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자산어보' 설경구 "나이들며 조금씩 내려놓으니 편해요"

[인터뷰]'자산어보' 설경구 "나이들며 조금씩 내려놓으니 편해요"

최종수정2021.03.28 08:00 기사입력2021.03.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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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산어보' 설경구 인터뷰
호기심 많은 학자 정약전役
이준익과 '소원' 이후 8년만
시나리오 읽고 눈물
운동하며 촬영 준비
내려놓으니 마음 편해

[뉴스컬처 이이슬 기자] “주자는 참 힘이 세구나” 정약전이 어부 창대를 바라보며 말한다. 켜켜이 쌓아 올린 세월이 느껴지는 한 마디. 치기 어린 시절, 누군가에게서 들은 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를 다시 청년에게 돌려주는 모습은 고스란히 약전의 가치관을 투영한 장면이다. 이준익 감독은 이 장면에서 설경구가 잘생겨 보였다고 말했다. 데뷔 28년 만에 처음 도전한 사극이었지만 신기하게도 발에 꼭 맞는 신발처럼 참 잘 어울린다. 엄밀히 말하자면 사극보다 선비의 모습이 설경구의 모습과 닮았다. 수평적 사고를 지니고 깨어있는 행동을 하는 기성세대지만 결정적 순간 “저런 상놈의 자식”이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오는 양반. 민초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죽음을 마주한 순간에 의관을 갖추고 있는 정약전의 얼굴에서 설경구가 비친다.


설경구는 최근 영화 ‘자산어보’(감독 이준익) 개봉을 앞두고 진행된 온라인 화상 인터뷰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영화는 흑산으로 유배된 후, 책보다 바다가 궁금해진 학자 정약전(설경구 분)과 바다를 벗어나 출셋길에 오르고 싶은 청년 어부 창대(변요한 분)가 자산어보를 집필하며 벗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인터뷰]'자산어보' 설경구 "나이들며 조금씩 내려놓으니 편해요"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이준익 감독에게 무턱대고 “시나리오를 달라”고 말한 순간 ‘자산어보’가 시작됐다. 이 감독은 이후 열흘 만에 시나리오를 보냈다. 설경구는 “사극에 대한 부담감이 중요한 건 아니었다. 장르 상관없이 이준익 감독과 꼭 다시 호흡을 한번 맞춰보고 싶었다”고 출연 배경을 설명했다.


“시나리오에 젖어 들었다. 처음 읽을 때는 제 대사에 집중했다. 다음엔 주변 인물을 보고 전체를 봤다. 마음이 동요했다. 책을 읽으며 마음이 움직였달까. 세 번째 읽을 때는 눈물이 나더라.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웃음) 물론 눈물이 난다고 해서 다 좋은 책은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쭉 흐르는 데 기분이 좋았다. 차곡차곡 젖어 들어서 눈물이 났다. 감독님을 만나 내 감정에 대해 말했더니 관객으로부터 그런 마음을 끌어내고 싶다고 하셨다.”


정약전은 실존 인물이다. 순조 1년(1801년) 신유사옥이 일어나 천주교 신도들이 박해를 입자 아우인 정약용은 강진에, 정약전은 흑산도에 유배되었다. 여기에서 복성재를 지어 청소년들을 가르치고 우리나라 최초 수산학 관계 서적인 자산어보를 지었다. 더듬다 보면 힘이 세게 들어갈 수도 있다. 사극이라는 장르적 특성과 업적, 연민 등은 자칫 뻣뻣하게 배역을 완성할 수도 있지만, 설경구는 달랐다. 데뷔 후 처음으로 한복을 걸치고 갓을 쓴 그의 얼굴은 한결 편안했다. 엄청난 노력으로 완성한 여유로움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설경구는 “돌이켜보면 연기에 힘이 잔뜩 들어간 시절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하루하루 불안하다.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일 뿐”이라며 시선을 떨궜다.


