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인터뷰]'어쩌면 해피엔딩' 양희준,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수정2020.08.09 23:00 기사입력2020.08.0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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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컬처 이솔희 기자] "너와 나 잡은 손 자꾸만 낡아가고 시간과 함께 모두 저물어 간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려 해"(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中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중요시한다"는 양희준의 올리버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넘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사랑을 느낄 수 없게 만들어진 두 로봇이 사랑을 느끼게 된다는 것은 그들이 고장 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양희준의 말은 그의 올리버가 그려내는 사랑이 유독 애틋하고 순수하게 느껴졌던 이유를 알게 했다. 자신이 몸이 꺼져가고, 점점 고장이 난다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올리버와 클레어. 한없이 투명하고 무해한, 두 로봇의 '낡고 익숙한' 사랑 이야기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NC인터뷰]'어쩌면 해피엔딩' 양희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해피엔딩'은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인간을 돕는 로봇인 '헬퍼봇' 올리버와 클레어가 감정을 배우는 과정을 통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2016년 초연돼 앙코르 공연과 재연을 거쳐 2020년 세 번째 시즌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양희준은 '헬퍼봇5'로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올리버 역을 맡았다.


양희준은 이번 시즌 '어쩌면 해피엔딩'에 새롭게 합류했다.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킨 작품이자 신인상을 안겨준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이하 '외쳐, 조선!') 이후 첫 작품인 것. 그는 "작품을 하면 할수록 더 어려웠다. 한 작품을 오래 하다 보면 그 자리에 머무른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 또 더 잘해야 한다는 걱정과 스트레스가 많아서 오래 하면 할수록 힘들었던 것 같다"고 당시 느낀 고민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어 "그래서 작품을 떠나보냈을 때 시원섭섭하기도 했고,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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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쳐, 조선!' 공연 당시 극 중 홍단 역을 탁월하게 소화해내 캐릭터 그 자체라는 호평을 받았던 양희준. 그렇기에 차기작으로 어떤 작품을 선택할지, 또 어떤 이미지를 보여줄지에 대해 관심이 쏠렸다.


양희준은 '어쩌면 해피엔딩'을 차기작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힘든 상황이지 않나.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었다. '어쩌면 해피엔딩'이 딱 그런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따뜻한 위로를 할 수 있고, 힘들고 각박한 상황 속에서 뒤를 돌아볼 수 있고, 추억에 젖을 수 있고, 동화 속으로 다녀올 수 있는 작품이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초연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아온 작품이기에 새롭게 합류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양희준은 "당연히 부담감이 컸다. 하지만 부담감이 큰 만큼 기대도 컸다. 내가 하는 올리버는 어떻게 비칠까, 또 쟁쟁한 배우들과 어떻게 호흡을 맞춰서 어떤 공연을 할까 라는 기대가 컸다. 부담도 부담이지만 늘 나쁠 수만 없고 늘 좋을 수만도 없지 않나. 기쁘면서 걱정이 되는, 설렘과 부담이 함께 있었다"고 털어놨다.


[NC인터뷰]'어쩌면 해피엔딩' 양희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 위 양희준이 표현하는 올리버의 모습에서는 많은 고민의 흔적이 엿보였다. 처음 캐릭터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같은 역을 맡은 정문성, 전성우의 도움이 컸다고. 양희준은 "처음 연습을 할 때는 형들을 많이 참고하면서 분석했다. 그러면서 점점 제 것을 찾아 나가고, 제 색깔을 입혀나갔던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초재연을 거치면서 올리버의 틀이 잡혀있지 않나. 형들은 보기만 해도 소중한 올리버라면 저는 물건을 다 부수고 다닐 것 같은 느낌이다.(웃음) 저는 외적으로 소중한 느낌을 표현할 수 없으니까 기존 올리버의 틀만을 따라가게 되면 부딪히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저만의 올리버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제 올리버는 로봇의 운동성이 형들에 비해 큰 것 같아요. 움직임의 크기라든가 속도 같은 게 형들보다는 큼직큼직한 느낌이죠. 작은 집에서 쿵쾅쿵쾅 다니는 느낌이랄까. 마치 자기가 작은 강아지인 줄 아는 대형견인 것 같아요.(웃음)"


가장 고민이 많았던 장면은 첫 넘버인 '나의 방 안에'다. 양희준은 "저의 캐릭터나 정체성을 보여줘야 하고, 첫 단추를 잘 끼워야 극을 부드럽게 소화할 수 있기 때문에 첫 넘버를 가장 고민 많이 했다. 어떻게 하면 잘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행복한 모습과 사랑스러움이 보여야 하는 것 같다. 그런 조건들이 첫 넘버에서 맞춰져야 다음 장면들이 설득된다. 그래서 정말 순수하게 행복한 올리버 그 자체가 되려고 한다. 지금 살고 있는 환경에 120% 만족하고, 한없이 기쁜 올리버의 모습. 더할 나위 없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다"라고 첫 장면 속 올리버의 모습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제 무대에 늘 만족스럽지 않아요. 만족에 가까워지게 하는 거죠. 항상 다음 공연이 기대가 되는 이유는 제가 어제보다 더 나아졌다고 생각하면서 무대에 서기 때문이에요. 공연을 할 때마다 저 스스로도 보완할 점을 알고 있고, 이 장면에서는 더 이렇게 해보고 싶다 하는 계산들이 있으니까. 그래서 늘 다음 공연이 기대돼요."


