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스테이지]국립극단 김광보 단장 "관객 만나는 것이 행복"

[언택트 스테이지]국립극단 김광보 단장 "관객 만나는 것이 행복"

최종수정2021.03.23 16:39 기사입력2021.02.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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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감염병이 휩쓸고 간 공연계. 달라진 풍경 위에서도 희망의 내일을 꿈꾸는 이들을 서정준 객원기자가 비대면으로 만나봅니다.

[뉴스컬처 서정준 문화전문기자] 대학로에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혹시 김광보 연출을 아느냐"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알지 않을까? 94년 데뷔해 이제 곧 연출 경력 30년을 머지 않게 두고 있지만, 여전히 신선한 감각으로 관객과 호흡하는 그는 '물고기 인간', '템페스트', '비', '함익', '옥상 밭 고추는 왜', '십이야' 등의 각종 극은 물론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던 서울시 예술단 통합공연 '극장 앞 독립군'이나 오페라 '베르테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와 소재를 선보인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이다.


그런 그에게 올해부터 약 3년의 기간 동안 국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이라는 새로운 직함이 주어졌다. 부산시립극단 예술감독, 서울시극단 단장에 이은 세 번째 도전으로 코로나19로 위기를 맞은 연극계에서 가장 중요한 단체 중 하나인 국립극단의 구원투수가 된 셈이다.


김광보 예술감독. 사진=국립극단

김광보 예술감독. 사진=국립극단


그와의 인터뷰는 몇 차례의 기다림 끝에 늦은 밤 전화로 이뤄졌다. 김 연출은 최근 일이 너무 많다며 "예술감독이 아니라 행정감독"이라고 농을 했다. 김 연출은 "그래도 두 칸씩 좌석을 띄우더라도 공연이 아예 취소되거나 중단되지는 않을 것 같다"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첫 스타트가 중요하지 않겠냐"며 "26일부터 공연되는 조광화 연출의 '파우스트 엔딩'이 첫 스타트를 잘 끊어주길 기대하고 있다. 내 공연을 올릴 때보다도 떨린다"고 근황을 전했다.


"국립극단에서 예술감독으로 일을 하는 동안에는 제 작품을 올리긴 어려울 것 같아요. 임명될 때 후배들한테 한 번의 기회라도 더 주고 싶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또 '왜 안 하냐'고 성화라서(웃음) 내년에는 어쩔 수 없이 한 작품 정도는 해야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 아직 잘 모르겠네요."


그는 작년 서울시 극단 단장직을 내려놓으며 야인으로 돌아가 작품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어려운 시국은 그에게 다시금 중책을 맡겼다. 그는 "작년에 중간 중간 작업할 때가 가장 행복했다. 지금도 연습을 보러 가면 그 잠깐이 그렇게 좋다"면서도 예술감독의 역할을 상기했다.


김광보 예술감독. 사진=국립극단

김광보 예술감독. 사진=국립극단



"국립극단에서 '레퍼토리 추천 자문위원회'를 만들어 오늘(25일) 첫 회의를 했어요. 국립극단에서 1년에 열 편 이상의 많은 작품을 해야 하는데 이걸 저나 담당 직원이 정하는데도 한계가 있어서 연출, 드라마 터그 등 다양한 분야의 7명을 위원으로 모셨습니다. 2022년 라인업을 6월까지 결정하고, 7월에는 연출을 정해서 8월에는 시즌 단원까지 뽑는 게 목표입니다. 연출가들에게 함께할 단원을 직접 뽑게 만들 생각이에요."


올해 초 '명색이 아프레걸'을 시작으로 이미 바쁜 2021년을 보내고 있는 김광보 연출에게 2020년은 어떤 해인지 물었다. "내 인생에서 없어진 해. 지워진 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오늘도 회의하던 분 중에 누가 자기에겐 2020년이 없기 때문에 아직 나이를 먹지 않았다고 하더군요(웃음). 연출가로 데뷔한 뒤 3~4년 지났을 때 IMF도 겪었는데 그때랑은 달라요. 그때는 힘들어도 공연을 올릴 수는 있었는데, 작년에는 아예 올리지 못하고 취소되는 일이 이어졌고 그러면서 공연이 엎어지는데 무감각해졌어요.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그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스스로 너무 아프니까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공연을 이어가는 것을 "대안이 아니라 장르가 달라지는 것"이라며 관객과 만나지 못한 2020년을 아쉬워했다. "결국 관객과의 교감이 배우들에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 김 연출은 그러나 온라인 스트리밍으로라도 공연을 이어가야 했던 현실을 받아들였다.


김광보 연출이 연극 '명색이 아프레걸' 공연의 아역 배우들과 함께 찍은 사진. 사진=본인 제공

김광보 연출이 연극 '명색이 아프레걸' 공연의 아역 배우들과 함께 찍은 사진. 사진=본인 제공



"후배들한테 참 미안해요. 공연을 못 올리는 일이 계속 이어지자 그게 내 책임 같았죠. 스트리밍이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그런 생각도 있었죠. 그러다 '명색이 아프레걸' 때 드디어 관객을 만났는데, 정말 관객과 함께 교감하고 호흡하는 게 이렇게 좋은 일이구나 느꼈습니다. 좌석이 많이 줄어서 회당 140명 정도, 5회 공연을 했는데도 (텅 빈 공연장과) 정말 다르다는 것을 느꼈죠."


김광보 연출은 "올해는 그나마 공연 올리고 관객 만나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며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 자체가 희망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줄어든 객석으로 공연을 이어가는 게 관객을 만난다는 점은 있지만, 정상적으로 공연을 해나가는 것은 아니기에 완벽하게 문제가 해결된 상황이라고 할 순 없다"며 "이런 딜레마를 어떻게 슬기롭게 풀어갈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에게 2021년은 어떤 해가 될까 묻자 국립극단의 무게감을 이야기하면서도 평소의 소탈한 어투로 "잘 해야하지 않겠냐"는 원론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단체장으로서 지금까지 해온 것에 비해 훨씬 무거운 짐을 지고 있어요. 국립극단의 네임밸류가 참 압박감이 많네요. 어쨌든 제 바램은 제 직무를 무난하게만 해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잘하겠다'는 것도 힘들고요. 그렇게 무난하게 이끌어간다면 그게 가장 행복하지 않을까 싶어요. 국립극단을 잘 이끌어야죠."

화려하지 않은 언어로도 이야기의 본질을 날카롭게 꿰뚫는 그의 연출력처럼, 국립극단 단장으로서의 역할도 잘 해내지 않을까.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해본다.



서정준 객원기자 newsculture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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