[인터뷰]'자산어보' 설경구 "나이들며 조금씩 내려놓으니 편해요"


힘을 빼고 배역을 입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정약전이라는 앞에 두고 배역에 접근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실존 인물을 이름 그대로 연기하는 게 부담스러웠다는 것. “‘자산어보’는 정약전 선생이 쓴 책이고 다른 이름을 붙이는 게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영화가 성리학이나 목민심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기에 쉽게 접근하려 했다. 섬에 들어가서 스태프, 배우들과 함께 놀아보자는 생각으로 촬영했다.”


극 초반 관리의 입을 통해 ‘약전이 더 위험한 인물이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정약전이 수평적 사고를 했고 모든 사람에 계급 없이 평등했다. 하지만 정약전은 책을 많이 쓸 수 없었다. 자기 생각을 책으로 썼다가는 나와 주변 모든 사람의 생명이 위태로웠을 거고. 책을 많이 못 남겼을 것이다.


연극 ‘심바새매’(1993)로 연기를 시작해 28년째 배우로 걸어오며 고수하는 원칙이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설정해놓은 원칙은 아니지만, 연기하며 ‘이게 나를 움직이는 힘인가?’라고 느낀 건 땀이다. 변치 않고 실천하는 게 있다. 촬영 전 늘 땀을 흘리고 가자는 마음이다. 하루도 안 빼놓고 지키고 있는 일이다. 촬영을 새벽 5시에 시작하면 서너 시간 전에 일어나서 꼭 땀을 뺀다. 몇 시 콜이든, 촬영이 있든 없든 반드시 지키는 나와의 약속이다. 누가 시켜서 하라면 절대 못 할 거다. 저도 모르게 생긴 습관이다. 땀을 흘리며 힘을 쫙 빼고, 여러 생각을 하면서 운동을 한다. 그게 나를 움직이는 힘이 아닐까.


설경구는 “정약전은 하나의 큰 판이라고 생각했다. 그 안에서 창대, 가거댁, 여러 민초와 관리의 모습이 튀어나온다. 그 틀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고 봤고 바탕을 잘 만들어줘야 했다. 그러면서도 양반의 모습은 놓치지 않았다. 사상을 깨어있더라도 태생적으로 나오는 양반의 습성, 생각, 습관은 놓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설경구는 이준익 감독과 ‘소원’(2013) 이후 8년 만에 호흡을 맞췄다. 그와 작업해본 배우들은 입 모아 창작의 자유를 이야기하곤 한다. 다양한 스타일의 연출 방식이 존재하지만 비교적 자유로운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간다는 것. 설경구 역시 의견을 같이했다. “자유롭지만 표현했을 때 감독과 맞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류승룡 씨가 감독님 별명이 ‘컷 오케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작업하지는 않으셨다. 함께 만드는 걸 중요시하는 분이다. 내 말이 답이니까 일방적으로 들으라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의견을 들어보고 맞으면 수용하고 찾아가는 스타일이지 답을 주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인터뷰]'자산어보' 설경구 "나이들며 조금씩 내려놓으니 편해요"


‘자산어보’에서 설경구는 어딘지 모르게 달라졌다. 무뎌진 칼 같기도 한데, 표정이 더 선명하고 편해진 느낌이다. 그는 “예전에 누군가로부터 장미 같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예쁜데 가시가 많다고.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끼치는데. ‘박하사탕’ 때는 정말 심했다. 배역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촬영 전날부터 인물의 감정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주변에서 나를 보며 많이 힘들어했다. ‘불한당’ 이후 조금 바뀌었다. 요새는 감정에서 일부러 벗어나려 한다. 순간 집중하려 하다 보니 더 편해지고 오히려 다른 생각을 하려 한다”고 달라진 변화에 대해 말했다.


예전에는 “언제 그만두나 고민을 많이 했다. 조급했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당시 두 작품 연출한 변성현 감독이 ‘내가 계단을 밟고 내려오게 해주겠다’고 하더라. 그다음부터는 마음이 편해지고 조금씩 내려놓았다. 나이도 먹으면서. 그렇게 사는 거 같다.”


사진=씨제스,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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