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전30주년①]문화예술인 배출한 창작 텃밭…김민기의 뚝심

[학전30주년①]문화예술인 배출한 창작 텃밭…김민기의 뚝심

최종수정2021.03.26 09:21 기사입력2021.03.1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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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3월 15일 창설
설경구·황정민·김윤석·조승우 데뷔
故김광석·노영심·윤도현 라이브
대중예술인 배출한 창작터 역할
김민기 대표 실험과 도전
문화계 유의미한 족적

[뉴스컬처 이이슬 기자] 대학로에 파란 간판을 건 극장. 뜨거운 감정의 아지랑이들이 피어오르고, 또 다른 세계의 한 가운데에서 다양한 인물들과 만나는 관객들의 눈동자 굴러가는 소리가 뒤섞인다. 때로는 듣기 좋은 기타 연주하는 소리, 한과 흥이 어우러진 노래가 흘러나오는 이곳은 30년 동안 굳게 뿌리내린 학전 극장이다. 학전은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서울대 문리대가 있던 시절, 배울 학(學)에 밭 전(田) 학내 식당 이름을 따 지었다. 1991년 3월 15일 간판을 건 학전 블루 소극장은 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 자리를 지키며 실험과 도전을 이어왔다.


대학로의 시계는 지난해 1월 이후 멈췄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여파로 공연들은 하나둘 간판 불을 껐고, 웃고 울며 공연을 즐기던 관객 발길도 뚝 끊겼다. 공연문화계는 바이러스가 사라지는 세상이 오길 기다리며 조심스럽게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안타깝게도 지난해 문을 닫은 극장도 여럿. 운영난에 다수 극장은 다른 형태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학전30주년①]문화예술인 배출한 창작 텃밭…김민기의 뚝심


라이브 공연 태동

이러한 분위기 속 학전의 존재는 특별하다. 긴 세월 자리를 지키며 다양한 배우·가수를 키워냈다. 중심에는 '아침이슬'의 작곡가로도 잘 알려진 김민기 대표가 있다. 90년대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을 비롯한 가수들이 아이돌 열풍을 일으키자 갈 곳 잃은 음악인들을 위한 라이브의 장이 됐다. 고(故) 김광석은 학전 극장에서 1,000회 공연을 개최했고 91년부터 95년까지 꾸준히 라이브 콘서트를 열었다. 2008년에는 극장 앞에 '김광석 노래비'가 세워졌으며, 매년 '김광석 노래 부르기'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 1월 열 번째 대회가 무관중으로 열리며 고인을 기억했다.


동물원은 1993년 '우리가 세상에 길들기 시작한 후부터'를 필두로 라이브 공연을 이어갔다. 들국화·노영심·이소라·동물원·여행스케치·유리상자·윤도현·장기하 등이 이곳에서 노래했다. 학전에서 관객과 만나던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는 KBS 프로그램이 됐고 이후 '이소라의 프러포즈', '윤도현의 러브레터', '유희열의 스케치북'으로 이어지는 공연 토크쇼의 근간이 됐다. 음악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남다른 김 대표는 여러 음악인을 물심양면 지원하며 라이브 공연의 명맥을 이었다.



영화·공연계 스타들 키운 사관학교

학전에서 설경구·김윤석·황정민·조승우 등 영화계 스타들도 자랐다. 1994년 극단 학전을 설립해 다양한 공연을 올렸으며, 그해 5월 14일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처음 막을 올렸다. 1986년 초연된 독일 폴커 루드비히 원작을 국내 상황에 맞게 각색해 호평을 받았다. 중국에서 서울로 온 연변 처녀를 비롯해 실직가장, 가출소녀, 지하철 잡상인, 자해공갈범 등 다양한 인간군상을 통해 현실적 문제를 꼬집었다.


사진=뉴스1

사진=뉴스1



이를 통해 걸출한 스타들이 연기 발판을 다졌다. '학전 독수리 오형제'로 불리는 설경구·김윤석·장현성·황정민·조승우는 현재 충무로를 이끄는 스타가 됐다. 이들은 2001년 공연에 나란히 출연하기도 했다. '기생충'으로 칸과 오스카를 밟은 이정은은 1996년 '지하철 1호선'에서 할매 역으로 데뷔했다. 이종혁·배성우·김원해·김희원·박혁권·김대명·전배수·박명훈 등 영화계를 주름잡는 다수 배우가 학전을 통해 연기를 시작했다.


무대에 오르기 위한 토대를 닦은 배우도 여럿이다. 배해선은 1998년 '의형제'로 데뷔했으며, 뮤지컬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최근 예능에서도 활약 중인 신성록과 공연계 탄탄한 팬덤을 구축한 정문성을 비롯해 김무열·김종구·김국희·김재범·최재웅·김희어라·서지영·정욱진 등이 학전을 거쳐 갔다. 문화계 각 분야에서 활동 중인 출신 배우를 다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다수 배우를 배출한 창작터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곳은 조그만 곳이기에 논바닥 농사가 아니다. 못자리 농사다. 못자리 농사는 애들을 촘촘하게 키우지만, 추수는 큰 바닥으로 가서 거두게 될 거다.


김민기 대표가 학전을 처음 열 때 한 말이다. 이처럼 학전은 수많은 대중문화계 배우·음악인을 배출한 창작 산실의 역할을 해냈다. 그는 '아침이슬', '상록수' 등을 선보이며 포크 음악시대의 대표적 인물이다. 1970년대 발표한 곡이 방송금지 처분을 받는 등 엄혹한 시절을 보냈다. 이후 그가 세운 학전은 다수 대중예술인에게 비옥한 창작 토양이 되며 예술적 영혼을 살찌우는 역할을 했다.


사진=뉴스1

사진=뉴스1



도전·실험정신, 김민기의 뿌리

김민기 대표는 도전과 실험을 멈추지 않고 30년간 이어오고 있다. 2008년 11월 4,000회로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관객과 만나온 '지하철 1호선'을 번안·연출했다. 당시 첫 공연이 끝난 후 뉴스컬처와 만난 설경구는 "김민기가 이 공연의 매력이다. 공연이 꼭 김민기라는 사람을 닮았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낡았다며 한 켠에 미뤄둘 법한 이야기를 긴 세월 지켜오고 있는 것은 김 대표의 소신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학전은 화려하고 자극적인 상업극이 즐비한 대학로에서 소신과 원칙을 지켜가고 있는 극단으로의 역할도 하고 있다. 1997년 청소년극 뮤지컬 '모스키토'를 제작한 이래 10편 이상의 아동·청소년극을 선보이고 있다. 2004년 '우리는 친구다'를 비롯해 '고추장 떡볶이', '무적의 삼총사', '진구는 세임중', '슈퍼맨처럼!', '아빠 얼굴 예쁘네요' 등 어린이·청소년 레퍼토리를 꾸준히 올리고 있다.


김민기 대표는 "아동 청소년극은 유치하다는 기성세대의 편견을 깨주고 싶었다"며 "아이들의 정서를 건강하게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도전과 실험 정신은 곧 김민기의 뚝심이자 학전 그 자체다. 관객수와 수익만 좇지 않고 오래 지켜온 철학을 고수하며 예술 정신을 이어오고 있다. 대중문화계 발전을 이끌며 대학로의 심장처럼 살아 숨 쉬는 김민기의 학전이 지난 30년 역사를 토대로 40년, 50년 나아가 100년 전통을 이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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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태윤 기자, 각 표기.


[학전 30주년②]요란하지 않아도…묵묵하게 지켜온 자리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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