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자산어보' 신분의 벽 넘어 꿈꾸는 세상

최종수정2021.03.20 08:00 기사입력2021.03.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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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산어보' 리뷰
유배온 정약전과 어부 창대
서로의 벗이자 스승으로
수묵화처럼 펼쳐지는 하늘·바다
이준익 감독 특유 연출색 짙어
1020세대·여성 관객 호불호 갈릴듯

[뉴스컬처 이이슬 기자] 높고 청명한 하늘. 굽이치는 파도와 맑고 푸른 바다. 조선시대 흑산도 사람들은 청정 자연이 선물해준 물고기와 해초를 먹고 살아간다. 바닷가에 옹기종기 터를 잡고 물질하며 살아가는 어민들이다. 어느 날, 배 한 척이 정박하고, 멀끔한 차림새의 양반이 배에서 내려 땅을 밟는다. 신유박해로 머나먼 섬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설경구 분)이다. "이 양반은 대역 죄인이니께 너무 잘해줄 생각들 말어"…흑산도 별장은 주민들에게 따끔히 이른다. 섬을 찬찬히 둘러보는 약전의 얼굴에 피로와 수심이 가득 차 있다. 어디에 짐을 풀까, 주민들 사이에서는 눈치 싸움이 벌어지고 가거댁이 정약전에게 방을 내어준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흑산도 사람들. 섬에 터전을 잡고 문어, 도미 한 마리에 세상 큰 행복을 느끼고 잡은 만큼 먹고 만족하며 살아가는 어민들 사이에 정약전이 자리한다.


어부 창대(변요한 분)는 흑산도에서 나고 자란 섬 토박이 청년이다. 바다 생물과 물고기에 이야기만 나오면 특징과 생김새를 술술 흞어 내려간다. 정작 그의 최대 관심사는 공부다. 천자문, 소학, 명심보감 등 가리지 않고 책을 독파해왔지만, 독학은 멀고 험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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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바다 생물과 물고기와 마주한 정약전은 호기심을 거둘 수 없다. 이를 책으로 옮길 결심을 하고 바다를 훤히 알고 있는 청년 어부 창대에게 도움을 구한다. 그러나 창대는 사학죄인을 도울 수 없다며 거절한다. 혼자 글공부를 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약전은 지식을 거래하자고 제안하고, 이후 두 사람은 서로의 스승이자 제자가 되어간다.


"너 공부를 왜 하냐?"…"사람 될라고요. 책을 띠고 시도 지을 줄 알아야 사람대접을 받지라." 정약전은 창대가 출세하기 위해 공부에 매달린 것을 알고 크게 실망한다. 창대 역시 정약전과 길이 다름을 깨닫고 그의 곁을 떠나 더 큰 세상에서 자신의 뜻을 펼칠 결심을 한다.


서로의 지식을 교환하며 다른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흥미롭게 그려진다. 바다가 안기는 설렘과 섬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공간적 특성도 몰입을 돕는다. 문어, 도미, 짱뚱어, 갑오징어 등 다양한 물고기와 바다생물이 등장하고 이를 서술하는데 여기서 이준익 감독 장기가 발휘된다. 역사적으로 흥미로운 요소를 부각시켜 서술하며 영화에 집중하게 한다. 밤하늘에 쏟아질 듯 가득한 별, 망망대해의 퍼런 바다, 기분 좋은 물소리 등은 체험적 요소로 작용한다. 아울러 흑백 미장센에 펼쳐지는 자연 풍광은 한 폭 수묵화처럼 빛난다.


그러나 '자산어보'는 1020 관객에게는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젊은 관객들이 두 남성의 우정 이야기, 조선시대 배경에서 그려지는 물고기 이야기에 흥미를 느낄지는 미지수다. 사극 특성상 젠더 감성도 결여돼 있다. 최근 전 세계 영화계 분위기를 의식한 듯, "좋은 씨보다 밭이 중요하다"고 외치는 가거댁의 말 한마디로 여성을 이해했다고 볼 순 없다. 그 후 이어지는 '기생'이라는 단어가 가시처럼 박히며 불편하게 한다. 이러한 장면을 너털웃음으로, 한낮 웃음거리로 소비해버리고 만다. 젠더 감성을 높이기 위한 장면이었으나, 오히려 한계를 노출해 아쉽다.


이처럼 영화는 시대적 한계를 고스란히 안고 있다. '유교 보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가부장적 제도와 구조를 거부하는 세상에서 유교를 따르고 공부하며 읊는 장면에 몰입할 수 있을까. 신유박해로 정약전이 유배에 처했지만, 단 한 줄 설명일 뿐이다. 영화에서 여성은 노소를 막론하고 남성을 위해 밥 짓고, 남성을 살피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주체로 그려지는 데 그친다. 여성 관객들에게는 몰입을 깨는 높은 허들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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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 권력을 탐하는 부패한 양반들의 모습은 전형적인 악인으로 묘사된다. 구수하고 예스러운 배경음악 탓인지, 영화는 한 편의 전래동화 같은 느낌을 준다. 4050 관객들에게는 몹시 흥미롭게 즐길 영화가 될 듯하다.


설경구의 연기는 빛난다. 매 순간, 찰나, 내밀한 감정들이 온 얼굴 세포에서 살아난다. 왜 사극을 이제 했을까 싶을 만큼 호연으로 정약전을 지었다. 설경구가 정약전을 연기하지 않았다면 전혀 다른 빛깔을 띄었을지도 모르겠다. 다소 부족한 변요한의 호흡까지 꽉 채우며 중심을 잘 잡았다. 가거댁을 연기한 이정은과 설경구가 한 화면에 들어서면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처럼 몰입하게 된다. 이 점이 가장 큰 미덕이라 말하고 싶다. 러닝타임 126분. 12세 이상 관람가. 3월 31일 개봉.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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