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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리뷰]창작극 '함익', 죽어있는 삶으로 그려낸 살아있는 메시지

최종수정2019.04.16 08:00 기사입력2019.04.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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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극 '함익' 공연 장면. 사진=서정준 객원기자

창작극 '함익' 공연 장면. 사진=서정준 객원기자


[뉴스컬처 이솔희 기자] "사느냐 죽느냐 그것은 문제도 아니다. 살아있는가 죽어있는가. 그것이 문제다."


400년 전 햄릿이 2019년 대한민국의 함익으로 부활해 살아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창작극 '함익'은 고전 '햄릿'을 비틀고 뒤집어 고독한 한 인간의 내면을 파고든다.


창작극 '함익'(연출 김광보, 제작 서울시극단)은 셰익스피어의 고전 '햄릿'을 새로운 시선으로 재창작한 작품으로, 재벌 2세 30대 여성이자 대학 연극과 교수인 함익의 마음 속 욕망을 그의 내면의 분신인 익을 통해 그려낸다.


'함익'은 '햄릿'을 새롭게 탄생시킨 작품인 만큼 독특함으로 가득찼다. 그 중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익'의 존재였다. 익은 함익이 보는 환각이자 그의 내면으로, 현실에서 표출하지 못하는 함익의 복수심과 욕망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함익의 환상에 따라 다양한 인물로 분하는 익은 함익의 유일한 탈출구가 돼 그를 위로한다. 함익과 익은 한 몸처럼 행동하기도, 익이 객관화 되어 함익에게 조언과 충고를 전하기도 하며 함익의 마음 속 고뇌를 무대 위에 펼쳐낸다. 노란 숏컷을 한 익의 모습은 비주얼 적으로도 독특함을 이어간다.


이러한 익을 마주하는 창구인 거울 역시 눈길을 사로잡았다. 함익과 익은 무대 위에 위치한 거울을 통해 마주보고, 거울 너머의 공간을 오고 가며 함익의 내면에 드나든다. 이와 더불어 객석을 향하고 있는 거울은 관객을 비추며 보는 이의 내면까지 들여다 보게 만든다.


창작극 '함익' 공연 장면. 사진=서정준 객원기자

창작극 '함익' 공연 장면. 사진=서정준 객원기자


햄릿이란 이름의 원숭이 역시 짧은 등장임에도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했다. 원숭이 햄릿은 가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독차지 하는 존재다. 함익은 그런 원숭이 햄릿에게 극도의 거부감을 느낀다. 결국 함익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끝에 원숭이 햄릿을 죽이고 만다. '햄릿'을 죽이는 '함익'의 행동은 어쩌면 자기파멸을 향해 가고 있는 함익의 모습이 아닐까.


시종일관 어둡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는 이 작품에서 함익이 가르치는 연극과 학생들은 현실적인 모습으로 유쾌함을 선사한다. 동시에 햄릿 속 극중극 형식을 차용해 극 중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이 장면에 등장하는 랩은 뜻밖의 신선함으로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이처럼 독특한 장치들 속에서 주인공 함익의 서사가 진행된다. '햄릿' 공연의 지도를 맡게 된 함익은 연기를 향한 열정을 지닌 복학생 연우를 만나고, 자신의 내면이 흔들리고 있음을 느낀다.


그저 연우가 근무하는 편의점을 우연인 척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설레어 하던 함익은 이내 연우를 위해 공연의 주인공까지 바꿔 버리는 등 잘못된 방향으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한다.


이러한 함익의 행동은 단순히 연우의 사랑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닌, 억압된 삶 속 처음으로 느끼게 된 자신의 감정을 지키기 위한 갈망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하지만 표현하는 법을 몰랐던 함익의 진심은 연우를 향한 집착으로 바뀌었고, 결국 외부를 향한 광기로 표출돼 비극을 맞게 된다.


햄릿으로 태어나 줄리엣을 꿈꿨던 여자 함익. 구두에서 내려온 함익은 그토록 갈구하던 연우마저 뒤로 한 채 익과 함께 무대 뒤편으로 걸어간다. 죽어있는 삶을 살았던, 그래서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놔버린 함익의 마지막 뒷모습은 관객들에게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함익'은 오는 28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된다.



이솔희 기자 sh040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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