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하인드]"요즘 누가 기분좋아요?" 한마디에 시작된 류승룡 캐스팅

[무비하인드]"요즘 누가 기분좋아요?" 한마디에 시작된 류승룡 캐스팅

최종수정2021.03.26 11:34 기사입력2021.03.26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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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뒷이야기
영화 '자산어보' 캐스팅 비하인드
문자 한통에 달려온 류승룡
시나리오 안 읽고 출연OK
변요한 추천한 설경구
결과는 대성공

[무비하인드]는 국내외 영화 촬영장, 인터뷰, 현장의 숨은 뒷이야기를 모아 전하는 고정 코너입니다. 알려지지 않은 영화계 흥미롭고 다양한 취재 뒷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편집자주]


[뉴스컬처 이이슬 기자] “요새 누가 제일 기분 좋아요? 기분 좋은 배우가 누구예요?” 설경구가 물었다. 누가 있을까, 골몰하며 더듬어가던 이준익 감독을 바라보며 다시 설경구가 말했다. “류승룡. ‘극한직업’(1,626만 명) 지금 천만 넘었잖아. 기분 좋을 거예요. 류승룡한테 줘요.”… “지금 천만 넘은 배우한테 이걸(자산어보) 줘서 망신당하려고 해?” 이 감독이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안 하면 그만이지. 류승룡한테 줘 봐요.”


영화 ‘자산어보’에서 정약용 역을 누구에게 맡길지 두고 배우 설경구와 이준익 감독은 머리를 싸맸다. 정약용의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줘야 하기에 인지도, 연기력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소위 이름난 배우한테 특별출연에 해당하는 배역을 맡길 수도 없는 노릇. 가볍게 시나리오를 보냈다간 자존심 상해하며 패대기를 칠지도 모를 일이었다. 두 배테랑은 이를 너무나도 잘 알기에 고민을 거듭하며 신중했다고 했다.


[무비하인드]"요즘 누가 기분좋아요?" 한마디에 시작된 류승룡 캐스팅


‘자산어보’는 순조 1년, 신유박해로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이 그곳에서 바다 생물에 매료돼 쓴 책이다. 영화에서는 청년 어부 창대의 도움을 받아 집필하는 과정을 그린다. 정약전의 둘째 아우 정약용에 류승룡이 특별출연으로 힘을 보탰다. 정약용은 조선 최고의 실학자로 신유박해 이후 유배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형이자 학문적 동반자인 정약전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교류했다. 적재적소에 정약용의 한시가 흘러나와 우아하게 배어들었다. 흑백 화면과 어우러져 극의 메시지를 읊는다.


영화는 목심심서의 길을 가고자 하는 아우 정약용과 자산어보의 길을 가려는 형 정약전의 대비를 흑백 화면에 우아하게 수놓는다. 이 사이에서 감독은 후자의 길을 걷겠다는 자기 고백을 전한다. 이준익 감독은 정약용 역할을 아무한테나 맡길 수 없었다. 연출자도 믿을 수 있고, 관객도 신뢰할 수 있는 배우여야 했다. 하지만 배테랑 배우한테 결례를 범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망설였다.


고민은 깊어져 갔고, 설경구의 아이디어로 류승룡을 떠올렸다. 이준익 감독은 망설였다. 이 감독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이 과정을 상세히 밝히며 류승룡을 향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누가 몇 장면 나오지도 않겠는데 출연하겠냐. 그런데 류승룡이 떠오르자 그다음부터는 다른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승룡이한테 매니저한테 시나리오를 보냈는데, 조그만 역할이니 읽어보고 통화하자고 문자를 넣었는데 10분 만에 바로 전화가 왔다”고 떠올렸다.


“아, 감독님. 저 할 겁니다.” 류승룡은 이준익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이 감독은 “시나리오 간 지 10분 됐잖아. 부담되니까 제발 읽어. 읽고 연락해 줘”라고 했지만 “읽고 하면 제가 이상한 놈이 돼요. 안 읽고 할 거야”라며 만나자고 했다. 그렇게 류승룡은 정약용이 됐다.


[무비하인드]"요즘 누가 기분좋아요?" 한마디에 시작된 류승룡 캐스팅


몇 일 후 진행된 설경구와의 인터뷰에서 같은 상황에 관해 물었다. 당시 이준익 감독이 정약용 등 조연 배역의 캐스팅을 놓고 크게 고민했다고 떠올렸다. “감독님이 힘들어 하시기에 류승룡한테 대본을 보내보라고 했더니 그 먼 곳까지 하루 촬영하러 오는 건 배우한테 큰 실례라며 안 된다고 하셨다. 결국 고심 끝에 류승룡한테 대본을 보냈는데 보지도 않고 바로 가겠다고 하더라. 캐스팅 과정도 재밌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준익 감독은 촬영장에서 류승룡의 연기를 보며 끌어안고 뽀뽀해주고 싶었다는 말로 격하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류승룡은 목소리가 대학자다. 쫙 여는 순간 훅 들어온다. 주연배우한테 잠깐 나오는 우정출연을. 결례를 범했는데. 영화에서 본인이 맡아야 할 영역 밖을 나가지 않고 정확히 해줬다. 그런 세련된 연기를 해주면 감독 입장에선 정말 고맙고 행복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만큼. 그건 정말 선수들만 하는 연기의 거리재기다. 정약전 설경구의 연기 주파수를 넘어서지 않는, 정약용만큼 간격만큼만 해내는 연기. 감독이 모니터로 그걸 보면 막 끌어안고 뽀뽀해주고 싶다.(이준익)”


캐스팅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낸 설경구는 “영화가 큰 사건 없이 흘러가는 작품이라 밋밋한 재미가 있다. 조금 친숙한 배우들아 나온다면 관객들이 더 즐겁게 볼 수 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창대 역의 변요한 역시 설경구의 의견으로 캐스팅된 배우. 그는 “눈빛이 참 좋았다. 창대를 고민하시길래 ‘변요한 어때요?’라고 물었다”고 떠올렸다.


설경구는 영화 ‘감시자들’(2013) 촬영 전 상견례 자리에서 변요한을 처음 봤다고 했다. “촬영 당시 저랑 호흡을 맞추는 장면은 없었다. 상견례 때 제 앞자리에 변요한이 앉아있었는데 눈빛이 참 좋았다. 저랑 성격도 비슷한 면이 있을 거라고 느꼈다.”


2019년 '자산어보' 촬영장 다수 관계자로부터 변요한의 의지가 남다르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하루'(2017) 이후 2년 만에 나선 영화 촬영 현장. 그의 각오는 남달랐다. 한 외딴섬에서 약 3개월 간 촬영을 진행했는데 그가 현장에서 머무르며 촬영이 없는 날에도 들르곤 한다는 전언. 작정하고 덤비는 듯했다. 이준익 감독, 설경구 등 베테랑들과의 작업. 자칫 여러 요소에 매몰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는 기를 쓰고 연기했고, 고스란히 화면에 담겼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설경구의 의견제시는 여러모로 성공적이다.


[무비하인드]"요즘 누가 기분좋아요?" 한마디에 시작된 류승룡 캐스팅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씨제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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