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인터뷰]'노부인의 방문' 이승옥, 외롭고 당당한 발걸음

[NC인터뷰]'노부인의 방문' 이승옥, 외롭고 당당한 발걸음

최종수정2019.12.11 18:40 기사입력2019.12.1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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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인터뷰]'노부인의 방문' 이승옥, 외롭고 당당한 발걸음

[뉴스컬처 이솔희 기자] "외롭고 당당하게"


52년 차 배우 이승옥의 좌우명이다. 외롭게, 하지만 당당하게 배우로서의 길을 걸어온 그는 반세기가 지나도 변치 않은 연기와 연극에 대한 열정을 드러내며 다시 한 번 무대에 선다. 바로 제4회 늘푸른연극제 참가작 '노부인의 방문'을 통해서다.


지난 5일 개막한 제4회 늘푸른연극제는 '그 꽃, 피다'를 부제로, '꽃'에 원로 연극인들의 예술혼과 연극계가 가야 할 새로운 지표, 뜨거운 예술혼이 지닌 젊음의 의미를 담았다.


이번 연극제에서는 개막작 '하프라이프'부터 '의자들,'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황금 연못에 살다', '이혼예찬', '노부인의 방문'까지 총 6편의 작품이 상연된다. 현실적인 노인들의 삶을 담아낸 각각의 작품들은 이 시대가 당면한 노인 문제를 이야기한다.


표재순 연출, 김경태, 김동수, 박웅 등 원로 연극인이 한자리에 모인 이번 연극제에서 이승옥은 여섯 작품 중 '노부인의 방문'으로 관객을 만난다. 그는 "반세기 넘게 같이 살아온 동료들, 후배, 선배들과 각자 무대에서 작품을 해왔지만 한 프로젝트 안에 들어오는 건 처음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연극제가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한국 연극계에서 이런 연극제를 만들어서 동료들과 함께 일해볼 수 있다는 기쁨이 대단하다"고 남다른 애정을 표현했다.


1960년 성우로서 활동을 시작한 그는 이승옥은 1967년 극단 동인의 '악령'으로 데뷔해 52년째 연극인의 길을 걷고 있다. 국립극단의 대표 배우로 손꼽히는 그는 연극 '탑'으로 제3회 대한민국 연극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이외에도 '검찰관', '태', '신의 아그네스' 등 다양한 작품에서 활약했다.


[NC인터뷰]'노부인의 방문' 이승옥, 외롭고 당당한 발걸음

특히 이번 연극제에서 선보이는 '노부인의 방문'에서는 국내 초연에 이어 약 25년 만에 다시 노부인 역을 연기한다. '노부인의 방문'은 세계적인 희곡 작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작품으로, 큰 부자가 된 노부인이 30여 년 전 실연의 슬픔을 안고 떠났던 고향 도시를 찾아오면서 시작한다.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살인 행위가 일어나는 상황을 통해 인류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얼마나 쉽게 타락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이승옥은 "자하나시안 부인 역은 모든 배우가 탐내는 역할"이라며 "예전에 명동국립극장에서 서항석 선생님과 '물리학자들'이라는 작품을 하고 나서, 선생님이 '나이 먹으면 자하나시안 부인을 한 번 해보라'고 하셨다. 그때는 그게 뭔지 몰랐다. 그 후 세월이 흐르고 국립극단을 갔다. 당시 단장님이었던 백성희 선생님이 '노부인의 방문'의 자하나시안 부인 역을 하고 싶어 하셨다. 그런데 독일에서 온 연출이 저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작품을 처음 만나게 된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극단에 들어간 지 1년밖에 안됐을 땐데 그렇게 이 역할을 하게 됐었다. 그때 이 작품으로 1700석가량의 객석을 전부 채웠다.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나이 먹으면 이 작품을 한 번 더 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다시 하게 됐다"고 작품에 대한 애틋함을 드러냈다.


이승옥은 "돈이나 권력 앞에 정의가 있는가를 묻는 작품이다. 정의와 배신. 이 두 가지 포인트다"라고 '노부인의 방문'을 설명했다. 이어 "단순히 멜로 드라마가 아니라 보는 이에 따라 정치적 관점도 담겨있다. 어느 때에 봐도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돈과 권력 앞에 정의가 있는가, 배신이 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인가 등을 이야기한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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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에는 데뷔작이나 다름없는 연극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무대에 50년 만에 다시 오르기도 했다. 1968년 스물다섯의 이승옥이 연기했던 베르나르다를 2018년 일흔다섯의 이승옥이 다시 연기한 것.


