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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 The Stage] 너는 질문을 하거라, 나는 연극을 할 테니

최종수정2018.09.27 16:18 기사입력2014.11.04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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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너는 똥을 누고 나는 물고기를 누었다’ 배요섭 연출

▲ 연극 ‘너는 똥을 누고 나는 물고기를 누었다’의 배요섭 연출을 국립극단에서 만났다.(뉴스컬처)     © 황정은 기자

▲ 연극 ‘너는 똥을 누고 나는 물고기를 누었다’의 배요섭 연출을 국립극단에서 만났다.(뉴스컬처)     © 황정은 기자


 
(뉴스컬처=황정은 기자)
얼굴만 접했을 뿐인데 왠지 모르게 마음에 평온이 찾아오고 깨달음을 얻은 기분이 든다. 세상의 속도에 맞추기 위해 헐레벌떡 뛰어와 그의 앞에 앉았건만 주위의 공기까지 부드럽게 만드는 그의 미소는 바쁘게 살아가는 나 자신을 괜스레 반추하게 했다. 아, 이것이 바로 수행하는 자 앞에 선 기분이란 말인가.
 
배요섭 연출. 포스텍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돌연 연극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어 한예종 연극원에 다시 입학한 연극인. 물리학도의 머리와 연극인의 가슴을 동시에 품은 그에게서는 마치 정반합의 관계처럼 깨달음의 작품이 나온다.
 
이전 작 ‘바후차라마타’가 그랬고 이번 국립극단 무대에 오르고 있는 ‘너는 똥을 누고 나는 물고기를 누었다’가 그렇다. ‘바후차라마타’에서는 성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을 재정비했고, ‘너는 똥을 누고 나는 물고기를 누었다’에서는 선과 악 등 속세에서 뚜렷하게 이분화 됐다고 여겨지는 개념의 경계를 해제시켰다.
 
그를 만났다. 국립극단의 모든 빨강도 온화한 미색으로 물들여 버릴 듯, 커다란 미소를 머금은 그는 연극이라는 수행으로 이미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듯 했다.

현대시대에 삼국유사 스님들이 살고 있다면
 
▲ 연극 '너는 똥을 누고 나는 물고기를 누었다(연출 배요섭)’공연장면.(뉴스컬처)     ©사진=국립극단

▲ 연극 '너는 똥을 누고 나는 물고기를 누었다(연출 배요섭)’공연장면.(뉴스컬처)     ©사진=국립극단


 
연극 ‘너는 똥을 누고 나는 물고기를 누었다’는 스님들의 이야기다. 혜통과 혜숙, 혜공, 원효, 월명사, 사복, 욱면 등 총 일곱 명의 스님이 등장해 지금의 현실을 그들의 시선으로 풀어낸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스님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상식으로 선뜻 이해할 수 없다. 사물의 현상과 이치를 반추하고 반추하며, 종국에는 자신을 비우고 비워 새로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그들의 대화는 우리에게는 어려운 이야기다. 하지만 그 안에는 거대한 세계가 담겨 있다.
 
배요섭 연출은 국립극단으로부터 삼국유사에 대한 작품을 의뢰받은 후, 스님들의 이야기로부터 우리의 모습을 새롭게 볼 수 있을 것 같더라고 이야기 했다.
 
“처음에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삼국유사를 찬찬히 읽어보니 마치 불교를 근간으로 한, 나라의 건국사 같더군요. 결국 불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겠구나 싶었어요. 그렇다면 거기서 말하는 불교란 뭘까 싶었죠. 그 때 스님들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죠. 재미있는 사연을 가진 스님들이 많으니까 그 분들로부터 출발하면 작품이 나올 수 있겠다 싶었어요. 사실 대중에게는 원효가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 보다 내공이 깊은 스님들이 굉장히 많아요. 재미있더라고요. 그런 스님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 어떤 말들이 오고 갈까 싶었어요.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을 어떻게 보실까, 싶은 마음으로 이 작품을 만든 거예요.”
 
각기 다른 시대에 살아있던 스님들이 모인 곳이니 장소 역시 현실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어디쯤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경계의 공간. 더욱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시공간의 구분 자체가 의미 없는 공간이다. 이토록 모든 경계가 해제된 공간에 있는 만큼 작품에 등장하는 스님들은 스님이자 광대, 곧 트릭스터(trickster)다.
 
“트릭스터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존재해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인물이죠. 때문에 무대는 이런 존재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어요. 한편 영화 ‘맨 프롬 어스(The Man from Us)’ 에 나오는 올드맨처럼 몇 천 년을 살아온 그런 존재가 아닐까 싶기도 했죠. 여러 시간, 여러 시대, 그리고 여러 삶을 겪어 왔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는 선과 악의 개념이 우리와 다를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 좋고 나쁨, 아름다움과 추함 등 모든 이분법적 개념이 그에게는 결코 이분법적이지 않을 수 있겠다 싶었죠. 이분법, 그 이상의 관점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스님의 탈을 쓴 광대다. 그렇기 때문일까. 작품의 등장부터 스님들의 출발은 범상치 않다. 관객을 향해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과장된 표정과 말투 등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희극적이다.
 
