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노트②]'태일' 장우성 작가, 인생의 변곡점

최종수정2021.04.01 08:43 기사입력2021.04.0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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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극 '태일' 장우성 작가 인터뷰
목소리프로젝트 첫 번째 작품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 작품"
"태일의 목소리, 무대에서 들려주고 싶었다"

[뉴스컬처 이솔희 기자] 장우성 작가에게 '태일'은 삶의 변곡점이 되어준 작품이다. 작가로서, 또 연출로서 쉼 없이 달려오던 그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을 때 '태일'을 만났고, 연극인으로서의 순수성을 회복하자는 일념 아래 박소영 연출, 이선영 작곡가와 함께 태일의 아프지만 따뜻했던 삶을 무대에 펼쳐냈다. 그가 바랐던 '순수성'이 가득 담긴 '태일'은 때 묻지 않은 위로로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음악극 '태일'(연출 박소영, 제작 플레이더상상)은 청년 전태일의 일생을 그려내는 작품으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자신을 바친 전태일의 모습은 물론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그의 꿈과 삶의 여정을 담아냈다.


장우성 작가, 이선영 작곡가, 박소영 연출이 결성한 '목소리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품으로, 지난 2017년 트라이아웃 공연으로 처음 관객을 만났다. 이를 시작으로 총 네 차례 정도 공연됐지만 각각 약 2주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 공연됐다.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공연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컬처노트②]'태일' 장우성 작가, 인생의 변곡점


작품의 시작부터 함께해온 장우성 작가는 "한 카페에서 박소영 연출과 이선영 작곡가가 전태일의 글귀가 적혀있는 종이를 꺼내놓으면서 '이거 네가 해야 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며칠 뒤에 또 그 카페에서 전태일 평전을 읽고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울었던 기억도 난다"고 웃었다.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세 사람이 공연에 필요한 소품을 구하러 다녔고, 후원을 받기 위해 직접 발로 뛰었다. 장우성 작가는 당시를 떠올리며 "몸은 정말 고됐지만 기억 속에는 다들 웃고 있다"고 미소 지었다.


처음 '태일'이 공연됐던 '천공의 성'은 한 회차당 약 60여 명만 입장이 가능하고, 천장과 가까운 자리에서는 일어서면 머리가 천장에 닿을 정도로 소규모의 극장이었다. 인력도 넉넉지 않아 창작진과 배우들이 직접 공연장 운영을 맡기도 했다. 사비를 털어가며 공연을 올린 것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힘듦보다 행복이 더 큰 시간이었다.


장우성 작가는 "그런 공연장 환경 자체가 '태일'이라는 작품 자체를 더 체험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요소 같았다. 목소리 프로젝트의 시작이었지 않나. 순간순간이 소중했다"고 애틋함을 드러냈다.


"저희끼리 모이면 우스갯소리로 '지금 다시 하라면 못 할 것 같다'는 얘기를 해요. 화장실 청소까지 저희가 다 해야 했거든요. 순수성을 회복하자는 마음뿐이었어요. 우리는 이미 때가 너무 많이 묻었으니까.(웃음) 새롭게 목욕 재개하는 느낌이었어요. 스탭들도 그렇고 배우들도 그저 태일이 좋아서, 태일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천공의 성'이 지금은 태권도장으로 바뀌었더라고요. '태일이라는 사람처럼 '천공의 성'도 기억 속에 살게 됐구나' 싶었어요."


[컬처노트②]'태일' 장우성 작가, 인생의 변곡점


제작사와 함께, 안정적인 환경에서 올리는 첫 번째 정기 공연. 설렘과 조심스러운 마음이 공존했다. 장 작가는 "당연히 더 많은 사람과 태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돈벌이로 보일까 봐 조심스러웠다. 혹여나 고인을 욕보일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었다. 이번 공연이 시험 무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를 귀하게 전하고 싶은 마음을 지켜가면서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게 하려고 한다"고 털어놨다.


이어 "연습 기간보다 공연 기간이 짧다는 것도 항상 아쉬웠다. 보통 공연을 2주 정도밖에 못하지 않았나. 관객분들도 항상 아쉬워하셨다. 그런 아쉬움을 보답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 좋다"고 덧붙였다.


