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지탱하는 '뿌리 깊은 나무'

최종수정2021.01.16 10:46 기사입력2021.01.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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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 이순재·신구
음악극 '올드 위키드 송' 남명렬·남경읍
연극 '킹스 스피치' 이선주·서현철·박윤희

[뉴스컬처 이솔희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다수의 작품이 공연을 멈추거나, '두 좌석 띄어앉기'로 공연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 이로 인해 관객수가 현저히 줄어들면서 '공연의 메카' 대학로도 활기를 잃은 지 오래다. 그런 가운데서도 깊은 내공을 지닌 배우들이 무대를 지키며 든든하게 대학로를 지탱하고 있다.


먼저 이순재와 신구라는 두 기둥이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제작 파크컴퍼니)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두 배우는 2017년부터 어느덧 4년째 앙리할아버지로 분해 관객에게 따스한 위로를 안기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힘든 상황에도 이번 시즌의 '앙리할아버지와 나'가 꾸준히 공연을 이어갈 수 있는 것 역시 두 배우의 의지가 강했다.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 공연 장면. 사진=파크컴퍼니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 공연 장면. 사진=파크컴퍼니



오랜 기간 두 배우와 호흡을 맞춰온 파크컴퍼니의 박정미 대표는 "코로나19로 인해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두 선생님께 '30%밖에 객석 오픈을 못 하면 어떡하냐'고 전화를 드렸다. 그랬더니 두 분 모두 '제작사만 괜찮다면 공연을 하고 싶다'고 하시더라. 배우들은 마스크도 없이 무대에 서야 하지 않나. 그 부분 때문에 조심스럽다고 말씀드렸더니 본인들은 '공연을 하는게 너무 좋다'고 대답하셨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공연장에 확진자가 방문하면서 2주 동안 공연을 중단한 적이 있는데, 이순재 선생님이 공연 재개 하기 이틀 전에 공연장에 오셔서 아무도 없는 객석을 한 시간 정도 바라만 보고 가신 적이 있다. 그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는다"고 애틋한 일화를 전했다. 그러면서 "죽을 때까지 무대에 서고 싶다고 하시는 분들이다. 두 분에게는 무대가 삶의 원동력"이라고 덧붙였다.


두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과의 약속'이었다. 공연 스케줄을 변경한 적도, 연습 등 일정에 늦은 적도 없다는 두 배우는 본인이 처한 상황보다도 공연이 우선이다. 2008년 '라이프 인 더 씨어터' 공연 당시 이순재는 어머니의 부고를 듣고도 무대에 올랐다. 당시 제작사 측에서 캐스팅 변경을 제안했지만, 공연을 이어가겠다는 배우의 의지가 굳셌다고. 박 대표는 "상주 자리를 비우시고 공연을 진행할 정도로 관객과의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공연 하시는 모습을 보고 충격받은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 공연 장면. 사진=파크컴퍼니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 공연 장면. 사진=파크컴퍼니



신구는 지난해 공연된 '라스트 세션'을 연습하며 혀에 심각한 수준의 물집이 잡혔다. 생전 구강암을 앓았던 프로이트를 연기하고 있던 그때, 혀에 문제가 찾아온 것. 이에 주변에서 정밀 검사를 제안했으나 거절했다. 만에 하나 수술이나 입원을 하게 되면 약속된 공연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공연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건강도 다시 돌아왔지만, 박대표는 이때를 떠올리며 "공연을 하는 사람으로서 선생님의 태도는 앞으로도 큰 자극이 될 것 같다"고 존경심을 표현했다.


두 명의 앙리할아버지가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1관에서 위로를 안기고 있다면, 같은 건물 3관에서는 두 명의 마쉬칸 선생님이 가슴 먹먹한 감동을 전한다. 음악극 '올드 위키드 송'(제작 나인스토리·파크컴퍼니)은 슬럼프에 빠진 천재 피아니스트 '스티븐 호프만'과 괴짜 교수 '요제프 마쉬칸'의 만남을 그리는 작품. 요제프 마쉬칸 역은 남경읍, 남명렬이, 스티븐 호프만 역은 이재균, 정휘, 최우혁이 연기한다.


마쉬칸 교수는 어딘가 독특한 면모로 까칠한 성향을 지닌 스티븐을 당황케 한다. 하지만 자신에게 계속해서 힘을 실어주는 마쉬칸에게 스티븐은 점차 마음의 문을 열고, 스티븐이 마쉬칸 교수가 지닌 상처를 알게 되면서 두 사람은 깊은 우정을 나눈다. 마쉬칸 교수가 스티븐에게 그렇듯, 남경읍과 남명렬 역시 '올드 위키드 송'의 큰 힘이다.


