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낙원의 밤' 우아하고 잔혹한 핏빛 클리셰

최종수정2021.04.10 09:00 기사입력2021.04.10 09:00

글꼴설정

영화 '낙원의 밤' 리뷰
엄태구·전여빈·차승원外
베니스영화제 초청작
우아하고 섬세한 갱스터 무비
배우들의 호연 인상적
마지막 10분 백미
조폭 소재 호불호도

[영화리뷰]'낙원의 밤' 우아하고 잔혹한 핏빛 클리셰


*본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뉴스컬처 이이슬 기자] 제주도의 하늘과 바람, 구름. 푸른 초원 위 평화롭게 놓인 소떼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태양과 석양이 옷을 갈아입는 매혹적인 미장센의 오묘함에 취할 때쯤 핏빛 총성이 시선을 붙든다. 스타일리시한 액션과 밀도 높은 내면 묘사가 2시간 넘는 러닝타임 동안 조화롭게 펼쳐진다. 오랜만에 만나는, 즐기기 좋은 갱스터 영화가 반갑다. '낙원의 밤'은 장르 영화의 공식을 차근차근 따라가며 시퀀스를 탄탄하게 완성했다. 밀도 높은 연기로 각 배역을 완성한 배우들의 에너지도 인상적이다. 엔딩의 총격 장면은 잔혹하고도 우아하다.


지난 5일 온라인 시사회를 통해 넷플릭스 영화 '낙원의 밤'(감독 박훈정)이 공개됐다. 조직의 타깃이 된 한 남자와 삶의 끝에 서 있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제77회 베니스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됐다. 당초 극장용으로 기획, 제작됐으나,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여파로 개봉이 어렵게 되자 인터넷 동영상 플랫폼(OTT) 넷플릭스를 통해 9일 공개됐다.


범죄 조직의 에이스 태구(엄태구 분)는 하루아침에 자신의 전부인 가족을 잃는다. 세상은 무너지고 삶의 의미조차 사라진다. 그는 가족을 앗아간 사건 배후에 경쟁 폭력 조직의 회장이 있다는 걸 알고 복수의 칼날을 겨눈다. 목숨을 걸고 되돌릴 수 없는 일을 저지른 그는 밀항 전 은신하려 제주도로 향한다.


한편 재연(전여빈 분)은 생선에 무기를 반입해 조직원들에게 판매하며 살아가는 무기상인 삼촌 쿠토와(이기영 분) 제주도에서 살고 있다. 단숨에 백발백중. 그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거침없이 총을 겨눈다. 너무나도 일상적이게 태연히 총을 든 손을 뻗는 모습에서 지난 세월을 짐작케 한다. 재연과 삼촌은 조직의 부탁을 받고 태구에게 은신처를 제공한다. 세상의 끝에 내몰린 재연과 태구는 서로를 이해해간다.


박훈정 표 미쟝센 마법은 이번에도 발현된다. 조직 폭력배 간 다툼, 복수, 시기 등 장면과 장면을 살펴보면 클리셰와 누와르 장르의 뻔한 반전을 답습한 모양새지만 마치 클리셰가 아닌 것처럼 포장했다. 제주도라는 공간 특성과 배우들의 호연이 '낙원의 밤'의 오묘한 색을 완성한다. 아름다운 미장센과 극을 가로지르는 여유로운 공기가 인상적이다. 따뜻하면서도 비릿하게, 오묘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영화리뷰]'낙원의 밤' 우아하고 잔혹한 핏빛 클리셰

[영화리뷰]'낙원의 밤' 우아하고 잔혹한 핏빛 클리셰


앞서 박훈정 감독은 '마녀', '브아아이피'를 통해 여성 혐오 논란에 휩싸인 바. 연출 과정에서 젠더 감수성 부족 문제가 재차 지적되기도 했다. 여성 캐릭터 활용이 아쉽다는 지적이었다. 감독은 '낙원의 밤'에서는 이를 단단히 의식한 듯 보인다. 여성 캐릭터를 대하는 방식에서 성적 활용을 배제하고 주체적 관점에서 조명하려 했다. 특히 마지막 10분이 영화의 백미다. 전여빈이 담담하고 일상적인 태도와 표정으로 무차별 총격을 가하는 모습은 진한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그는 상실을 통한 무기력한 모습, 슬픔, 평온한 듯 광기가 폭발하는 장면까지 눈을 뗄 수 없는 연기를 선보인다.


엄태구의 연기는 새롭다. 신선하다. 누아르 장르에서 배우들이 지리멸렬하게 답습해온 과잉된 감정을 지우고, 솔직하고 내밀하게 끌어올린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이 '낙원의 밤'을 우아하게 끌어올렸다. 실제의 감정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감정은 더 담백하면서 생생하게 전달되는 법. 기존 누아르에서 총을 겨누며 힘을 잔뜩 주고 알 수 없는 사투리를 내뱉던 기존 캐릭터들과 대비된, 기품 있는 연기를 펼친다. 엄태구가 아닌 태구는 상상할 수 없다. 클리셰를 클리셰가 아닌 것처럼 포장한 결정적 역할을 태구가 한 것이다.


차승원은 깊은 내공으로 탁월하게 제 역할을 해낸다. 치열한 상황 속 평온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은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재미를 준다. 적당한 위트의 아슬아슬한 선을 지키며 여유롭게 배역을 완성했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과 유유자적 바다를 뒤로 한 치열한 캐릭터, 높은 하늘과 핏빛의 대비가 시선을 붙든다. 감독은 우아하고 섬세한 연출로 완성도 높은 장면을 완성했다. '낙원의 밤'은 장르적 매력과 연기, 우아하고 아름다운 미장센 등 갱스터 영화로의 재미를 잘 담았지만, 여성 시청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조직폭력배들이 싸우고 배신하고 살인을 저지르며 달려가는 플롯이 얼마나 새롭게 다가갈지 지켜볼 일이다. 다만 마지막 10분을 위해 121분을 참아봐도 좋지 않을까. 러닝타임 131분. 청소년 관람불가. 9월 넷플릭스 공개.



[영화리뷰]'낙원의 밤' 우아하고 잔혹한 핏빛 클리셰


사진=넷플릭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뉴스컬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0
좋은번호가 좋은 기운을 나만의 골드넘버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