이렇듯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같은 작품에 다시 출연한다는 것은 배우에게 남다른 의미를 가질 듯 했다. 그는 "50년 전에 나이 30도 안 된 배우가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을 했다. 거의 데뷔작이었다. 그때는 뭔지도 몰랐다. 다섯 딸을 거느리는 어머니 역할을 어떻게 했겠나. 그런데 작년에 다시 해보니 이제는 뭔지 알겠더라.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인간 이면의 이야기를 모두 다 할 수는 없었지만, 옛날에는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이데올로기를 지닌 작품이다. 연극에 그런 부분이 안 들어가 있는 게 어디 있나. 그걸 잘 승화시키는 게 중요하다. 그게 예술 작품이다. 이데올로기, 돈, 권력, 애정 없는 드라마가 있을 수 없다. '노부인의 방문' 역시 그렇다. 표면적으로 멜로 드라마다. 그런데 그 안에 이데올로기, 경제, 문화, 정치 다 들어가 있다. 우리도 그런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역사가 묻어나야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한다"고 역설했다.


오랜 시간 한국 연극계에 발을 담그고 있었던 만큼 창작극에 대한 갈증도 컸다. 이승옥은 "창작극, 우리 희곡이 너무 없다. 시간이 갈수록 좋은 희곡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드물다. 근대 100년사에 우리 희곡을 보기 힘들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희곡을 창작하는 데에 금전적인 지원도 적다.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 드라마 한 편 출연하는 데 배우들에게 몇천만 원씩 주지 않나. 문화 행사할 때 가수들에게도 많은 돈을 지급한다. 제가 항상 하는 말이 그렇게 하지 말고 그 정도의 돈을 연극에 투자하라는 것이다. 그럼 우리나라에서 자랑할 수 있는 작품이 하나 나올 수 있을 것이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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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연극인으로 살아온 이승옥. 연극계를 향한 그의 애정은 단순히 배우로서의 활동에 한정되지 않았다. 그는 성동연극협회장, 한국생활연극협회 부이사장을 역임하며 연극계의 부흥을 위해 힘 쏟고 있다. 서울시 최초 구립극단인 성동구립극단을 창단하기도 했다.


이승옥은 "5개 광역권에 국립극단을 만들고, 서울시 25개 구에 구립극단을 만들자고 했다. 그렇게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그럼 연극계 환경이 좋아질 것이다. 구민들과 연극협회 회원들이 내가 어떤 지역에 살고 있는지 긍지를 느끼면서 살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연극이 하는 역할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구립극단은 내가 사는 구가 어떤 구이며, 어떤 역사적인 부분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기 위한 것이다. 내 예술을 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지역이 어떤 문화 수준을 보여주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연극의 대중화에 대해서도 역설했다. 이승옥은 "연극 관객의 저변 확대를 추구한다. 그러면서 연극을 하고 싶었으나 생계 때문에 못했던 사람들을 위해 가이드를 해주는 것이다. 그런 노력이 연극 관객을 끌어들이는 데에 큰 이슈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점차 침체돼가고 있는 연극계, 이승옥은 개선을 위한 방안으로 '정책 변화'와 '진실성 있는 연극'을 들었다. 그는 "정부가 관심을 가져줘야 한다. 정책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우선 구립극단을 만들면 정체성 있는 연극을 할 수 있다. 또 진실성 있는 연극을 해야 한다. 그리고 정의로운 연극을 해야 한다. 연극은 사람 얘기를 하려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인 목적만을 가진 작품은 좋은 작품이라고 볼 수 없다. 더군다나 세금으로 올리는 작품은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을 밝혔다.


이처럼 꾸준하게, 열정적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이승옥에게 삶의 원동력에 대해 묻자 그는 "타고난 성향"이라며 미소 지었다. 이어 "배우를 잘하게 타고난 것 같다"고 환하게 웃은 그는 "성우 활동하던 시절에 한 선생님이 '연극을 꼭 하라'고 하셨다. 그때는 '지금 얼마나 바쁜데 연극을 하느냐'고 했는데, 결국 연극을 하게 됐다. 연극 제안이 오는 것마다 다 했었다. 피하지 않았다. 돈이 안 된다고 안 한 작품이 없다. 즐겁고 행복하게 활동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연기하는 게 정말 행복하다"고 연기를 향한 변함없는 사랑을 표현했다.


한편 이승옥이 출연하는 '노부인의 방문'은 오는 19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늘푸른연극제는 22일까지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아트원씨어터 3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진행된다.


사진=김태윤 기자



이솔희 기자 sh040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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