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자산어보' 이준익 감독 "적당한 불안이 나를 숨쉬게 한다"

[인터뷰]'자산어보' 이준익 감독 "적당한 불안이 나를 숨쉬게 한다"

최종수정2021.03.25 08:37 기사입력2021.03.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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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어보' 이준익 감독 인터뷰
'동주' 이은 두번째 흑백영화
정약전·어부 창대 이야기
설경구·변요한 주연
3월31일 개봉

[뉴스컬처 이이슬 기자] 특유의 재치는 여전했다. ‘변산’(2018) 이후 3년 만에 새 영화를 선보이는 자리. 치아를 환하게 드러내며 “비상업적 소재인데도 도전하고 싶었다”며 웃는다. 작업실에 앉아 화면을 쳐다보는 모습이 천상 영화쟁이다. 툭 눌러쓴 비니모자 사이로 배어드는 땀을 수시로 닦으면서도 왜 정약전이어야 했는지, ‘자산어보’의 서문에 적힌 창대라는 이름에 눈이 갔는지 신나게 말한다. 자료를 찾고 또 찾으며 영화를 준비해온 그의 지난 시간이 머리에 스쳤다. 그러다 문득 “유식한 것 같은데 전혀 안 그래. 영화를 위해 요 부분만 외웠다”며 코 밑을 쓱 훔친다.


이준익 감독은 최근 영화 '자산어보' 개봉을 앞두고 진행된 화상 인터뷰에서 3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과 5년 만에 다시 흑백 영화로 돌아온 이야기를 전했다.


[인터뷰]'자산어보' 이준익 감독 "적당한 불안이 나를 숨쉬게 한다"


2021년 오늘, 사극은 관객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소재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누군가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창작한 사극 장르를 무겁다며 한 켠에 밀어버릴 수도 있다. 화려한 특수효과보다는 먹먹한 울림을, 반전과 스릴러보다 개인과 시대의 희로애락을 담아낸 사극은 소위 돈을 벌기 위해 만든 영화로 보긴 어렵다. ‘황산벌’(2005)로 충무로를 놀라게 한 이 감독은 ‘왕의 남자’(2005), ‘구르믈 벗어난 달처럼’(2010), ‘사도’(2015)에 이어 ‘자산어보’까지 꾸준히 사극을 선보이고 있다. 이를 가리키자 “저도 잘 모르겠다. 제가 왜 사극을 하고 있을까요”라고 물으며 진지하게 답변을 이어갔다.


“예전에 수입업자였다. 영화를 들고 칸 영화제 마켓에 가고. 외국 바이어를 상대하며 느낀 점은 한국 역사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것이었다. 기초 지식조차 없더라. 우리 역사를 중국 역사로 받아들이고 있어 안타까웠다. 우리는 일본, 중국과 엄연히 다르다고 했더니 뭐가 다르냐고 묻더라. 막상 대답하기가 막막하더라. 그래서 ‘황산벌’을 연출했다. 영화를 만들어 보여줘야 겠다,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만들었다. 우리 어렸을 때 서부영화를 많이 보지 않았나. 그게 미국의 사극이다. 1980년대 서부영화. 그들은 그 시대에 총격전을 벌이고 대립했지만 우리는 성리학과 서학을 철학적으로 읊고 토론하며 사상적 투쟁을 했다. 우리 문명이 아주 세련되고 우수하지 않나. 문득 국내 사극영화를 돌이켜보니 60년대 고(故)신상옥 감독님의 작품뿐이더라. 아쉬웠다.”


이준익 감독은 총기 품은 눈으로 말했다. 그러더니 “‘황산벌’이 잘되고 내친김에 한 번 더 가자 해서 찍은 게 ‘왕의 남자’다. 그러다 ‘자산어보’까지 왔다. 다음엔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 항상 즉흥적으로 사는 사람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앞으로도 훌륭한 사극 작품을 찍는 감독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며 슬쩍 본론을 꺼냈다.


사극은 장르적으로도 매력적이라고 강조했다. “개인의 사소한 일상이 거대한 사건보다 더 가치 있는 세계관을 형성할 수 있다. 송몽규가 있어서 윤동주가 있고, 아내 후미코 없이 박열도 없다. 정약용도 정약전 없이 혼자 다 했겠느냐. 또 창대와 함께이고. 이름하나 달랑 적혀있지만, 그 사람의 빛나는 순간을 영화로 목격하고 느낄 수 있다면, 그 안에 내가 있다면. 사극의 매력이 아닌가.”


[인터뷰]'자산어보' 이준익 감독 "적당한 불안이 나를 숨쉬게 한다"


이준익 감독은 이같이 말하며 비상업적 소재임에도 도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사건보다 사연에 집중한 까닭이다. “정약전이 ‘자산어보’ 서문에 흑산도에서 창대를 만나 도움을 받아 책을 썼다고 기록했다. 창대가 궁금했다. 정약전, 정약용은 역사적 기록에 남아있는데 창대는 이름만 있었다. 중간중간 창대의 말을 인용해 옮긴 것 외에는 어떤 내용도 나와 있지 않아 궁금했다.”


