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윤여정·박인환의 물음, 왜 인생의 기본값은 20대인가

[포커스]윤여정·박인환의 물음, 왜 인생의 기본값은 20대인가

최종수정2021.04.04 09:00 기사입력2021.04.04 09:00

글꼴설정

윤여정 오스카 수상 유력
박인환 tvN 수목극 주인공
스크린·안방 활약
미디어 환경 변화
노배우 아닌 배우
건강한 소비→투자 선순환

[뉴스컬처 이이슬 기자] 희끗희끗한 머리를 한 장년 남성이 발레하는 청년을 바라본다. 탄탄한 근육과 탱탱한 피부가 부러워서가 아니다. 지나온 세월 어딘가 두고 온 꿈을 발견해서다. 배우고 싶고 해보고 싶지만,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다. 조금만 움직여도 무릎이 쿡쿡 쑤시고 종아리가 저리지만 마음속 품은 꿈은 창창하기만 하다. tvN 드라마 '나빌레라'에서 박인환은 일흔에 발레를 시작한 덕출을 연기한다. 우편 배달원으로 일하다 은퇴한 후 평생 마음에 담아온 꿈을 꾼다. 스물셋 발레리노 청년과 만나며 벅차오르는 감정을 누를 수 없다. 너무나도 소중한 꿈 앞에 설렘과 기쁨이 만개한다. 덕출은 일흔에 발레의 꿈을 이뤘다.


결혼 후 미국으로 건너가 맞벌이하는 딸을 위해 바다 건너간 할머니 순자는 딸과 손주를 위하는 큰마음을 지녔다. 영어는 못 하지만 특유의 재치와 친화력으로 적응해가고 한국에서 가져간 미나리를 냇가에 심는다. 영화 '미나리'(감독 정이삭)에서 미나리라는 소재는 작품의 주제를 관통한다. 이를 심은 순자가 사실상 주인공으로 그려진다. 보편적 가족애와 이민자의 애환을 다룬 영화는 이달 25일 열리는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개 후보에 올랐다. 순자를 연기한 윤여정은 한국인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됐다. 74세에 새로운 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사진=뉴스1

사진=뉴스1



윤여정과 박인환의 최근 행보가 주목된다. 팔순을 앞둔 배우가 미국 내 최대 영화 시상식에 최초 타이틀을 달고 참석하는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KBS 주말드라마가 아닌데도 칠순 배우가 극을 이끄는 주체가 될 줄이야. 이는 2021년 오늘날의 모습이다. 물론 이 역시 편견일 터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상황은 꿈도 못 꿨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극에서 철저히 주변 인물로 배제됐기 때문이다. 대부분 주인공은 2030 세대가 도맡았고, 그들의 시선에서 갈망하는 꿈과 사랑 그리고 가족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영화, 드라마 모두 마찬가지였다.


편성되면 안방에서 누구나 시청할 수 있는 드라마가 아닌, 누군가에 의해 투자를 받아야만 제작되는 영화의 경우는 더했다. 중장년층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 시나리오는 주로 수정을 요구하거나, 모성 혹은 부성애를 강요받았다. 장르도 한정적이었다. 액션은 언감생심. 투자가 성사되는 경우도 굉장히 드물었다.


사실 드라마도 예외는 아니었다. 노인의 꿈과 사랑은 사치로 여겨져 왔다. 단지 노년의 삶은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거나, 희화화되기 일수였다. 젊은 주인공의 말로나 현재 등으로 소비되는 데 그쳤다. 그렇듯 늘 미디어 속 주인공의 기본값은 20~30대였다.


노년의 인생은 없는 걸까. 세상에는 2030의 인생만 존재할까. 아니다. 다양한 인생이 존재한다. 그런데 왜 미디어에서는 다양한 세상이 다뤄지지 않는 걸까. 왜 2030의 인생만 그려지고 마는가. 여러모로 아쉬울 수밖에 없다.


최근 윤여정과 박인환의 행보가 더욱더 반가운 이유다. '노(老)배우'라는 말부터가 모순이다. 젊은 배우한테 '소(小)배우'라고 하지 않듯, 노배우가 아닌 그냥 배우로 불려야 마땅할 터. 20대이든 70대이든 같은 배우인데 우리는 왜 그들의 이야기를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국내에서는 노인의 서사를 다룬 콘텐츠 제작에 박했던 게 사실이다. 현재 방영 중인 '나빌레라'는 지상파 방송이 아닌 케이블 채널이 편성했다. 웹툰을 원작으로 제작된 만큼 팬층 역시 탄탄한 매력적인 콘텐츠이다.


[포커스]윤여정·박인환의 물음, 왜 인생의 기본값은 20대인가

사진=각 스틸컷

사진=각 스틸컷



올해 오스카에서 윤여정이 당당히 여우조연상을 받는 모습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여러 요소를 고려할 때 수상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4관왕에 오른 걸 반추할 때 유력하다고 볼 수 있다. 오스카는 타 대륙에 상을 수여 할 때 통상적으로 2년 정도 연속해서 시상하곤 했기에 올해도 그러한 열풍을 이용해 이슈 몰이를 시도할 것으로 관측된다.


충무로에서 '미나리' 같은 영화는 탄생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가 설립한 제작사 플랜B가 투자한 작품이고, 북미 배급사 A24가 함께했다.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경험을 쓴 시나리오가 영화로 탄생한 것이다. 철저히 미국인의 시각에서 쓴 작품이기에 한국인의 손에서는 나올 수 없는 작품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캐릭터와 배우에 크게 의지하는 충무로 분위기에 비춰볼 때 '미나리'의 성공은 쓴 입맛을 다지게 한다. 물론 최근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로 작품편수가 줄어든 영향도 한몫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이미 다양한 세대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는 할리우드를, 해외 드라마를 언제까지 부러워하고만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여전히 영화관과 안방에는 젊은이들의 희로애락으로 가득하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다양한 채널과 OTT 플랫폼 등 콘텐츠를 선보일 창구가 늘어나며 여러 세대간의 다채로운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는 분위기다. 장르와 캐릭터, 소재가 다양해져야 시장이 확대되고 가능성의 확장으로 연결된다"며 "함께 발전한다고 볼 수 있다. 건강한 투자는 건강한 콘텐츠 생산으로 직결되고 이를 소비하는 성숙한 관객이 존재할 때 다음 제작이 보장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관계자는 "윤여정, 박인환의 활약은 '20대의 사랑 이야기가 돈이 된다'는 낡은 투자방식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앞으로 콘텐츠 제작 경쟁은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높아진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나아가려면 콘텐츠의 수준 역시 향상되어야 한다. 여러 시도와 성공 사례를 통해 건강한 발전을 이뤄야 한다"고 전했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뉴스컬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0
좋은번호가 좋은 기운을 나만의 골드넘버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