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인터뷰]김혜수 "나약한 인간이지만 배우로 강해져야 했죠"

최종수정2020.11.08 08:00 기사입력2020.11.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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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가 죽던 날' 김혜수 인터뷰

[뉴스컬처 이이슬 기자] “첫 촬영을 앞두고 1, 2주간 ‘왜 작품을 한다고 했을까?’ 늘 자책해요. 인간 김혜수는 나약하지만 배우 일을 하며 강인해져야 할 때가 있어요.”


김혜수는 자신을 나약하다고 했다. 자신만 아는 못난 구석이 제법 많다며 은퇴를 생각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몇 년 사이 우여곡절을 겪어서일까, 그는 더 차분해진 모습으로 인터뷰 테이블에 앉았다. 질문을 입에서 웅얼거리는 사이, 힘든 시간을 보냈다며 당시 감정을 먼저 꺼내놨다. 영화를 왜 선택했는지, 배우는 명확하게 답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는 그럴 수 없다며 깊이 밀어놓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김혜수는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영화 ‘내가 죽던 날’(감독 박지완)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NC인터뷰]김혜수 "나약한 인간이지만 배우로 강해져야 했죠"


'내가 죽던 날'은 유서 한 장만 남긴 채 절벽 끝으로 사라진 소녀와 삶의 벼랑 끝에서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내민 무언의 목격자까지 살아남기 위한 그들 각자의 선택을 그린 이야기. 김혜수는 삶의 벼랑 끝에서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현수 역으로 분한다.


김혜수는 “영화 ‘국가부도의 날’(2018) 촬영 끝나고 시나리오를 한꺼번에 읽으려고 쌓아놨는데 ‘내가 죽던 날’이라는 제목에 줌인(ZOOM IN)이 확 되더라. 기분이 이상했다”고 떠올렸다. 이어 “현수와 내 상황은 다른데 꼭 내 이야기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출연 배경을 전했다.


김혜수는 “최근에 신인감독과 작업을 많이 했다. 신인과 작업하면 새롭고 활력이 되는 것도 있지만 경험이 없기에 어려운 점도 있다. 작품마다 장단이 있는데 ‘내가 죽던 날’ 시나리오를 보기 전에 이제 신인들과 안 해야겠다는 생각도 하던 때였다”라며 “원래 신인 감독님들과 작업을 하기 전에는 감독님의 전작들을 단편, 연극까지 다 본다. 이번에는 그 단계를 뛰어넘었다. 전작을 찾아볼 생각도 안 했다”라며 “뭔가에 이끌리듯이 했던 거 같다”고 남다른 의미를 되새겼다.


김혜수는 “이런 영화 한 편 정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 잘하자가 아니라, 제대로, 반드시 해내자는 유일한 목표가 있었다. 막연하고 두터운 믿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혜수는 ‘내가 죽던 날’은 힘든 시기에 찾아온 작품이라며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배우가 사적인 경험을 굳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고, 자신의 모습이 배역에 드러내는 걸 무의식적으로 배제하곤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것에서 자유로웠다. 인물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같이 만드는 사람끼리 어두운 면, 상처나 고통 등을 감추고 시작하는 게 말이 안 됐다. 그런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고 깊이 있게 나눴다”라고 전했다.


“늘 캐릭터보다 김혜수가 먼저 보인다는 반응을 들어왔다. 무게감 있는 숙제다. 개인이 드러나는 걸 무의식중에 배제하려 했다. 이번에는 거기에서 벗어났다. 캐릭터를 살아있는 인물로 빚는 과정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NC인터뷰]김혜수 "나약한 인간이지만 배우로 강해져야 했죠"


김혜수는 영화 ‘깜보’(1986)로 데뷔해 34년째 배우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어렸을 땐 아무것도 모르고 활동했다. 어린 나이에 데뷔해 어른들을 동경했고 흉내를 냈다. 전문가들이 지적해줘서 알게 됐다. 배우로 활용 가능한 소스가 단조로웠고 배우를 하기에 준비돼 있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정말 미숙했다. 배역으로 진입하며 나를 들어내는 게 숙제였고 영화 속 인물이 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됐다. 목소리만 들어도 김혜수구나! 알고 새로운 면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카메라 앞에서 얼마나 솔직할 수 있느냐가 내겐 관건이다. 그런 면에서 현수는 카메라 앞에서 어디까지 솔직할 수 있는지 드러내 준 캐릭터 같다.”


김혜수는 극 중 현수가 친구에게 “잠을 못 자니까 약 기운에 잠들었다 깨면 일어나서 순간 여기가 어딘지 모른다”라고 말하는 장면 속 대사를 직접 썼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같은 꿈을 1년 이상 꾸던 시기가 있었다. 심리적으로 죽은 상태라고 느꼈다. 정말 그랬다. 꿈에서 누군가 죽었는데 아무도 발견하지 않았다. 현수의 심리적 상황과 제 경험이 비슷하다고 느껴 아이디어를 냈다”고 떠올렸다.