"처음에는 스태프들도, 배우들도 재능 기부에 가까운 느낌이었어요. 전태일의 공연을 하는데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못한 거죠. 이번에는 확실하게 했습니다. 연습도 시간 딱 지켜서 하고, 계약서도 잘 쓰고.(웃음)"


'태일'을 만나기 전, 장우성 작가는 한껏 지친 상태였다. "때가 묻은" 자신의 상황으로 인해 절필감을 느낄 정도로 무기력해졌고, 도망치듯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러다가 만난 작품이 '태일'이다.


장 작가는 "그래서 더 못 잊을 작업이다. 한 번 포기를 했으니 마음이 가벼워진 상태 아닌가. 그 상황에 전태일 평전을 읽으니 가슴에 와닿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고선웅 연출님이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냐고, 그게 있어야 일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예전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었던 것 같은데, '태일'을 하면서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게 됐다"고 작품에 남다른 애정을 품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전했다.


[컬처노트②]'태일' 장우성 작가, 인생의 변곡점


'태일'이라는 작품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든 고민은 '전태일의 수기를 어떤 형식으로 꿰어야 하는가'였다. 우연히 본 가수 스팅의 테드 강연 영상에서 힌트를 얻었다. 장우성 작가는 "한동안 노래를 만들기 힘들었다가 유년 시절을 돌아보며 다시 노래를 쓰게 됐다면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른다. 그 방식이 한 편의 모노드라마 같았다. 공연의 형식으로 이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태일' 속 배우들은 자연스럽게 극 중 인물이 됐다가, 인물에서 빠져나와 배우 자체로서 존재하기도 한다. 직접 태일과 그 주변 사람이 되어 태일의 이야기를 전하다가도, 때로는 내레이터가 돼 태일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 이에 대해 장 작가는 "한 개인이 태일을 알아가다가 결국 태일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전태일씨가 신문에 있는 한문 좀 읽어줄 수 있는 대학생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더라고요. 그럼 우리는 전태일의 연극하는 친구가 되자는 마음이었어요. 이 사람의 목소리를 무대에서 대변해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고민도 많았다. 장 작가는 "어쨌든 태일의 이야기를 프레이밍해 극화한 것 아닌가. 당연히 인물에 대해 왜곡이 있어서는 안 됐다. 이미 역사적인 평가 또한 이루어졌기 때문에 사실 해석으로서 새로울 부분은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이런 접근들이 전태일씨를 노동 운동의 상징적인 존재로, 또 신화적인 존재로 박제시키는 건 아닌가 염려스러웠다"고 고민의 부분을 이야기했다.


이어 "오히려 '해석과 평가' 같은 딱딱한 워딩을 떠나서 어쩌면 너무나 평범하고 따뜻한 심성을 가졌던 한 사람의 청년으로 바라보자, 이 사람을 글과 자료로 밖에 만날 수 없지만 그것이 이렇게 우리에게 울림을 주고 있으니 우리 팀 이름처럼 목소리로 대변되는 그의 생각, 신념들을 빼거나 보탬이 없이 무대로 옮겨보자 라는 생각으로 임했던 것 같다"고 태일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가졌던 마음가짐을 꺼내놨다.


"전태일 씨에게 부채감도 있고,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100분짜리 공연이기 때문에 그의 삶에서 감히 제가 하이라이트를 뽑을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모든 일을 장면화해서 보여줄 수가 없기 때문에 배우들이 내레이터로서 묘사를 하는 상황들이 있어요. 너무 가슴 아픈 순간들이 많은데 어쩔 수 없이 압축할 수밖에 없었어요. 배우들도 그걸 숙제로 느끼더라고요. 내레이션 몇 줄에 그의 삶의 고단함을 녹여내야 하니까. 그래서 배우들도 내레이션을 허투루 하지 않아요. 연출님도 그 행간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있다고 강조하시고요."


음악극 '태일' 공연 장면. 사진=플레이더상상

음악극 '태일' 공연 장면. 사진=플레이더상상



매 장면을 꾸미는 촛불 소품은 빼놓을 수 없는 '태일'의 매력 포인트다. 배우들은 이야기의 진행과 함께 직접 무대에 놓여있는 촛불을 하나씩 켜나가고, 공연이 끝날 때쯤이면 무대가 따스한 불빛으로 가득 찬다. 이에 대해 장우성 작가는 "사실 대본을 구성하면서 촛불에 대한 언급은 거의 안 했다. 박소영 연출의 대단한 연출력"이라며 미소 지었다.


