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특집] 그렇게 어른이 된다

최종수정2018.09.28 19:31 기사입력2014.03.12 02:27

글꼴설정

스크린 속 배우들은 그렇게 성숙했다


  
(뉴스컬처=정연화 기자)
천 번은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데, 왜 이렇게 험난한가 싶다. 만 스무 살이 넘으면 어른인 거라 믿고 지만, 무엇이 어떻게 언제 나를 어른으로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만큼 우리는 어른이라는 단어에서 무게를 느낀다. "내가 정말 어른일까?" 보다는 "언제 성숙했을까?"라는 질문에 답하기 쉽다. 몸과 마음이 자라서 어른스럽게 된다는 '성숙'의 사전적 정의에만은 고개를 끄덕이고 싶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차라리 성숙했다고 말하며 이 무게를 빗겨간다.
 
성숙은 체념이 아니다. 이런저런 사건을 겪고 난 후, 그저 받아들이고 살아가게 되는 단념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버지의 오이디푸스 적인 저주를 듣고 집에서 가장 먼 곳으로 떠나 비극적인 운명을 직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는 '어른의 성장'을 그린 하루키의 소설 '해변의 카프카'의 주인공 '카프카'와는 달리, 그저 삶을 받아들이고 싶다. 종종 "나 이제 아무렇지 않아!"라고 호기롭게 외치는 친구보다, "이제 아무렇지 않게 됐어"라고 말하는 친구를 더욱 보듬어 주고 싶다. 직면과 인정보다는 체념에 더 손을 들어주고 싶어진다.
 
오히려 직면과 인정을 오롯이 들여다볼 수 있는 건 현실보다는 영화다. 누구는 사랑으로 상처로, 때로는 가족으로 우정으로 인해 성숙을 배운다. 김고은부터 후쿠야마 마사하루까지, 스크린 속 배우들은 그렇게 '성숙'했다. 영화 '몬스터(2014)'에서 정신 연령은 7살 수준밖에 안 되지만, 자신에게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걸 또렷이 인식하고 있던 김고은. 살인마의 손에 죽은 동생을 찾아 헤매지만, 그 과정에서 생긴 건 또 다른 관계다. 살인마를 죽이기로 다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은 동생이 돌아오지 않을 거란 것을 잘 안다. 그에게 중요한 건 동생을 되찾기 위한 복수가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 맺기'다. 그야말로 피 튀기는 싸움 끝에 볼 장 다 본 김고은은 결국,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살아간다. 영화는 그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하는 듯, 마지막에 혼자 옥상에 걸터앉아 흥얼거리는 김고은을 비춘다. 그에게 성숙은 관계다.
 
영화 '클로저(2005)'에서 수많은 인파 속 머리카락을 분홍색으로 물들인 스트리퍼 나탈리 포트만의 등장은 그것의 마지막 장면만큼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그런 나탈리 포트만에게 반한 건 주드 로 뿐이다. '낯선 사람'에 빠져 시작한 사랑의 대가는 혹독했다. 만인이 아끼는 멋진 남자 주드 로를 옹호하고 싶지만, 사랑의 진실을 논하는 그에게는 왠지 정이 가질 않는다. 도대체 남자들의 사랑은 뭐기에 이리도 진실을 요구하는가. 결국, 지겹도록 진실을 말해달라고 떼쓰는 남자에게 나탈리 포트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래서 사랑이 어디 있는데?"다. 뉴욕으로 돌아간 나탈리 포트만의 주위로 영화의 첫 장면과 같이 수많은 사람이 스쳐 지나가지만, 이제 그는 자신을 돌아보는 남자들이 아무렇지 않다. 깊이 팬 상처를 극복한 나탈리 포트만은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한다.   
 
카레 헤레브란트는 '렛미인(2008)'에서 뱀파이어와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건 뱀파이어가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카레 헤레브란트의 옆집에는 부녀로 보이는 사람들이 이사를 온다. 그 후, 연쇄살인이 계속된다. 놀이터에서 가끔 마주치며 뱀파이어 리나 레안데르손과 친해지지만, 그의 옆에 있는 남자가 아버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그것이 바로 뱀파이어를 사랑한 남자의 운명인 것이다. 뱀파이어는 늙지 않지만, 그 남자는 할아버지가 다 되도록 여자의 피를 구해주어야 했다. 카레 헤레브란트는 그때 자신도 그렇게 될 운명이라는 걸 직감했을까. 그러나 그건 필연이었다. 그는 평소 괴롭힘만 당하고 친구도 없다. 문제는 친구들의 과도한 폭력에도 무뎌질 만큼, 스스로를 방어하지도 않는 무기력한 아이다. 그런 그에게 찾아온 뱀파이어 덕에 자신을 사랑할 줄 알게 된다. 사랑하기 위해 자신을 보호할 필요를 느꼈다. 그 둘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였던 것이다.
 