김혜수는 지난해 모친의 채무액이 13억5천만 원에 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피해자들은 김혜수가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 거액의 돈을 건넸고, 이로 인해 모친과 관계를 끊고 지내왔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김혜수는 “그 일을 진짜 알게 된 건 2012년 ‘도둑들’ 프로모션 때였다”고 털어놨다. 이어 “일을 할 정신이 아닐 만큼 놀랐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일할 상태도 아니었고, 심정적으로 일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 모든 문제는 제가 일을 해 생긴 거라는 마음이 크게 들었다. 괜히 연예인이 되어서 가정이 파탄 난 것처럼 느꼈다”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영화에서 현수와 민정이 나눈 대화처럼 내 인생이 멀쩡한 줄 알고 살았다. 언니가 내게 ‘너 진짜 몰랐냐’고 묻던 당시가 떠올랐다. 민정과 대화 장면을 촬영하며 얼굴에 소름이 돋았다”라며 “영화 ‘한공주’에서 ‘나는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다’는 대사와 ‘내가 죽던 날’의 ‘모르는 것도 죄다’라는 세진의 대사가 공존했던 거 같다”고 말했다.


[NC인터뷰]김혜수 "나약한 인간이지만 배우로 강해져야 했죠"


“일을 할 수 없으니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크게 들었다. 2017년 우연히 TV에서 영화 ‘밀양’을 해주고 있더라. 배우들이 위대해 보였다. ‘저런 분들이 연기하셔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20%가 부족할까 생각 들면서 심플하게 마음이 정리됐다. 조용히 작품을 거절하면 은퇴가 아닐까, 그런 마음을 먹고 몇 개월 지나서 ‘국가부도의 날’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피가 거꾸로 돌더라. 이거까지 하자 하고 있다가 ‘내가 죽는 날’을 만났다.”


김혜수는 인터뷰 전날 진행된 언론시사회를 마치고 귀가하며 남다른 소회를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는 “집에 왔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작품을 선택하던 순간이 많이 떠올랐다. 촬영 순간순간이 스쳐 갔다”고 전했다.


최근 다수 작품을 통해 신인감독과 작업 중인 김혜수는 장편영화 연출을 꿈꾸고 있는 신인 연출자들에 보약 같은 쓴소리를 전하기도 했다. 김혜수는 “‘내가 죽던 날’ 시나리오를 받을 즈음, 제게 들어온 시나리오의 60% 이상이 여성 신인감독들의 작품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박지완 감독 작품을 선택했지만, 할까 말까 고민한 작품이 두 작품 더 있었다”라며 “응원하고 싶은 감독들”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김혜수는 “아무래도 더 눈이 간다”며 “남성 캐릭터를 남성이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처럼 여성 캐릭터는 여성이 잘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당차고 똘똘한, 제대로 하는 감독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영화를 좋아해서 글을 잘 써서, 아니면 영화를 하려고 오랜 시간을 준비해서, 그것만으로 절대 되지 않는 게 영화다.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과 실제 영화를 잘 만드는 건 정말 별개라는 걸 현실적으로 엄중히 느끼길 바란다.”


김혜수는 “인생에서 내가 몰랐기 때문에 다시 한번은 없다. 각오 그 이상을 준비해야 한다. 남녀를 떠나서 신인감독이라면 내가 실패한 후 다른 신인에게 어떤 파장을 미치는지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여성 감독이 잘해서 기분 좋다? 그런 거 없다. 잘하는 거보다 더 중요한 건 제대로 하는 것”이라며 “현장은 전쟁터다. 120% 준비가 완료돼도 모자라다. 중요한 건 감독의 역량”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NC인터뷰]김혜수 "나약한 인간이지만 배우로 강해져야 했죠"


“현장에서는 신인, 베테랑이 따로 없다. 감독은 감독일 뿐이다. 현장의 선장이기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영화를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로는 위험하다. 제대로 준비된 감독들이 많아져야 하고 지독하게 처절하게 마음껏 일할 수 있는 환경도 있어야 한다. 장르 규모를 떠나서 그런 작품이 제대로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게 독립영화이거나 이를테면 여성 주체 편향이거나 반대로 폭력 성향이거나 등 상관없이 영화감독으로서의 자질로 평가받아야 한다.”


김혜수는 ‘내가 죽던 날’을 통해 좋은 배우들을 얻어 좋았다고 강조했다. “이정은, 김선영이라는 사람을 알게 돼 감사하다. 정말 좋은 배우다. 열심히 살았지만, 실제 제 삶을 받아들이고 느끼며 깨닫는 감정과 오감을 통해 받아들이는 것, 연기로 표현하는 건 모두 별개의 문제다. 연기와 인격적으로 정비례하는 배우도 만나기 쉽지 않다. 두 사람은 인격과 배우로 성장이 정비례한다. 그런 좋은 인연이 생겼다는 것만으로 의미 있고 소중하다.”


[NC인터뷰]김혜수 "나약한 인간이지만 배우로 강해져야 했죠"


그러면서 “촬영장에서 배우들을 만날 때마다 힘이 확확 붙었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는데 한편으로 우리만 아는 경험에 그치면 어쩌나 두려움도 있었다”고 떠올렸다.


“촬영장이 즐거운 스타일은 아니다. 현장에서 촬영이 즐거워 행복하거나 배우 하길 잘했다고 느낀 순간은 한 번도 없었다. 남들은 모르는, 저만 느끼는 핸디캡이 많아서 그런 거 같다. 결국 배우의 자산은 몸, 표정, 감정이다. 인물을 빚는 자체로 경이롭지만, 인간 김혜수는 피폐해지는 느낌이다. 배우 일은 신비롭고 놀랍고 마냥 따라가기 힘들지만, 과연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부담도 든다.”


배우로 솔직한 소회를 전하던 김혜수는 “나는 내가 좋다. 제법 내가 괜찮다. 그런데 연기를 할 때만 싫다. 현장에서 모니터를 보고 배우와 마주하며 한계와 직면한다. 그래서 현장은 괴롭다”고 덧붙였다.


‘내가 죽던 날’은 11월 12일 개봉.


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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