[NC인터뷰]'어쩌면 해피엔딩' 양희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희준이 그려내는 올리버 중 관객의 가슴에 가장 깊이 와 닿는 장면은 클레어와의 기억을 지워야 하는 순간의 모습이다. 두 로봇이 기억을 지우기로 마음먹고 그간의 기억이 하나하나 머릿속에 스쳐 가는 순간, 양희준의 올리버는 기억을 떠올리는 듯 무해하게 웃다가 이내 한없이 울며 무너져 내린다.


이에 대해 양희준은 "우선 컴퓨터에서 폴더를 열고, 사진을 하나하나 슬라이드로 보는 걸 상상했다. 마음으로는 잊어야 하는데 그런 사진들을 보고 즐거웠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그때로 돌아가서 웃게 되는 것 같다. 마지막에는 사진들이 빠르게 지나가면서 지우기 싫다는 생각이 들면서 무너지는 것 같다. 올리버가 그때 기억을 지우지 않는 선택을 한 것 아닐까. 처음부터 안 지우겠다고 마음먹고 간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기억을 보면서 무너질 때 기억을 지우지 않겠다는 선택을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헬퍼봇은 사랑을 할 수 없게 프로그래밍 된 로봇인데, 올리버는 사랑을 알게 됐다. 그가 느낀 사랑이란 감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양희준은 "올리버는 제임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로봇이다. 천진난만한 아기들이 어른 흉내를 내듯 제임스 흉내도 냈을 것 같다. 또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한 인간들에 대한 공감을 하고 싶어 했을 것이고, 그런 모습을 따라 하면서 스스로도 생각을 많이 했을 것 같다"고 올리버의 이야기를 풀어놨다.


또 "올리버가 헬퍼봇이기 때문에 애초에 인간들에게 긍정적이고 우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말을 하면 좋아한다는 걸 알고,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공감하고 싶어 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런 부분이 조금씩 쌓여서, 점점 고장 나면서 인간화되는 것 같아요. 사랑을,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가 로봇으로서는 결함이잖아요. 올리버는 고장 나고 있는 거죠. 그러면서 사랑을 느낀 거고."


클레어와의 행복했던 기억을 모두 지워야 했던 올리버처럼, 양희준에게도 현실의 벽에 부딪혀 슬픈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있었을까. 그는 "저는 현실에 따른 적이 별로 없다. 항상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해왔다. 근데 사랑이라는 감정은 정말 조절이 잘 안 되는 것 아닌가. 다른 건 그냥 '아 이렇게 할래' 하면서 하고 싶은 방향을 선택하는 스타일인데, 사랑에서는 마음이 아니라 현실을 선택한 기억이 있다"고 조심스럽지만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런 경험이 올리버의 모습에 투영되기도 했을 터. 하지만 양희준은 "저는 저의 옛 경험을 빗대어 표현하기보다는 그냥 그 상황에 있는 캐릭터에게 들어가서 표현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올리버가 결국 기억을 지우지 않은 게 아픈 선택인지 좋은 선택인지는 생각하기 나름 아닌가. 저한테는 해피엔딩이다. 저 같아도 안 지울 것 같다"라고 미소 지었다.


[NC인터뷰]'어쩌면 해피엔딩' 양희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다면 양희준이 '어쩌면 해피엔딩'을 만나 새롭게 배운 감정은 무엇일까. 그는 "동심으로 돌아가게 된 것 같다. 정말 순수한 사랑, 조건을 따지고 큰 걸 바라는 게 아니라 보기만 해도 너무 행복하고 손만 닿아도 찌릿찌릿한 사랑이 느껴지니까 저도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올리버에게 레코드판과 화분, 제임스와 클레어가 있는 것처럼 양희준을 행복하게 하는 것에 대해 물었다. 그에게서는 "저는 원래 행복이라는 감정을 쉽게 느낀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맛있는 걸 먹을 때도 내가 이 향을 느낄 수 있고 이걸 볼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 일상에 행복한 것들이 너무 많다. 오늘은 또 어떤 공연을 할까 하는 기대감도 있고, 그걸 잘 해내면 집에 가는 길에 느껴지는 뿌듯함도 있다"고 설렘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그런 것들이 하루하루에 느껴지는 행복이라면 앞으로 다가올 행복들에 대해서도 생각해요. 내가 또 어떤 작품을 하게 될지, 그럼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하는 기대들. 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제게 얼마나 많은 작품이 쌓여서 어떤 추억을 되돌아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들. 그런 걸 떠올리면서 성장해 나가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어쩌면 해피엔딩'이 꾸준하게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 묻자 양희준은 "사랑이 포장되어 있지 않아서 좋았다"고 대답했다. 그는 "저는 사랑을 중요시한다. 모든 일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두 로봇의 이야기가 좋다. 멋이 많이 들어간,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작품들이 많지 않나. 그런데 '어쩌면 해피엔딩'은 아무런 포장 없이, 날 것 그대로, 핑크색 하트를 무대 위에 올려놓은 것 같다"고 수줍게 웃었다.


사진=김태윤 기자



이솔희 기자 sh040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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