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노트③]박정원, 눈물 아닌 웃음으로

최종수정2021.04.01 08:00 기사입력2021.04.0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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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극 '태일' 박정원 인터뷰
트라이아웃 공연부터 네 번째 '태일'
"진심 전달하기 위해 노력 중"
"위로 안기는 목소리 낼 수 있길"

[뉴스컬처 이솔희 기자] 박정원이 또 한 번 따뜻한 청년 태일이 됐다. 작품의 창작 과정부터 시작해 벌써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음악극 '태일'과 함께 하고 있는 그는 뜨거움이 아닌 따뜻함으로, 눈물이 아닌 웃음으로 여전히 유효한 태일의 목소리를 이 시대에 전한다.


다시 한번 '태일'과 함께하게 된 박정원은 "식상한 표현일 수 있지만 말로 할 수 없는 행복을 느낀다. 그 어느 작품보다 행복에 가까운 작품이다.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태일과 태일 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재밌다. 초연을 만들어냈다는 뿌듯함이 크다"고 미소 지었다.


"처음부터 계속한 사람이 배우 중에는 저밖에 없잖아요. 원 캐스트로 하다가 더블 캐스팅으로 한다고 했을 때는 서운할 정도였어요.(웃음) 그런데 국희 누나가 '이렇게 좋은 작품을 다른 배우들에게도 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이냐'고 하더라고요. 제 욕심이었던 거죠. 그 이후에는 새로운 배우가 올 때마다 행복하고 감사해요. 연습실, 공연장 가는 길이 행복해요. 태일이 청옥고등공민학교를 가는 마음이 이랬을까 싶어요."


[컬처노트③]박정원, 눈물 아닌 웃음으로


'태일'은 박소영 연출, 이선영 작곡가의 연습실에서 시작됐다. 박정원과 더불어 '태일'의 시작을 함께한 김국희까지 네 사람이 작은 연습실에 옹기종기 모여 노래를 부르고 대본을 읽었다. 박정원은 "출연료에 대해서 듣지도 않고 갔다. 그냥 N분의 1이니까 재미있게 하자고.(웃음) 연습을 한다기보다는 친구들 만나러 가는 느낌이었다"고 그때를 떠올렸다.


이어 "처음에는 즐겁게 작업하는 것에 의미를 둬서 이렇게까지 행복해질 줄 몰랐다"며 "다른 작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발전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부담감이 있는데, '태일'은 그런 게 없다. 어떻게 보면 그런 부담감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 연기하는 태일의 모습이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박정원은 전태일을 '뜨거운 사람이 아닌 따뜻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공연을 시작한다. 그는 "태일이라는 사람을 뜯어보면 결국 따뜻함이 나온다. 남을 도와주고, 남을 위해 희생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지 않나. 차비를 털어서 아이들에게 풀빵을 사주고, 자기는 몇 시간을 걸어 퇴근하고. 그러기 쉽지 않은데, 그런 결단은 따뜻함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전했다.


"태일은 뜨거운 사람이 아니라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 그 말은 꼭 하게 되더라고요. 그게 제가 제일 하고 싶은 말인 것 같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태일의 표면적인 부분만 알고 있으니까요. 그 장면은 제가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인데, 처음에는 '이렇게 말해야지' 하고 대본을 써서 갔거든요. 근데 지금은 그냥 제가 아는 걸 잘 전달해주자는 마음이에요. 사실 그 첫 장면은 아직도 긴장돼요."


[컬처노트③]박정원, 눈물 아닌 웃음으로


태일의 이야기를 오랜 시간 동안 관객에게 전하게 되면서, 무대 위에서 기계적으로 태일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 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그의 삶에 익숙해지고 무뎌질 수밖에 없었다. 박정원은 "세 번째로 천공의 성에서 공연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태일의 마음을 온전히 전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태일의 마음은 충분히 알지만, 너무 많이 표현해서 익숙해진 것 같았다. 태일이 너무 많이 소모된 것 같아 쉬어야 하나 생각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박소영 연출의 한 마디가 고민에 빠진 박정원에게 큰 힘이 됐다. 박정원은 "억지로 그 마음에 도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주셨다. 오히려 그게 독이 될 수 있다고. 이미 그분의 마음을 온전히 알고 있으니, 마음 닿는 데까지만 해도 된다고. 그 마음만 잘 이해하고, 잘 표현하면 된다고. 그 말이 정말 힘이 됐다"고 회상했다.


"그때 힘든 걸 아무한테도 말을 못 했어요. 책임감도 있고, 못하면 안 된다는 부담감도 있었거든요. 태일은 분명히 힘들었을 텐데 나는 왜 공감을 못 하고 있을까 하는 죄책감도 있었고, 충분히 마음을 표현한 것 같은데 왜 예전만큼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그래도 주변에서 도움을 많이 주신 덕분에 믿고 의지할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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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원은 "어떻게든 마음에 도달하려고 하면 거짓이 될 것 같아서, 제가 느끼는 만큼 진심을 잘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니까 오히려 부담감도 덜어지고, 무대 안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같다. 이제는 태일의 목소리를 낸다기보다는 태일 외 목소리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고 있다. 태일 외 목소리에 초점을 맞추니까 오히려 태일의 진심이 잘 전달되겠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전했다.