희극적인 광대, 그리고 스님이 바라보는 세상. 그 세상을 이야기하기 위해 배요섭 연출은 지금 사회적으로 가장 이슈가 되는 사건들을 작품에 담았다. 싱크홀(sink hole), 팔레스타인 분쟁 등이 그것이다. 작품에서 스님들은 뚫린 구멍을 보고 놀라기도 하며 몸싸움을 하면서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서로에게 협박을 한다. 이처럼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화두는 배우들이 가져온 결과다. 배요섭 연출이 배우들에게 사건을 찾아오도록 하고 그 요구에 맞춰 배우 각자가 화두를 꺼낸 것이 바로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이슈들이다.
 
이것과 저것, 세상이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을까
 
“배우들에게 지금 우리사회에서 일어나는 일 중 가장 관심 있는, 그리고 말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찾아오라고 했어요. 자료를 조사한 후 모두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게 했죠. 이 과정을 여러 번 거쳤어요. 헌데 한 친구가 4대강에 대해 조사를 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자신은 이 일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면서요. 조사를 해서 발표를 했는데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의 의견만 가져온 거예요. 그래서 반대의 의견도 모두 조사 해오라고 한 후 다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후 그 배우의 생각이 바뀌어 있더군요. 자신은 4대강 사업이 당연히 안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지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면서요. 물론 뭐가 옳다고는 할 수 없지만 반대 의견을 접하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사건의 핵심을 찾게 되고 분쟁을 위한 분쟁이 아닌 가장 좋은 길로의 모색 방법을 찾아내기 시작했어요. 의미 있는 과정이죠.”
 
싱크홀 장면의 경우 가장 많은 영향력을 미친 사례였다.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과테말라에서 20층 건물만한 높이의 구멍이 뚫린 사진을 보게 됐다. 연출이고 배우고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별 상상을 다 하기 시작했다. 현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장면을 만들고, 다시 이야기를 나누고 영감을 얻는 과정을 통해 지금의 장면을 만들었다.
 
“장면들마다 시작한 이유가 있어요. 하지만 장면에 대한 의미는 계속 변화하죠. 공을 굴리며 막대기로 공간을 움직이는 것은 제가 볼 때 우주적인 질문을 던지는 과정으로 봐요. 그 장면을 보면서 매번 나의 근원이 무엇인지 많은 질문을 하게 됩니다. 어린아이들이 싸우는 장면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으로부터 도출됐죠. 작품을 준비하면서 팔레스타인 어린이와 이스라엘 어린이가 함께 다니는 학교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 학교가 두 민족의 분쟁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서부터 출발하면 되겠구나 싶었죠. 바로 이 지점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의미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었어요. 때문에 해결을 보여주기보다 충돌의 지점으로 장면을 남겨놨죠.”
 
어린 시절에는 모든 것이 다양한 감각과 생각으로 다가오지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입력되는 정보는 매우 단순한 형태를 띤다. 너와 나, 내 것과 네 것, 이편과 저편 등 주로 이분법적인 사고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 거대한 세상을 꼭 그렇게만 구분 짓는 게 과연 올바를까.
 
“세상의 많은 문제들이 이분법적으로 보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생각이 바뀌는 순간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해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무기를 들고 혁명을 외치지만 그것의 근본에는 결국 자신이 옳다는 생각이 있다고 봅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 결국 자신만이 옳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태도가 해결되지 않는 한, 우리의 모습은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바로 이런 관점으로 작품에 접근했죠. 관객에게는 어떻게 전달될지 모르겠지만요.”
 
작품을 만들면서 선(禪)에 대한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고 했다. 결국 선은 불교의 근원인 셈인데, 인도에서 생겨난 개념이지만 중국의 장자의 사상과 매우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공부를 할수록 장자와 선은 정말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말만 다르지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선의 관점에서 이 세상을 봤을 때 과연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싶더군요. 그것을 위해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공안의 관점에서 시작했어요. 세상에서 일어나는 불가해한 사건들을 선택하도록 해서 선의 관점에서 다시 관객들과 나누면 좋겠다 싶었죠. 그 과정을 통해 배우가 각각 자기만의 질문을 가져가기를 바랐습니다. 그 질문으로, 삶의 근원적인 질문을 가져가기를 원했어요. 그렇다면 배우에게는 이 공연 자체가 하나의 공안이 되겠죠.”
 
그렇기에 무대를 구현하는 과정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의 관점에서는 하나의 이미지가 그저 이미지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사건과 의미를 뛰어넘는 또 다른 이미지로 나타난다.
 
“불교적인 물음은, 이것이 물병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물병이 아니다, 라고 이야기 한 후 다시 물병이다, 라고 말하는 과정이에요. 이 때 같은 말과 같은 대답을 하지만 그것은 전혀 다른 대답이에요. 이번 작품은 일종의 그런 과정이에요. 하나의 사건을 배우들이 어떻게 드러내는가, 그 점이 중요했어요. 본래의 이미지를 뛰어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싶었어요. 그렇게 작품이 만들어졌고요.”
 
