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인터뷰①]차지연의 한(限)과 한(恨)

최종수정2020.07.04 07:30 기사입력2020.07.0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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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컬처 김진선 기자] "한없이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게 제 목표예요. 죽을 때까지요."


배우 차지연을 떠올리면, 한이라는 표현이 따라붙는다. 매 작품 인생 캐릭터가 되는, 한계가 없다는 한(限)과, 쏟아내는 절절한 한(恨)으로 보는 이들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인물이 되기 때문이다.

[NC인터뷰①]차지연의 한(限)과 한(恨)


차지연이 5년 만에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이하 '잃얼)에 섰다. '잃얼'은 사진 찍기를 즐겼던 고종과 달리, 단 한 장의 사진도 남기지 않은 명성황후의 미스터리한 에피소드에 픽션을 더해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던 여성을 마주하게 하는 작품이다.


"평안하게 가고 싶어요."라고 돌아온 소감을 담담하게 밝힌 차지연은, 자신의 한계, 그리고 끓어오르는 한에 대해 솔직하게 밝혔다. 인터뷰 내내 벅차오르는 뜨거운 감정과 들끓는 마음을 드러내는 차지연의 두 눈은 더 없이 반짝거렸다.


"참 좋은 작품이에요. 텍스트도 탄탄하고 음악은 말할 수 없이 좋고요. 초연 때는 소화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전체 곡을 잘 들을 여유가 없었어요. 이지나 연출님이 정말 멋있고 세련되게, 그러면서 힘 있고 여백이 느껴지게 잘 써주셔서 배우들은 매우 행복하답니다."


작품을 향한 애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미 많은 작품에 이름을 올리고 차지연 만의 색으로 물들였지만, 그는 유독 사랑하는 작품으로 '잃얼'을 꼽았다.


"더 나이가 들면 못 오를 수도 있지만, 작품은 계속해서 사랑받았으면 해요. 제가 이런 마음을 먹은 작품이 '서편제' '잃어버린 얼굴'이에요.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함께 해서 그런지, 정말 오랫동안 사랑받길 바라요."

[NC인터뷰①]차지연의 한(限)과 한(恨)


'드림걸즈' '서편제' '몬테크리스토' '마리앙투아네트' '아이다' '레베카' '마타하리' '위키드' '광화문연가' '노트르담 드 파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호프-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 '안나카레니나' 등 내로라하는 작품에 이름을 올리며 존재감을 드러낸 차지연.


"좋은 작품 많이 했기에, 욕심이 많다고 보실 수 있어요. 하지만 전 그저 '만나는' 작품에 최선을 다할 뿐 이에요. 영혼을 갈아 넣죠. 영혼을 떼어서 작품에 남겨두고 나와요. '호프'도 창작산실 때부터 갈아 넣었어요. '차지연이 창작산실에?'라고 하실 수 있지만, 기꺼이 제가 작품에 도움이 된다면, 많은 작품에 오르고 싶어요. '그라운디드'도 그렇고요. 무모한 용기, 도전으로 보일 수 있지만, 전 연기 잘하는 배우로 남고 싶어요."


터질듯한 감성과 절절하게 쏟아져 나오는 한으로 무대의 공기마저 바꿔버리는 배우지만, 정작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곱씹었다.


"한없이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게 제 목표예요. 죽을 때까지요. 사람이 욕심나기 마련이죠. 더 많은 주목, 스포트라이트를 받고...하지만 역행하면서도 부여잡고 싶지 않아요. 아름답지 않은 거 같아요."


차지연이 쏟아내는 한은 그저 한 인물에 다가가는 과정일 뿐이었다. 조금 더, 한 발짝 더, 인물로 빠져들고 스며드는 과정은 '한'으로 승화됐다.


"속에 있는 내장까지 무대에 토해 넣을 정도로 한을 내뱉었어요. 제가 잘해서가 아니에요. 어떻게 하면 '이 인물'이 느끼는 것을 더 호소력 있게 더 많은 가져갈 수 있을까, 최선을 다하고 싶었어요. 제 나이대, 당시로써 말이에요."