"(태일 외 목소리 역의) 누나 넷을 의지하는 게 정말 커요. 무대에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누나들밖에 없으니까. 사실 누나들이 더 힘들 거에요. 태일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데 그 마음에 반하는 역할도 연기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누나들은 오히려 무뎌지고, 익숙해지려고 하더라고요. 태일의 삶에 무뎌진다는 게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고민의 시간을 거친 만큼, 한층 깊어졌다. 박정원은 "예전에는 '베이스는 긍정적인 부분이고, 내가 보여주려는 건 따뜻함'이었다면, 이제는 조금씩 바뀌어서 '베이스는 따뜻함이고, 내가 보여주려는 건 긍정적인 부분'으로 변했다. 그러면서 웃음이 많아지더라. 예전에는 눈물로 감정을 표현하려고 했다면, 이제는 웃음으로 표현하려고 한다. 웃을수록 그의 마음에 더 다가간다는 생각이 든다. 전보다 더 단단해진 기분"이라고 미소 지었다.


"태일 외 목소리를 듣다 보니 태일이가 앞장서서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한 걸음 뒤에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 발자국 물러서서 앞을 바라보는 사람. 맨 앞에 있으면 자기가 갈 길만 보이는데, 맨 뒤에 있으면 앞에 있는 사람이 나아가는 길이 보이잖아요."


[컬처노트③]박정원, 눈물 아닌 웃음으로


더 넓어진 무대, 좋은 환경에서 선보이게 된 첫 장기 공연. 작품의 시작과 함께해온 만큼, 박정원에게도 이번 변화는 감회가 남다르다. 그는 "관객분들이 좋게 봐주셔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또 욕심내지 않고, 이 작품을 온전히 잘 보여주자는 생각이 여기까지 오게 한 것 같다. 연출님, 작곡가님이 직접 오퍼레이팅을 해주시고, 다른 배우들이 후원해주던 시절이 좋은 영향력을 퍼트려서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공연할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이어 "공간이 넓어지고, 무대를 채울 수 있는 도구가 많아지면서 관객분들도 태일의 이야기가 더 깊게 느껴지지 않을까. 사다리에 올라가는 장면이 있는데, 당연히 평화시장에 있는 것보다 넓은 공간이지만 '태일이 이렇게 힘든 공간에서 일을 했겠구나'를 간접적으로 느끼실 수 있는 것 같아 좋다"고 전했다.


"내 새끼 잘 돼서 뿌듯한, 부모의 마음이에요.(웃음) 꿈이 하나 있다면 대극장 작품으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태일이 항상 하던 생각이 왜 공장에서 이름을 부르지 않고 '1번 시다', '2번 시다'라고 부르냐는 거였거든요. 대극장 무대에 가서 인원수가 많아지면 인물 하나하나 등장시키고, 불리지 못한 친구들의 이름을 불러줄 수 있지 않을까요?"


그간 '태일'이 공연된 극장은 관객이 100명도 채 들어가지 못하는 작은 공간이었지만, 오히려 태일의 이야기를 더욱 생생하게 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박정원은 "작은 공간에서 공연할 때는 관객과 같이 호흡하면서 극을 이끌어 가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에 공연장이 비교적 넓어지다 보니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 이전과는 다른 에너지가 생겼다. 새로운 에너지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컬처노트③]박정원, 눈물 아닌 웃음으로


태일은 박정원의 '인생캐'로 손꼽힌다. 그는 "저는 그런 생각을 안 해봤다"고 손을 내저으며 "다른 공연들에 비해 부담감이나 책임감이 덜 했기 때문에 제 표현도 자유로웠던 것 같다. 관객분들이 저를 그렇게 만들어주신 것 같다. 관객분들이 인정해주셨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저에게는 모든 캐릭터가 아픈 손가락이다"고 겸손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원동력을 생각하면서 태일과 조금 가까워진 것 같다. 특히 이번에 원동력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됐다. 사람인지라 부정적인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예전보다는 조금은 긍정적인 생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저는 항상 그 인물이 가진 목소리를 온전히, 잘 전달하자는 생각을 해요. 특히 전태일 씨는 실존 인물이잖아요. 더 큰 목소리, 울림이 있는 목소리를 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태일' 공연을 하면서 저 스스로, 관객분들, 더 나아가서 전태일 씨한테까지 위로가 될 수 있는 목소리를 내자는 마음은 꼭 가져가는 것 같아요. 제 인생의 모토가 위로예요. 제가 전하는 목소리들이 위로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김태윤 기자



이솔희 기자 sh040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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