상처한 후에야 무언가를 깨닫는 건 인간의 숙명이다. '우아한 거짓말(2014)'에서 고아성은 동생이 죽고 나서야 동생을 제대로 알게 됐다. 스스로 언니라고 생각했겠지만, '제대로 된' 언니 역할은 하지 못했다. "나는 천지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어"라고 말하는 고아성의 대사는 그의 깊은 후회를 대변한다. 어떻게든 동생을 죽게 한 사람들을 찾아 복수해주고 싶다. 그러나 자신의 흔적을 발견할 뿐이다. 가장 가까운 가족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미안함을 넘어 괴롭고 아프다.
 
'어바웃 타임(2013)'에서 돔놀 글리슨이 배운 건 시간을 사는 방식이다. 성숙해 어른이 되는 건 결국 시간을 잘 살기 위한 우리의 고민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가장 먼저 바꾸겠는가? 아마 돔놀 글리슨의 생각처럼 가장 사소한 것부터다. 먼 곳을 돌아보기보다는 조금 전 저지른 실수만큼 억울한 게 없다. 그것부터 고쳐 지금이라도 똑바로 살고 싶은 생각이 왜 들지 않겠는가. 그러나 영화가 일러주듯, 시간은 거역할 수 없다. 배우들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 돔놀 글리슨은 하루를 두 번이나 살고 나서야 깨닫는다. 중요한 건 시간이 아니라 시간을 사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안타깝게도 우리는 돔놀 글리슨처럼 되기 어렵다. 우리에겐 시간을 돌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말은 물리겠지만, 그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뼈아픈 이야기는 여기에 있다. '미스터 컴퍼니(2014)'의 김진화, 김방호 대표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안타깝게도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다. 청춘은 아프지 않아야 한단다. 하고 싶은 일을 좇을 만큼 무언가에 즐거움과 희열을 느껴야 하며 돈을 벌 수 없어도 행복해야 한다. 사회적 기업 오르그닷의 구성원들은 좋아하는 일을 위해 뛰어들었다. 좌충우돌은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통과의례였다. 결국, 영화는 창업자들뿐만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좇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한다. 꿈만 꾸고, 고민만 하고, 위로받길 원하는 '게으른' 청춘 말고 변화를 이끄는, 그래서 더욱 만족스러운 삶을 추구하는 '행동하는' 청춘이 되라고. 지금은 모두 다른 길을 선택했지만, 오르그닷은 그들이 다른 길을 택하도록 이끈 추진체였다.
 
그러나 어떤 방식이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의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겪은 성숙은 왜 이렇게 공포스러울까. 바로 '이름만 어른'이 주는 무게가 여기에 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되는 줄 알았던 후쿠야마 마사하루는 머리를 한 방 크게 맞았다. 아이를 낳는다고 아버지가 되는 것이 아니며 20살이 넘었다고 어른의 명함이 자동으로 나오는 건 아니라는 것을. 후쿠야마 마사하루는 사회적으로는 성공한 사람일지 몰라도 아버지로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아들의 친아버지를 보고 나서야 자신은 정작 아들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걸 느낀다. 친아버지가 아니었기 때문이 아니다. 아들과 함께 보낸 시간의 차이다. 그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건 아이뿐만 아니라 아버지가 되기 위한 성장 역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배우들의 이런 후회와 깨달음 그리고 성숙하는 캐릭터에 괴로워하기보다 안도감을 느끼기 바란다. 이 모든 것은 스크린 속에서 일어난 일들이며 당신에게는 기회가 있다. 이름만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 오늘도 우리는 성숙한다. 스크린 속 배우들을 보며 다행히도 성숙하는 것은 어른이 되는 것만큼 난해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그러나 어른의 무게를 빗겨간 만큼, 스스로 성숙했다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상당히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성인특집_Intro] 19금 인생에 그린라이트를 켜라

[성인특집] 뮤지컬 상사 “이런 회사 있으면 소개시켜줘”

[성인특집] 청소년관람불가, 그 ‘금기’를 말하다

[성인특집] 그렇게 어른이 된다

 

(감성을전하는문화신문=뉴스컬처)
연극뮤지컬영화클래식 전시문화뉴스인터뷰
금주의 문화메모이번주 개봉영화이벤트티켓인포켓(티포)
[뉴스컬처][페이스북][트위터][블로그][오픈캐스트]
[티켓인포켓(티포)][페이스북][블로그]

정연화 기자 movie@newsculture.tv<저작권자ⓒ뉴스컬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0
좋은번호가 좋은 기운을 나만의 골드넘버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