특히나 출산을 통해 다시 마주한 '잃얼'이기에, 그의 감정은 더 깊고 진해졌을 수밖에 없다. 고종의 아내이자, 한 여인의 삶을 그리는 작품의 색은 차지연의 한을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아이도 낳고 경험도 쌓고 있지만, 제 생을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면,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아픔을 겪었어요. 아직 어리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 있어서 많은 일이 있었죠. 지금의 차지연으로 무대에 섰을 때는 담담해지고 가슴에서 읊조리고, 밖으로는 (무언가를) 바라보거나 호흡으로 말을 더하게 돼요. 덤덤하고 담백하게 표현하는 게 더 많은 드라마틱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거 같아요. 연기는 참 매력 있어요."


차지연의 한(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눈빛, 자세, 손끝마저도 인물의 감정에 휘감겨 있는 듯 하다. 차지연이 생각하는 한은 어떤 감정일까. 말 끝을 잇는 차지연의 모습에서 민자영의 애달픈 감정, 그리고 우리네 여인 가슴 속에 품은 깊은 슬픔이 물밀 들이 밀려왔다.


"제가 한의 아이콘이죠?(웃음). 되돌아보면 행복한 적이 없어요. 행복한 때를 떠올리면 잠깐 멈추게 돼요.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취미가 없더라고요. 씁쓸하고, 좀 서글펐어요. 정서상 안정된 삶을 살지 않아기에, 결혼과 아이는 생각하지도 못했어요. 그런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거죠. 누구나 낭만이 있고 로맨스가 있어요. 현실과 멀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죠.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 아이가 태어났어요. 아이가 태어났는데 어떻게 케어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막 태어나 보랏빛을 띄는 그 아이와 저만 있는 거 같았어요. 너무 무서웠어요. 물어볼 사람도, 배울 사람도 없었어요. 도움은 받았지만 감당할 것은 많아지고, 책임질 것도 많아졌어요. 숨실 공간도 없고, 나눌 사람도 없고요. 제 삶이니까 해결책도 찾고, 구렁텅이에 있다가 햇볕에 있기도 하고요."


작품마다 차지연만의 인물을 완성하고 '인생캐'라는 수식을 받는 데에는 차지연의 뜨거운 감정이 고스란히 담겼기 때문일 것이다.

[NC인터뷰①]차지연의 한(限)과 한(恨)


"전 어떤 작품의 어떤 인물을 만나더라도 '차지연 화'시켜요. 제가 투영돼서겠죠. 교집합을 부각하고, 극대화하려고 하는 게 재밌어요. '노래를 잘하고, 고음을 소화하고'라는 점보다, 연기로서 고민하는 게 재밌죠. 인물을 세 네 번 만나도, 그대로 하지 않고, 구축하는 과정에서 더 치열하게 고민해요. 괴롭고 고통스럽지만, 희열이 돼요. 그걸 관객분들이 알아주시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성취감, 기쁨이 되는 거고요."


차지연이라는 배우의 무대를, 인물을 만날 수 있다는 게 더 없는 행운이라는 걸 매 순간 느끼게 해주는 그. 다시 오르는 '잃얼' 역시, 역사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제 모든 것을 푸는 유일한 곳이 바로 무대에요. 인물의옷을 입고 맘껏 울고, 맘껏 쏟아내죠. 방해받지 않고 말할 수 있는 곳은 무대니까요. 모든 것을 다 채워넣는 치유의 공간인 셈이죠. 위로 받는 창구요. 연기 잘하는 배우, 흥미 있고 지루하지 않은 재밌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앞으로 5년 뒤, 10년 뒤에 제가 어떤 연기를 하고 있을까, 기대되고 재밌어요. 신비롭고 귀한 경험이죠."


사진=서울예술단



김진선 기자 caro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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