‘동주’에 이어 6년 만에 다시 흑백 화면에 이야기를 펼쳤다. 이를 물으니 “성과가 있으니 나름대로 자신감도 생겼지”라며 웃는다. 이준익 감독은 “동주는 동주다. 조선시대 사극을 배경으로 삼는 건 새로운 불안 요소였다”면서도 “사극을 여러 편 찍어봐서 노하우가 생겼다. 불안감을 자연과 배우들로 채웠다. 누군가에게 기대기도 하고 특히 시나리오에 기댔다”고 말했다.


“일반적이지 않은 선택을 한 것이 생경하게 다가갈 수 있다. 소재 자체도 상업적이지 않다. 그런 소재를 상업영화 감독이 연기 잘하는 배우들과 아기자기하게 만들었다.”


불안감은 영화를 찍는 데 보약이 됐다. 그는 “삶 자체가 불안하다. 이 순간도 불안하고 불안하지 않으면 살아있는 게 아니다. 불안감을 무시해버리면 직업적 뜻을 이루지 못한다. 영화가 제 직업이라 늘 불안감을 안고 간다. 불안이 없어지면 더 불안해진다. 적당한 불안이 나를 숨 쉬게 한다”고 했다.


설경구가 유배지 흑산도에서 바다 생물에 눈을 뜬 호기심 많은 학자 정햑전으로 분해 첫 사극에 도전했다. 이준익 감독 작품이었기에 가능한 도전이었다. 신뢰가 바탕에 깔린 선택임이 틀림없다. 이 감독은 설경구의 얼굴에서 조선시대 선비를 봤다고 했다.


“설경구의 체격, 자세, 골격과 말하는 톤 앤 매너 등에서 모든 걸 느꼈다. 어릴 때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서 정서와 톤 앤 매너를 기억하고 있다. 매 순간, 매 장면 선비 같았다. 영화에서 정약전이 ‘주자는 참 힘이 세구나’라는 대사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자신이 들은 말을 창대한테 전달하는 장면이다. 그게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 아닌가. 그 대사를 하는 설경구의 얼굴을 보면 내면의 가치관을 그대로 보여준다. 선비의 품처럼 다가왔다. 마치 잘생겨 보이기까지 하더라.”


[인터뷰]'자산어보' 이준익 감독 "적당한 불안이 나를 숨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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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전의 둘째 아우이자 ‘목민심서’ 등을 집필한 조선의 실학자 정약용에는 류승룡이 힘을 보탰다. 정약용이 등장하는 순간 영화의 공기가 달라진다. 설경구와 류승룡이 마주하는 장면은 엄청난 에너지의 소용돌이에 관객을 몰아넣는다. 연출자로서 약용의 캐스팅 역시 중요했을 터. 이준익 감독은 “류승룡은 목소리가 대학자야. 대학자”라며 신나게 말을 이어갔다.


“류승룡이 쫙 여는 순간 훅 들어온다. 다른 영화에서 주연배우를 하는 사람인데 우정 출연을 제안하다니, 결례를 범했다. 정확히 맡아줘야 할 영역을 벗어나지 않고 세련되게 연기해줬다. 감독으로서 정말 고맙고 행복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만큼. 그건 정말 선수들만 하는 거리재기다. 정약전 설경구의 연기 주파수를 넘어서지 않는, 정약용의 간격만큼 해주는 연기. 감독은 그런 연기를 보면 가서 끌어안고 뽀뽀해주고 싶다.(웃음)”


1814년 학자와 청년의 이야기가 2021년을 살아가는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이준익 감독은 비뚤어진 안경을 고쳐 쓰며 차분히 답했다. “시대극의 현재성. 관객을 획일화시킬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고 본다. 개인차라는 게 있다. 세대, 성별, 입장 등 차이가 있다. 대중에게 영화가 어떻게 다가갈지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촬영하며 그러한 요소를 과도하게 의도한 적도 있었다. 계산하다 보니 결국엔 잘 안 되더라. 의도 없음이 있음보다 더 가치 있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의미는 관객이 부여하는 거지 만드는 사람이 부여하는 게 아니다. 영화가 지닌 보는 사람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확산을 막기 위해 비대면 화상 인터뷰로 마주한 이준익 감독은 “답답하다”며 “다음에 혹시라도 영화를 찍으면 꼭 대면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영화 개봉을 앞둔 상황에 우려와 당부를 전했다.


“우리가 인터뷰도 지금 제대로 못 하고 있지 않나. 기자간담회도 썰렁했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데 혼자 말해서 이상했다. 엄격한 방역 수칙을 지켜야 하기에 노력을 다하고 있다. 코로나 회복세가 더딘 상황에서 개봉하는 게 부담도 된다. 이런 사태가 1년이 이어져 왔다. 거기에 사회가 어느 정도 적응해가는 상황이 아닐까. 그런데도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영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런 정신으로 조심스럽게 관객과 만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인터뷰]'자산어보' 이준익 감독 "적당한 불안이 나를 숨쉬게 한다"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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