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은 왜, 다시 흑백영화 메가폰을 잡았을까

최종수정2021.03.25 09:05 기사입력2021.03.1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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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산어보' 언론시사회 현장
이준익 14번째 작품
정약전役 설경구 사극 첫 도전
수묵화 같은 미장센
흑백이지만 다양한 색 느껴져

[뉴스컬처 이이슬 기자] 이준익 감독이 조선시대의 학자 정약전과 어부 창대의 이야기를 흑백 화면에 담았다. '사도', '동주', '박열'에 이어 역사 속 인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장기는 이번에도 빛났다. 때론 수묵화처럼, 때론 전래동화처럼 다가와 마음에 잔잔한 파도를 일으킨다.


이준익 감독은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진행된 영화 '자산어보' 언론시사회에서 "정약전의 역사적 기록과 어류 학서 '자산어보' 서문에 등장한 창대 이야기를 고증과 허구를 바탕으로 그렸다"고 말했다.


이준익은 왜, 다시 흑백영화 메가폰을 잡았을까


'자산어보'는 흑산으로 유배된 후, 책보다 바다가 궁금해진 학자 정약전과 바다를 벗어나 출셋길에 오르고 싶은 청년 어부 창대가 자산어보를 집필하며 벗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 감독이 조선시대 학자 정약전을 조명한다. 첫 사극에 도전하는 설경구는 흑산도로 유배된 후 바다 생물에 눈을 뜬 학자 정약전으로, 변요한은 흑산도를 벗어나기 위해 글공부를 하는 청년 어부 창대를 연기한다.


14번째 연출작을 내놓는 자리에서 이준익 감독은 "실존 인물은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는 소재다. 조선의 서학, 천주교가 들어오며 벌어지는 사건 속 인물인 정약전의 사연으로 들어간다. 정약전, 정약용에 관한 역사적 기록이 있어서 표현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으나 창대는 이름만 있지 기록이 많지 않아서 고증과 허구를 바탕으로 그렸다"고 말했다.


이준익 감독은 그간 사건이 아닌 ‘사람’에 집중하며 역사 속 다양한 인물들의 관계를 재조명했다. 영조, 사도세자, 정조로 이어지는 조선 왕조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를 다룬 '사도'에 이어 '동주'에서는 평생을 함께한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시인 윤동주와 송몽규 열사의 청년 시절을 담담하게 그렸다. 이번에는 흑백 화면에 정약전과 창대의 이야기를 수놓았다. 왜 흑백이어야 했을까. 그는 "조선시대를 흑백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을 거 같아서 고집해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세 장면을 제외하고 전부 흑백으로 완성됐다. 폭의 수묵화 같은 흑백 미장센에 관해 이준익 감독은 "오히려 흑백으로 안 느껴진다"라며 "정말 많은 색이 느껴진다. 색이 없는 거 같지만 그 안에 많은 색을 담고 있다"고 강조했다.


2005년 개봉한 '동주' 역시 흑백으로 완성한 바. 일제강점기의 아픔이 녹아들어 음울한 분위기를 이뤘지만 '자산어보'는 분위기가 다르다. 감독은 "'동주'는 일제강점기이고 20대에 세상을 떠난 청년의 이야기이다. 어둠을 깊이 있게 다루려고 했다. 활짝 웃는 장면이 영화에 별로 없지만, 젊은이의 가슴 안에 있는 청춘의 모습은 어둡지만 아주 싱싱하다"고 말했다. "'자산어보'는 어둠보다는 밝음이, 흑보다는 백이 많이 차지한다. '동주'와 '자산어보' 모두 개인은 시대 속 불화를 겪고 있다. 그걸 이겨내는 방식이 다르다"며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은유했다.


정약용이 '시대를 아파하지 않은 시는 시가 아니다'라고 했다. 윤동주의 시도 자신의 부끄러움을 이야기하는 거 같지만 시대를 아파하는 시 정신이 있다. 정약용과 윤동주의 시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이준익은 왜, 다시 흑백영화 메가폰을 잡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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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어보'에 눌러 담은 묵직한 메시지와 고민도 털어놨다. 감독은 "근대성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고민했다. 커다란 사건이나 정치, 전쟁사로 시대를 규정짓는 것 자체가 오류라고 봤다. 답은 개인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 집단이 가지고 있는 씨앗들이 크게 보였다. 정약전은 정약용과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 속에서 창대가 어떻게 방향을 달리하는지 조명했다. 그렇다면 2000년대를 사는 우리의 삶은 다를까. 개인주의의 현대성을 정약전과 창대를 통해 찾아가려 했다"고 말했다.


정약전을 연기한 설경구는 "큰 학자의 실제 이름을 배역으로 쓴다는 건 배우로서 부담스러운 일"이라며 "정약전에 대해 연구하고 공부했다기보다, 섬에 들어가서 감독님, 스태프들, 배우들과 잘 놀자, 라는 마음으로 촬영에 임했다. 사극이 처음이라서 거기서 오는 초반의 부담이 있었는데 감독님께서 잘 어울린다고 용기를 주셔서 그 말을 믿고 했다"며 남다른 신뢰를 보였다.


이준익 감독의 손 잡고 사극에 도전한 설경구는 "한 영화제 시상하러 갔다가 우연히 감독님 만났다. 다짜고짜 책을 달라고 했더니 사극 준비하신다더라. 출연하고 싶다고 했더니 열흘 후에 책을 보내주셨다. 이준익이라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사극이 어렵다는 말을 들어서 미루다가 하게 됐다. 다른 사극과 달리 섬에서 촬영하니까 더 똘똘 뭉쳐서 할 수 있었다. 즐거운 작업이었다. 한 번 더 해도 괜찮을 거 같다"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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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을 하고 나면 관객들이 고증과 허구를 구분해주시리라 생각한다. 철저한 고증을 중시한다면 사실이나 기록을 통해 진실에 도전하는 것이 학자의 길이라면, 창작, 예술가는 기록을 근거로 허구를 통해 진실에 도전한다. 영화가 진실에 도착하지 않지만, 노력을 게을리할 수 없다. 어느 정도 근거로 합당한 허구를 붙였나, 아니면 합당하지 않은 날조를 붙였나 판가름 나는 것이다. 그로 인해 5~10년 후 자기 자리를 찾아가기도 하고, 흩어져 없어지기도 한다. 전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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