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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인터뷰]'우상' 설경구 "중식의 출발은 습득된 결핍에서"

최종수정2019.03.15 17:39 기사입력2019.03.15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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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인터뷰]'우상' 설경구 "중식의 출발은 습득된 결핍에서"

[뉴스컬처 이이슬 기자]

설경구의 얼굴은 신비롭다. 늘어선 주름 사이로 세월의 무게가 비치고, 시선을 빼앗길 즈음 슬픈 눈망울이 들어온다. 미소에 비치는 서늘한 기운과 회한은 누구라도 안으로 끌어들이고 만다. 이처럼 그에게는 말로 규정하기 어려운 힘이 분명 있다. 그 힘은 어떤 작품과 배역 앞에도 흔들리지 않게 해준다. 설경구는 영화 '우상'(감독 이수진)에서 갑자기 아들을 잃은 중식으로 분해 한(恨)을 폭발시킨다. 점퍼를 입고 트럭을 몰며 질주하는 중식의 모습은 아들을 잃고 어찌할 바 몰라 힘겨워 하는 그 자체다. 분노했고, 오열했다. 피해자였지만, 때론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설경구는 이처럼 어려운 중식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 유중식은 집착으로 잘못된 선택을 계속한다. 이해가 안 되는 인물이었다고 했는데, 왜 선택을 했는가.

책이었다. 왜 유중식이 그런 선택을 계속하나 궁금했다. 알고 싶더라. 결국 이해가 됐고 하게 됐다. 오히려 궁금했다. 사람은 모두 다르지 않냐. 잘못된 선택을 하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이름에도 의미가 있다. 중식은 점심, 아픈 아들인 부남이는 유부남이라는 뜻이다. 눈이 가는 인물을 따라가다 보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은 영화다.


- 일상적으로 표현한 대사 톤이 인상적이다. 유중식을 표현할 때 중점을 둔 부분은.

중식이 속에 부남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중식이는 누나와도 가까운 사이는 아닌 거 같다. 의지할 수 있는 건 부남이다. 철물점과 동네에 고립된 채 살아가던 인물이다. 중식은 부남이랑 집에서 노래하고 친구처럼 춤추며 놀 때도 함께하는 존재다. 아들의 죽음을 확인하고 나서도 중식이 안에는 부남이가 있다. 중식이가 흥분하면 아이 같은 목소리가 나온다. 이 역시 부남이를 표현하고 싶었다. 자신도 모르게 닮아갈 것 같다. 습득된 결핍도 있다고 봤다. 뭔가를 해결해야 하는 데 방법을 모르는 아이들처럼.


-탈색 변신도 인상적이다.

중식이가 에어컨 설비 출장을 갈 때도 부남이를 데려갔을 거 같다. 아빠를 잘 찾을 수 있고, 또 부남이를 잘 찾을 수 있도록 머리색을 맞춘 거다. 시신 확인할 때도 중식이는 가장 먼저 머리카락을 본다.


[NC인터뷰]'우상' 설경구 "중식의 출발은 습득된 결핍에서"

- 뿌리염색은 몇 번이나 했나.

4개월 촬영인 줄 알고 탈색했는데. (웃음) 뿌리염색을 계속했다. 뿌리가 조금만 올라와도 검게 변한다. 극 연결이 튀니까 바로 염색을 해야 했다. 한 달에 서너 번 촬영한 적도 있는데 하도 염색을 해서 머리카락이 낙엽처럼 툭툭 떨어졌다.


- 자식을 잃은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웠겠다.

당해보면 안 되지만 당해봐야 알 것 같다. 중식은 일반적인 집착을 넘어섰다. 맹목적이다. 세 인물의 공통점은 맹목적이라는 것이다. 련화는 괴물인 줄 알았다. 중식은 소박하고, 그나마 설득력 있다. 누군가에 의해 선택을 계속했어야 했다. 길 위에 던져진 거다. 그래서 계속 리액션을 했는데, 이런 형태의 메인 캐릭터는 처음이었다.


- 한석규와 처음 만났다.

‘우상’을 선택한 이유는 이수진 감독님과 촘촘하게 얽힌 책, 한석규였다. 롤모델 같은 사람이었다. 90년대에는 오로지 투자가 되는 배우가 한석규였다. 꽤 혼자 버텼던 기간이 있었다. 당시엔 무조건 한석규한테 책이 갔다. ‘우상’ 현장이 쉽지 않았는데 (한)석규 형이 아울렀던 거 같다. 분위기 메이커였다.


- 중식의 등장 장면이 인상적이다. 유중식처럼 살면서 자신을 속일 때도 있나.

작품을 선택할 때도 그런 거 같다. 내가 나를 선택하고 이해가 됐을 때 결정을 하는 거다. 뭔가 하고 싶은 게 있을 때. 아! 이건 다르게 표현할 수 있겠다 결정한다.


- 이번에도 자식을 잃은 부모 역할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감정의 진폭이 크다고 생각했다. 또 다르게 표현해보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생일’에서는 큰일을 당했는데 이야기 중심으로 못 들어가고 참사가 벌어진 날, 가족을 못 지켰다는 죄책감을 관객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다 접근 방법이 달랐다.


- 어째서 어려운 작품만 하는가.

(웃음) 이것도 선택이다. 연기에 다르게 접근하고 싶은 욕심이 크다.


[NC인터뷰]'우상' 설경구 "중식의 출발은 습득된 결핍에서"

- ‘불한당’을 통해 지천명 아이돌이 된 소회는.

제 직업이 배우인데 지천명 아이돌만 계속하고 싶지는 않다. 겹쳐지는 얼굴은 안 하고 싶은 게 배우다. 이번에도 머리카락을 탈색하라고 했을 때 정말 좋았다. 탈색에 태닝까지 했다.


- ‘불한당’처럼 멋있는 배역을 다시 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

멋있는 거 안 들어오던데? (웃음) 변상현 감독 덕이다. '불한당'이 연기의 전환점이 됐다. ‘이렇게도 연기를 할 수 있구나!’ 느꼈다. 이후에 연기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그렇게 작품을 하는 것도 극대화할 수 있는 한 방법이라는 걸 느꼈다.


- 또 변신을 볼 수 있나.

'킹메이커' 촬영을 3월부터 시작한다. 조금 부끄러운 말인데 변상현 감독한테 '무조건 멋있게 찍어줘'라고 했다. 이번에는 시크하게 답변을 하더라. (웃음)


사진=CGV아트하우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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