음악극 '올드 위키드 송' 공연 장면. 사진=나인스토리

음악극 '올드 위키드 송' 공연 장면. 사진=나인스토리



제작사 나인스토리는 "선생님들이 계셔서 공연에 무게감이 더 생기는 것 같다. 중심을 잡아주시니 다양한 방향으로 시도를 해도 작품이 크게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인 느낌이 든다. 어려운 시기에도 선생님들이 대학로 무대에서 공연하시는 모습 자체가 희망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연극계가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해 점검해보게 되고, 앞으로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고 두 배우의 존재가 작품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남경읍, 남명렬 역시 그 누구보다 무대를 소중히 여기는 배우다. 남경읍은 연습 첫 날부터 대본에 자신의 생각을 빼곡하게 적어왔다. 그의 노력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고, 대본은 연습이 진행될수록 두꺼워졌다. 제작사 관계자는 "아마 모든 배우를 통틀어 작품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가장 크신 것 같다"고 남경읍의 작품 사랑을 입증했다.


음악극 '올드 위키드 송' 공연 장면. 사진=나인스토리

음악극 '올드 위키드 송' 공연 장면. 사진=나인스토리



'올드 위키드 송'은 '음악극'이라는 장르답게 기존 연극에 비해 음악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는 작품이다. 이에 남명렬은 음악 연습에 더욱 열을 올렸다. 제작사 측은 "어쩌면 도전이라고 할 수도 있는 작품인데,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시는 부분을 채우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하셨다. '이 정도면 됐다'고 하시는 게 없다. 마지막까지 조금이라도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시기 위해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럽고 뭉클했다"고 존경의 마음을 표했다.


작품을 함께하는 연출, 배우들과의 소통도 중요시한다. 제작사는 "두 선생님은 극장에도 항상 일찍 오셔서 공연을 준비하시고, 이미 다 외운 대본도 다시 보신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좋았던 부분, 아쉬웠던 부분을 젊은 배우들과 이야기 나누며 끊임없이 연구하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매 회 감사하는 마음으로 공연에 임하고 계신다. 두 선생님이 요즘 같은 시기에 관객 한 분 한 분과 현장에서 만나는 걸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계시는지 느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극 '킹스 스피치' 공연 장면. 사진=연극열전

연극 '킹스 스피치' 공연 장면. 사진=연극열전



연극 '킹스 스피치'(제작 연극열전)가 공연 중인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는 귀여운 부부가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안긴다. 라이오넬 역을 맡은 서현철, 박윤희, 그의 아내 머틀 역을 맡은 이선주가 그 주인공이다. '킹스 스피치'는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았던 왕 조지 6세와 그의 언어 치료사 라이오넬의 이야기를 그린다. 말더듬증을 극복해가는 조지 6세의 성장기가 펼쳐지는 가운데, 투닥거리면서도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라이오넬-머틀 부부의 이야기가 관객을 웃음 짓게 한다.


제작사 연극열전은 코로나19로 인해 힘든 상황에서도 중심을 잡아주는 세 사람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제작사는 "어려운 시기이지만 공연을 일정대로 올릴 수 있도록 드라마 촬영 등으로 바쁜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연습에 참여해주셨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연습하는 힘든 상황 속에서 지칠 때면 특유의 재치와 말솜씨로 독려해주셔서 팀 전체가 힘을 낼 수 있었다"고 했다.


연극 '킹스 스피치' 공연 장면. 사진=연극열전

연극 '킹스 스피치' 공연 장면. 사진=연극열전



라이오넬 역의 두 배우는 이처럼 모두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고 있지만, "내 할 일을 하는 것일뿐"이라고 손을 내저었다. 박윤희는 "어려운 시국이지만 학생들은 비대면으로 공부하고, 직장인들도 비대면으로 각자의 역할을 맡아 제 몫을 하고 있지 않나. 배우도 내 직업이니 할 일을 하는 것 뿐이다. 물론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다만 적자 감수하면서도 공연을 올리는 제작자들의 고충을 알면서도 도움이 안 되는 게 미안할 뿐이다. 그래서 미미하게나마 지인들에게 연극 보는 거 문제 없다고, 공연 보러오라고 말하고 있다"고 사려 깊은 모습을 보였다.


서현철은 "다들 힘든 상황이지 않나. 힘든 상황을 이겨내는 어려움보다 내가 하는 일에 소중함을 새삼 절실히 깨닫고 느끼며 감사한 마음으로 극장을 찾는다"고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소중함과 이런 상황에도 무대에 오를 수 있다는 감사함을 표현했다.



이솔희 기자 sh040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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