이어 "공연을 볼 때마다 다가오는 의미가 다른 것 같다. 처음에는 작은 초를 켜다가, 큰 결심의 순간에는 더 큰 초를 켠다. 어떻게 보면 배우가 일일이 초를 켜는 게 번잡스러워 보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꾸역꾸역 초를 켜는 모습을 통해 전태일의 마음이 촛불처럼 은은하게 번져가는 걸 표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마지막 장면, 태일은 문을 박차고 나가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함성 속으로 들어간다. 장우성 작가는 "처음에는 태일이 객석 쪽으로 퇴장했다. 객석 사이를 헤쳐나가면서 문이 쾅 닫히면 심장이 덜컥하는 느낌이었다. 지금은 태일이 관객들이 바라보고 있는 무대 위 문으로 나가는데, 전태일이 우리의 가장 앞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태일은 앞장서서 떠나고, 우리는 그의 빈 자리를 바라보고"라며 장면을 보고 느낀 바를 이야기했다.


"전태일이 빠져나가고 난 다음에 일렁이는 촛불을 보고 있으면 그 자체가 모두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물이 떠난 다음 어지러운 상태에서 촛불이 울렁이는데, 그때 적막을 주는 게 연출의 백미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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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배우들은 매일매일 다른 자신만의 원동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장우성 작가는 "배우들에게 가혹한 부분"이라고 웃으며 "대본에 '원동력에 대해 구술하시오'라고 쓰여 있다. 낯설게 만드는 장치다. 관객들이 현재를 인식할 수 있게. 배우들이 점점 공연이 길어지니까 사소하고 일상적인 부분을 찾더라. 꽃을 봤다던가, 엄마 손을 붙잡고 가는 아이를 봤다던가. 삶이 원동력으로 가득 차 있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작가이자 연출가로서 장우성의 원동력은 '스스로를 잘 돌봐야 한다는 마음'이다. 그는 "사람들은 인정 욕구가 있지 않나. 인간으로서 생존, 성공에 대한 욕망이 머리를 꽉 채웠던 시기가 있다. 그런데 '태일'과 목소리 프로젝트 덕분에 선한 영향력, 건강한 심신 같은 것들로 관심이 옮겨갔다. 그러면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하고, 내 기준에 의해서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하게 됐다. 그 모든 출발이 나를 괴롭히지 않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코로나19와 함께한 지난 1년은 공연인으로서 해야 하는 게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장우성 작가는 "간과할 수 없는 건 시의성, 동시대성이다. 시대에 어울리는 이야기들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예전에는 연극이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역할을 했는데, 그게 현재도 유효할까? 연극이 뭘 할 수 있지? 나는 뭘 해야 하지? 계속 질문만 하고 있다. 찾아가는 여정이다. 섣불리 답을 내는 것도 안 될 것 같다"고 여전히 고민 속에 있음을 이야기했다.


이어 "관객분들이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 극장에 오지 않나. '공연이 그 사람의 삶에 중요한 의미인가 보구나, 중요한 의미가 있으니 불편함을 무릅쓰고 공연장에 오는 거겠지'라는 생각이 들어 감격스러웠다. 그런 것들이 저희를 허투루 할 수 없게 만드는 것 같다"고 관객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작업을 하면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는지가 중요하잖아요. 첫 번째로 재미가 있어야 해요. 우리의 경쟁 상대가 누구일까 고민해본 적이 있는데, 이제는 유튜브랑 넷플릭스인 것 같더라고요. 이미 손안에 극장이 있는데, 관객이 이 불편한 극장까지 오게 해서 두 시간을 앉아서 보게 하려면 공연예술 콘텐츠 자체로서의 재미가 있어야겠더라고요. 물론 그것만으로는 안 되고, 의미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저한테도, 동료들에게도, 관객에게도 의미가 있는 작품. 재미있으면서 의미 있는 이야기의 적절한 밸런스를 찾고 있어요."


사진=김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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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희 기자 sh040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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