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리뷰] 변하지 않은 건, 서울일까 우리일까? 뮤지컬 '지하철 1호선'

[NC리뷰] 변하지 않은 건, 서울일까 우리일까?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최종수정2018.10.23 06:19 기사입력2018.09.19 12:18

글꼴설정

IMF 시절 배경으로 잊혀진 우리의 '불편한 서울' 조명해

▲ 뮤지컬 '지하철 1호선' 공연 사진     ©제공=학전

▲ 뮤지컬 '지하철 1호선' 공연 사진     ©제공=학전


 
[뉴스컬처 서정준 객원기자] 대학로에 오랜만에 논쟁적인 작품이 등장했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연출 김민기)이 그 주인공이다.
 
학전의 스테디셀러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1994년 초연 후 한국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힌다. 창작이 아닌 독일 원작을 번안, 각색한 작품임에도 한국의 시대배경을 적절히 녹여내 창작보다 더 창작같은 작품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2008년 이후 10년만에 공연되는 이번 '지하철 1호선'은 IMF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동시대성'으로 정의할 수 있는 국내 공연계의 화법과는 다소 맞지 않아보이지만, 실제로 무대 위에 오른 '지하철 1호선'은 무척 동시대적인 작품이었다.
 
▲ 뮤지컬 '지하철 1호선' 공연 사진     © 제공=학전

▲ 뮤지컬 '지하철 1호선' 공연 사진     © 제공=학전



'지하철 1호선'의 이야기는 아주 간단하다. 연변 처녀 '선녀'가 약혼남 '제비'를 찾아 서울로 오게 된다. 그러나 '제비'의 이야기는 온통 거짓이었고 '선녀'는 임신까지 한 채로 그에게 버림받는다. (사실은 버림받았다는 표현도 어폐가 있다. '제비'는 처음부터 '선녀'와 관계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선녀'는 '제비'를 찾아 서울역과 청량리역을 오가며 지하철에 탄 무수한 서울의 인간군상들을 만나게 된다.
 
지하철의 승객들은 2018년 요즘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이다. 백화점에서 파는 물건인데 IMF로 공장이 망해서 지하철로 나왔다는 잡상인들, 도움을 요청하는 걸인들,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과 아내에게 알아서 하라는 가부장적인 남편, 몸이 불편한 장애인, 카드의 대중화로 사라진 직업이 된 소매치기, 한국 만세를 외치는 흑인 혼혈아 등이 '선녀'의 눈을 통해 관객들의 잊혀진 기억을 일깨운다.
 
▲ 뮤지컬 '지하철 1호선' 공연 사진     © 제공=학전

▲ 뮤지컬 '지하철 1호선' 공연 사진     © 제공=학전



이들이 과연 사라진 것일까. 혹은 스마트폰에 고정된 우리의 시야에 보이지 않게된 것일까. '지하철 1호선'은 우리가 잊고 있었거나 알면서도 잊고 싶었던 것들. 불편해하는 서울의 민낯을 3시간에 걸친 느리디 느린 호흡으로 차근차근 살펴본다.
 
이 작품이 논쟁적인 이유는 '선녀'나 혹은 극 중 그 누구도 이러한 모습들에 대해서 또렷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극 말미에 인물들이 나와서 구구절절한 스토리로 '정답'을 알려주거나, 혹은 따듯한 분위기로 가득한 최근의 경향을 외면하고 '지하철 1호선'의 분위기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 뮤지컬 '지하철 1호선' 공연 사진     © 제공=학전

▲ 뮤지컬 '지하철 1호선' 공연 사진     © 제공=학전



물론 과거의 명작답게 지금의 시각으로 볼 때 또다른 사유를 안기는 지점도 있다. 극 전반에 걸쳐 표현된 사창가나 국회의원의 '사모님'을 풍자하는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한국 전반에 깔린 여성혐오적 시선이다. 그러나 이것은 '지하철 1호선'이 지향하는 바를 생각해볼 때 거짓으로 포장하거나 '사실은 그런 게 아니다'라고 넘어가지 않는 솔직한 단면에 가깝다. 오히려 그 시선 속에서도 '선녀'를 비롯해 '날탕', '걸레', '곰보할매', '빨강바지' 등 빛나는 여성 인물들을 발견할 수 있는 점은 뮤지컬 '빨래' 등 한국적인 정서 속에서 진취적인 여성 인물을 잘 담아낸 다른 뮤지컬들과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인물들의 과장된 연기 톤은 호불호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완성도만을 놓고 봤을 때 무척 훌륭하다. '지하철 1호선'에만 전력투구한 배우들이 보여주는 연기의 합은 올해 들어 공연된 '신흥무관학교', '리차드3세' 등과 함께 원 캐스트 공연의 존재의의를 다시 한 번 보여준다.
 
끝으로 서사적인 면을 제외하고 이 공연의 진짜 동시대성은 세련된 음악에 있다. 정재일 음악감독은 건반, 기타, 베이스기타, 드럼, 바이올린, 아코디언, 퍼커션을 활용했는데 아코디언이나 퍼커션 연주자가 들려주는 이국적인 소리들은 내 것이면서 내 것 같지 않은, 2018년에 바라본 1998년의 서울을 훌륭하게 들려준다.

 

[공연정보]

공연명: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원작: 폴커 루드비히

번안/연출: 김민기

음악:비르거 하이만

음악감독: 정재일

공연기간: 2018년 9월 8일 ~ 12월 30일

공연장소: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

출연진: 이홍재, 손진영, 김태영, 윤겸, 장혜민, 정재혁, 최새봄, 손민아, 이승우, 제은빈, 박근식

관람료: 전석 6만원
  

서정준 기자 newsculture@nate.com
<저작권자ⓒ뉴스컬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0
좋은번호가 좋은 기운을 나만의 골드넘버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