
 
▲ 연극 [13월의 길목](연출 구태환)의 장면 중 주인공들이 첫눈이 내리는 창밖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극단 수

▲ 연극 [13월의 길목](연출 구태환)의 장면 중 주인공들이 첫눈이 내리는 창밖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극단 수


  
작품은 작가가 선택한 소재만큼이나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 역시 기존의 연극과는 다소 달랐다. 관객에게 배우의 뒷모습을 자주 노출한다거나, 대사를 동시에 주고받아 결국 어느 대사도 정확히 듣지 못하게 한 점이 그것이었다. 이것들은 모두 각각의 상징을 담고 있다. 뒷모습은 우리 인생의 이면이며, 관객이 알아들을 수 없는 대사들은 연출의 의도가 내포된 언어의 무의미화다.
 
“기존의 연극들이 인물의 정면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 작품은 의도적으로 뒷모습을 계속 보여주죠. 관객을 등 진 배우는 자신의 대사를 계속 이어나가요. 관객은 답답하죠. 배우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하지만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니 그저 추측과 상상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할 뿐이에요. 우린 과감하게 뒷모습으로 이면의 모습을 보여주기로 했어요. 인물의 시선이 닿는 곳에, 관객의 시선도 닿길 원했던 거죠.”
 
대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언급되는 것 역시 수많은 언어에 얽매이지 말라는 연출의 배려(?)다. “작품 초반을 빨리 거쳐 본론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 때 생각난 것이 대사를 함께 구사하자는 거였어요. 모든 대사를 다 듣기 힘들 수 있겠지만 반면 관객들이 많은 언어에 너무 신경 쓰지 않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어요. 언어의 함정에 빠지지 말라는 의미죠.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언어’가 아닌 ‘시선’이거든요. 평소 주의 깊게 보지 않았던 것들을 조망하고, 그것으로 인간의 진실된 모습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어요.”
 
# 이유 없는 인물들을 바라보는 이유
 
'13월의 길목'은 언뜻 보면, 매우 일상적이다. 하지만 한 단계 더 들어가면 결코 일상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호박마차를 보았냐는 주인공들의 질문이 그러하고, 첫 대면한 사람들 간에 속내를 경계 없이 드러내는 것 역시 그렇다.
 
사실 작품은 일상을 담는 것에 관심이 없다. 일상을 교묘하게 위장한 비일상의 나열인 셈이다. 참으로 묘하다. 인물의 행동과 대사에는 관객과의 공감대가 없는 듯 보이지만, 모든 대사와 행동에서 관객은 자신을 투영할 수 있다. '13월의 길목'은 그런 작품이다. 멀리 있는 듯하나 가까이 있고, 비어있는 듯하나 가득 찬. 죽음을 이야기하는 듯하나 삶을 이야기하는 모호하면서도 명확한 이야기인 것이다.
 
구태환 연출은 이 작품이 모든 의무와 당위성에서 반 걸음 초월한 상태라고 이야기했다. 과연 이 작품을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고민도 했지만, 모든 연극이 모든 관객에게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의무감 역시 불필요하다고 느꼈다. 관객의 몇몇만이라도 의도를 수용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작품을 보고 한 관계자가 우스갯소리로 그러시더군요. 연출이 너무 예술한다고요. (웃음) 한쪽 좌석을 아예 못쓰게 했으니 그런 말이 나온 거죠. 이미 대중적인 흥행에서는 다소 초월한 상태라고 보면 돼요. 관객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한 작품이 아니에요. 모든 관객에게 눈물을 요구하지도 않고, 강제적인 감동을 강요하지도 않아요. 모두를 눈물 흘리게 하는 것만이 연극의 모습은 아니잖아요.”
 
보편화된 연극적 이유를 배제한 채, 오직 존재의 가치만으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13월의 길목'. 사실 이 작품을 보는 내내 ‘왜’라는 작품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지만, 이내 그 질문에는 다시 ‘왜’라는 물음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온다. ‘인물들은 왜 이런 대화를 하는 것일까’ ‘저들의 관계는 왜 명확히 드러나지 않을까’ 등 관객은 수많은 물음을 품지만, 돌아오는 연출의 대답은 오직 하나다.
 
‘그것을 왜 궁금해 하는가!’
 
그들은 그저 카페에 모이고 싶었을 뿐이며, 이들의 대화는 일상성 없이 흩날릴 뿐이다. 사실 우리의 삶에서 당위성은 얼마나 중요한 했던가. 때로는 누구도 납득하지 못하는 일을 마음이 먼저 결정 내려, 우리들의 인생이 지금에 이르게 되지 않았는가. 감정이 이유보다 우선했던 경우가, 우리에겐 훨씬 많았다.
 
이것이 관객이 작품 속 이유 없는 인물들의 비일상을 들여다보게 되는 이유다. 현실에 발을 딛고 있지만 결코 현실적이지 않고, 현재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결코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들. 그럼에도 작품이 갖는 힘은 객석을 치유한다는 점에 있다.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이들의 현학적이면서도 알 수 없는 대화들이 어느새 마음을 따스하게 더듬고 있는 순간을 발견하게 된다.
 
# 4년 후, “작품 다시 올릴 자신 생기더라”
 
구태환 연출은 이 작품을 일컬어 치유의 연극이라고 이야기했다. 우울한 사람들로부터 위로를 얻는다니. 과연 가능이나 할까, 싶지만 놀랍게도 그것은 가능했다.
 
“이 작품을 명명(命名)하자면 치유의 연극이라고 할 수 있어요. 위로의 연극인 셈이죠. ‘당신이 힘든 것을 우리도 안다’고 이야기하고, ‘그러니 죽자’가 아니라 그것을 극복한 상태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핵심이죠. 눈이 내리는 것을 보며 관객은 왠지 모를 위로를 받아요. 실제로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서로를 위로하는 사람들이지, 결코 반목하지 않거든요.”
 
작품이 주는 위로와 치유를 언급하던 그가, 조심스럽게 과거의 고백을 내놓았다. 2009년 첫 공연이 올랐을 때의 이야기였다. “사실 2009년에 이 작품을 준비하는 데 제 마음이 이상해지더라고요. 스스로 준비가 덜 돼서 그랬는지 연극을 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생기면 어떡하나 싶었어요. 그 땐 저도 배우들도 우울하면서 감정이 정말 이상했거든요. 특히 눈이 펑펑 오는 겨울이었던지라… (웃음).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은 저도 단련이 됐고, 이 작품의 핵심이 죽음이 아니라 삶(生)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 때 작품을 확실히 밀고 나갈 자신이 생긴거죠.”
 
'13월의 길목'은 삶과 죽음을 묻고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관객의 대답을 기다린다. 굳이 그 답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더라도, 관객 스스로가 나름의 답을 얻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찬란한 봄볕이 모든 세상을 압도하는 지금과, 잘 어울리는 연극이다.

 
[프로필]
이름: 구태환
직업: 연출가 및 청주대학교 연극과 교수
경력: 2005 서울연극제 인기상 수상, 2006 거창 국제연극제 작품상, 희곡상 수상, 2007 한국 연극평론가 협회 선정 BEST 3  수상, 2008 대한민국 연극대상 무대예술상
작품: '나생문', '북어대가리', '이름을 찾습니다', '친정엄마', '마땅한 대책도 없이', '심판', '클로저', '벚꽃동산', '고곤의 선물', '친정엄마와 2박3일' 외 다수
 
(감성을전하는문화신문=뉴스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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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객원기자 hwangje5@gmail.comlt;저작권자 ⓒ 뉴스컬처(http://www.newsculture.tv).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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