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 the STAGE] 나는, 작가가 되고 싶다

최종수정2018.09.30 13:32 기사입력2013.06.01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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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그게 아닌데' 이미경 작가

▲ 연극 '그게 아닌데'의 이미경 작가를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 황정은 객원기자

▲ 연극 '그게 아닌데'의 이미경 작가를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 황정은 객원기자


 
(뉴스컬처=황정은 객원기자)
지난 2012년은 누가 뭐래도 '그게 아닌데'의 해였다. '2012년 동아연극상‘ ’2012 대한민국 연극대상‘ ’2012 올해의 연극 베스트 3‘ 등에서 작품상과 연출상, 연기상을 대거 수상하며 연극계와 대중들로부터 동시에 인정을 받은 것이다.
 
대학로를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이 작품이 오는 6월 7일부터 다시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이미경 작가는 첫 번째 레이스에서 의도치 않게 많은 메달을 수확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두 번째 레이스를 앞두고 심호흡을 고르는 현재, 그녀는 작품에 대한 어떤 바람도 없다고 했다. 다만 관객과 더 깊이 소통하고 싶을 뿐이라고.
 
# 답답함, 그 끝에서 탄생한 작품
 
이미경 작가와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마흔이 넘은 나이가 믿기지 않는 앳된 얼굴, 호기심 많은 눈동자와 가끔씩 먼 곳을 응시하는 시선. 종종 골똘히 생각에 잠기다가도 이내 환한 웃음을 되찾는 그녀는, 의외로 인터뷰 중간마다 ‘답답하다’는 단어를 종종 내뱉었다. 작품 속 인물의 답답함, 자신이 처한 현실의 답답함, 혹은 이 세계의 꽉 막혀있는 현실이 그녀가 말하고 싶은 무엇인 듯했다.
 
우리는 보통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이 클수록 답답함을 호소한다. ‘내가 원한 것은 그게 아닌데’, ‘내 말의 의미는 그게 아닌데’, ‘내 마음은 그게 아닌데’ 와 같이, 당신과 우리는 매일의 일상에서 ‘그게 아닌데’를 중얼거리지 않는가.
 
이미경 작가의 작품은 우리 일상 속 대화를 싹둑 잘라 무대 위에 올려놓았다는 점에서 관객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현실의 상황과는 살짝 동떨어진 ‘그게 아닌’ 상황의 수많은 반복과 향연. 이는 답답한 심정을 눈덩이처럼 불려놓았다. 그리고 우리 눈앞의 작품에서는 조련사와 의사, 형사와 어머니가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공중에 흩뿌리고 있다.
 
이미경 작가는 ‘답답함’에서 이 작품을 집필했다고 말했다. 2005년 뉴스를 통해 던져진 ‘동물원 코끼리 대 탈출’ 사건이라는 헤드라인은 그녀의 가슴 속에 작은 공명을 울렸다.

“어느 날 TV를 보는데 코끼리가 동물원에서 탈출했다는 뉴스가 나오더라고요. 몸집이 육중한 코끼리의 달리기에 대해 사람들은 ‘위협적’이라는 뉴스를 보도했어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 코끼리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그저 이리저리 뛰어가는 것 같았죠. 어느새 사람들을 위협하는 존재로 규정된 코끼리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코끼리 입장에서는 얼마나 답답할까, 하는.”
 
▲ 연극 '그게 아닌데' 공연 장면 중.     © 뉴스컬처 DB

▲ 연극 '그게 아닌데' 공연 장면 중.     © 뉴스컬처 DB


 
작품의 모티브는 코끼리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한 명 한 명, 그녀의 작품에 사람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탈출한 코끼리의 부모라고도 할 수 있는 조련사다. 마치 영화 '마더'의 ‘아들’을 연상케 하는 인물. 자신의 부모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던 조련사는, 어린 시절부터 갇혀있는 모든 것을 풀어주는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그의 아버지를, 그의 강아지를, 그리고 창살에 갇힌 동물들을. 그 행위는 마치 현실에서 풀려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대리만족인 듯했다.
 
“조련사는 어떻게 보면 저 자신일 수 있어요. 저 자신이 알 수 없는 답답함을 많이 느끼는 것 같거든요. 개인적으로 프란츠 카프카를 매우 좋아하는데 카프카의 글을 보면 탈출을 원하는 이미지가 많아요. '변신'에서도 그레고리는 결국 벌레로 변해버리죠. 그런데 카프카가 보험회사 직원이었다고 하더군요. 먹고 살아야 하니까 낮에는 보험회사 직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작가가 돼 있던 거죠.”
 
그녀는 자신이 카프카와 비슷한 일상 속에 살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현재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재직 중인 그녀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다소의 괴리감을 느끼는 듯 했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분명 감사한 일이에요. 하지만 글에 대한 욕심이 생기면서 가끔 괴리감으로 느껴질 때도 있죠. 모든 에너지를 글에만 쏟고 싶은데, 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요.”
 