세상과 존재에 대한 질문이 나의 작품
 
▲ 연극 '너는 똥을 누고 나는 물고기를 누었다’의 배요섭 연출은 강원도 화천에 집을 짓고 연극을 하며 산다. 그는 "하나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삶의 지속되는 공간 안에서 연극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화천에서 만들고 싶어요."라고 말했다.(뉴스컬처)      © 황정은 기자

▲ 연극 '너는 똥을 누고 나는 물고기를 누었다’의 배요섭 연출은 강원도 화천에 집을 짓고 연극을 하며 산다. 그는 "하나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삶의 지속되는 공간 안에서 연극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화천에서 만들고 싶어요."라고 말했다.(뉴스컬처)      © 황정은 기자


 
잡힐듯 말듯 하다. 배요섭 연출. 그를 알 것 같다가도 대화를 나누면 다시 미궁으로 빠져 버린다. 알 듯 하면 그의 질문이 물음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는 하나의 질문이다. 거대한 물음표다.
 
“저는 세상에 대해 계속 질문을 하는 것 같아요. 제가 고등학교 때 까지는 교회를 잘 다녔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모든 것에 의문이 생겨나면서 종교에 대한 부분까지 물음표로 남더군요. 그 때부터 제 삶이 완전히 변했어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건들이 너무나 이상하게 느껴지고 납득할 수 없는 모습으로 다가왔죠. 그런 생각이 한 번 들기 시작하면서 세상일들이 제게 다 그렇게 보이더라고요. 질문이 끊이지 않아요. 저건 왜, 나는 왜. 많은 질문들이 제 주위를 돌아다녀요. 그리고 그 질문들이, 제가 작품을 하게 하는 원동력인 것 같아요.”
 
그의 작품 중 ‘앨리스 프로젝트’가 있다. 당시 초등학교 아이가 성적 비관으로 자살을 한 사건에서 충격을 받아 쓴 작품이다. 당시 그에게 그 사건은 충격이자 동시에 질문이었다. 어린 시절 읽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머무는 나라가 이상한 곳이 아닌 우리의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사건과 하나의 이미지, 이 둘을 조합해 만든 작품이 ‘앨리스 프로젝트’ 였다.
 
혹자는 이러한 그의 작품을 보고 배요섭 연출이 사회적인 발언을 작품에 담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와 정 반대다. 그는 확신에 찬 발언을 작품에 담는다기보다 세상에서 겪는 혼란과 혼돈을 연극에 담는다. 그는 연극이 수행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수행 같은 이번 작품을 통해 그는 과연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까.

“깨달음이라는 것이, 잘못하면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깨달음은 어떤 거창하고 대단한 게 아니라 진정한 질문을 갖게 되는 순간이 아닌가 싶어요. 질문조차 갖고 있지 않아서, 사람들은 고통스럽고 힘들어 하잖아요. 고통의 근원에 대해 들여다 볼 마음을 먹는 순간 누구나 깨닫게 되는 거죠. 그런 관점에서 이 작품은 제게 일종의 치유의 과정이에요. 모든 게 한 번에 해결되지는 않지만 매순간 경험하는 깨달음을 통해 제 삶이 도약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현재 강원도 화천에 집을 짓고 연극을 하며 산다. 배우들 모두 그와 함께 화천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지역 연극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이야기 했다. 손수 지은 집에서 아내와 딸과 함께 사는 기쁨,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연극을 할 수 있다는 감사함. 이것이 그의 삶이다. 이런 삶에서는 수행을 하지 않더라도 득도의 경지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너무나 평온하고 행복해서 말이다.
 
화천으로 들어가 연극을 하는 그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연극은 과연 무엇인지. 고민 없이 대답한다. 삶, 이라고. 삶을 유지해주는 게 연극 같고 연극을 유지해 주는 게 제 삶인 것 같아요. 살아있으니 연극을 하죠. 함께 연극을 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다는 게 감사해요. 우리가 처음 연극을 시작했을 때의 그 마음이 변질되지 않고 계속 함께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가족 처럼요. 하나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삶의 지속되는 공간 안에서 연극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화천에서 만들고 싶어요.


[프로필]
이름: 배요섭
직업: 연출가
경력: 연극 '낭천별곡', '바후차라마타', '맨발땅 이야기', '고통에 대한 명상', '쏭노인 퐁당뎐', '우리가 하게 된다면 하려고 했던 것들', '내가 그랬다고 너는 말하지 못한다', '앨리스 프로젝트', '할머니의 그림자 상자', '그림자 그림자', '노래하듯이 햄릿', '하륵이야기' 등
수상: 2005 PAF 연출상, 2002 아시테지 어린이 연극상 극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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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기자 hjuun@naver.com<저작권자ⓒ뉴스컬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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