꿈이 백수라고 이야기한 그녀는, 지금의 모든 현실에서 탈출하고 싶으면서도 용기가 부족한 자신이 마치 조련사 같다고 이야기했다. 작품 속 조련사는 자신 외의 모든 것을 매인 데로부터 풀어주지만 결국 그는 갇혀버린 모습 그대로다. 이미경 작가는 이를 통해 현실에는 탈출구가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작품 안에는 다양한 정서가 녹아있다. 소통의 어려움과 고독함. 외로움과 탈출에 대한 몸부림까지.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외로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요. 악인으로 보이는 형사와 의사나 피해자라고 여겨지는 조련사 모두가 실은 각자의 의(義)를 갖고 있죠. 실제로 어떤 관객은 의사로부터 공감을 얻기도 해요. 혹은 형사에게서 동질감을 느끼는 분들도 있죠. 제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뭔가를 산출하기 위해 애쓰고 그 안에서 발버둥 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정답을 갖고 있는 인물은 없는 거죠.”
 
'그게 아닌데'는 이미경 작가가 대학원을 다니며 3장짜리 희곡으로 시작한 작품이었다. 당시 작품을 구상할 때는 교수님이나 누구에게서도 긍정적인 의견을 듣지 못했지만 그녀는 마음속에 이 작품을 간직하고 있었다.
 
“세 장짜리 작품에서 시작해 16장, 27장, 42장으로 점차 늘려갔어요. 사실 저는 작품 수정을 매우 어렵게 느끼는데 '그게 아닌데'는 정말 쉽게 고칠 수 있었죠. 처음에는 없던 ‘어머니’ 캐릭터도 삽입하고 의사의 캐릭터를 좀 더 보강하면서 작품이 전체적으로 풍성해지는 것을 느꼈어요. 사실 이 작품은 장소가 변화하는 것도 아니고 사건도 단순해서 장막으로 가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어요. 분량을 늘리다보면 지루해질 줄 알았죠. 하지만 이번 작업을 통해 많은 걸 배웠어요. 장막이라고 해서 사람이 많이 나올 필요도 없고 굳이 많은 사건도 필요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됐죠.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가'인 것 같아요.”
 
# 불시에 찾아오는 집필(執筆)의 모티브
 
작가들은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을 움직이는 힘을 먼저 느껴야 한다고들 한다. 자신의 경험이든, 간접경험이든 혹은 깨달음이든 뭔가 ‘와야’ 작품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소위 모티브(motive)라고도 이야기하며 착상(着想)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미경 작가는 이에 대해 ‘착상’이라는 단어를 주로 썼다.
 
“작품의 착상은 정말 어느 순간에 오는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주로 신문이나 연극을 보며 영감을 많이 얻죠. 신춘문예에 당선된 '우울군 슬픈읍 늙으면'은 연극 '오프닝 나이트'를 보며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작품을 보면서 인간이 늙는다는 게 얼마나 슬프고 서글픈 것인가를 생각하게 됐죠. 저 자신도 늙어보니 마음은 안 늙고 외모만 늙더라고요. (웃음)”
 
매일 오후 4시 40분은 이미경 작가가 ‘변신’하는 시간이다. 선생님으로부터 작가로 탈바꿈 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오후 4시 40분 경 학교에서 퇴근한 후 홍대 인근 카페에서 집필을 한다는 그녀에게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다. 선생님과 작가의 ‘이중생활’은 과연 그녀의 정체성에 혼란을 주지 않을까.
 
“대학원을 다닐 때는 그런 혼란이 있었죠. 학교라는 공간이 매우 보수적인 곳인데, 제가 다닌 학교(그녀는 한예종 극작과 전문사를 졸업했다)는 그야말로 자유로운 사람들이 넘치는 곳이니까요. 그래서 전 늘 어딜 가도 ‘그곳답지’ 않은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에서는 선생님 치고 너무 자유분방하고, 대학원에서는 연극을 하려는 사람치고 너무 보수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웃음) 그것 때문에 제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렇진 않아요. 집필은 어쨌든 혼자 하는 작업이니까요.”
 
인터뷰 당일, 약속장소인 혜화동까지 종로5가에서 주욱, 걸어왔다는 그녀는 마로니에 공원의 무료급식차를 보며 자신을 되돌아봤다고 했다. 불혹이 넘은 나이동안 왜 자신은 누군가에게 밥 한 번 그냥 주는 사람이 못되었는가에 대한 성찰이었다. 자신의 작품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자, 그것이 당연한 것인지 되새김질한 그녀는 앞으로 사람들에게 따뜻한 작품으로 찾아가고 싶다고 이야기 했다.
 
“처음엔 냉소적인 작품들을 주로 썼어요. 하지만 나이가 들다보니, 대책 없이 차갑기만 한 시선이 과연 무슨 의미인가 싶더군요. 차가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지만 이제 그 안에 따뜻한 무언가를 집어넣고 싶어요. 세상엔 외로운 사람이 참 많아요. 그들에게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큰 위로가 될 수 있죠. 외로운 사람들 곁에 있어주는, 그런 작품을 쓰고 싶어요.”
 
앞으로의 꿈이 무엇인지 묻자 그녀는 “작가가 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작가가 아닌가. 그것도 다수의 작품상을 거머쥔 희곡작가 말이다. “더 좋은 작품으로, 더 좋은 작가가 되고 싶어요. 그렇게 관객들과 계속 소통하고 싶어요.”
 
 
[프로필]
이름: 이미경
직업: 극작가 겸 초등학교 교사
학력: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전문사 졸 /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박사과정 재학
수상: 제 14회 신작희곡페스티벌 당선 '그게 아닌데',  제 2회 대전 창작희곡 대상 '무덤이 바뀌었어요'
(감성을전하는문화신문=뉴스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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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객원기자 hjuun@naver.comlt;저작권자 ⓒ 뉴스컬처(http://www.newsculture.tv).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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