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어른들은 몰라요' 주제는 어디가고 여고생 판타지만

[영화리뷰]'어른들은 몰라요' 주제는 어디가고 여고생 판타지만

최종수정2021.04.11 09:00 기사입력2021.04.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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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른들은 몰라요' 리뷰
'박화영' 감독 차기작
10대 낙태·학교 폭력
욕설·흡연 등 수위 높아
여고생 성적 묘사 아쉬움
아슬아슬한 문제작

*본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돼 있습니다.

[뉴스컬처 이이슬 기자] 18세 여성 고등학생 세진(이유미 분)은 해맑다. 동급생의 괴롭힘과 온갖 조롱에도 치아를 끝까지 드러내며 환하게 웃어 보인다. 부모 없이 동생 세정(신햇빛 분)과 둘이 살아가는 이들은 배가 고프면 마트에 들어가 진열장에 놓인 과자를 무작정 뜯어 먹는다. 밥을 챙겨주는 이도, 계산하지 않고 과자를 먹어선 안 된다고 말해줄 어른들도 곁에 없다. 미성년,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두 사람은 요지경 세상에 그대로 방치된다. 하루하루 버티는 이들에게 올바른 판단은 사치다.


세진은 남성 담임 선생과 교제하며 잠자리를 갖는다. 어느 날 그는 성교육을 듣던 도중 손을 들고 자신이 임신했다고 밝힌다. "애 뗄 거예요"…해맑게 웃으며 말하지만, 선생들은 계산기를 두드리며 제 생각하기 바쁘다. 결국 모두에게 외면당하고 만다. 세진은 어른들에 의해 낙태를 종용당한 후 가출해 거리를 떠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가출 4년 차 동갑내기 주영(안희연·하니 분)을 만난다. 둘은 쇼핑센터에서 물건을 훔치며 생계를 이어간다. 함께 세진의 수술 비용을 마련하던 두 사람은 이들을 이용하려는 남성을 만난다. 세진은 몹쓸짓을 당할 위기에 처하고, 놀란 주영은 무턱대고 밖으로 뛰쳐나와 도움을 요청한다. 재필(이환 분)과 신지는 맨몸으로 맞서 세진을 구한다. 그렇게 넷은 차가운 거리 위를 함께 떠돈다. 훔치고 속이고 도망가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세진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는다.


[영화리뷰]'어른들은 몰라요' 주제는 어디가고 여고생 판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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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몰라요'는 자극적이고 불편한 장면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면도칼로 손목을 자해하는 장면이나 청소년 낙태에 대한 문제. 10대의 흡연과 음주, 폭력 등 각종 일탈이 여과 없이 펼쳐진다. 특히 흡연 장면은 영화의 약 70~80% 분량을 차지할 만큼 일상적으로 비친다. 과도한 묘사가 영화적 허용범위를 넘어선 소음처럼 다가와 피로감이 상당하다. 127분의 긴 러닝타임간 담배 피우는 장면을 극장에 앉아 관객들이 봐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폭력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맥락 없이 가해지는 무차별적인 폭행은 어느 순간 이들이 10대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여성 증오(여성 혐오) 시선도 불쑥불쑥 느껴질 만큼 아슬아슬한 연출을 선보인다. 장면을 완성하기 전에 충분한 고민이 수반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여성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설정해 연출하고자 했다면 분명 깊은 고민이 선행됐어야 맞다.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여성 소비 방식에 있다. 여성 고등학생이 주인공인 영화, 10대들의 이야기를 그릴 때 학생들을 과도하게 성적으로 소비해선 안 된다. 무의식적인 시선과 판타지가 반영되는 것을 경계하며 그려야만 한다. 그러나 영화는 주제 전달이라는 목표를 설정해두고 길을 잃은 모양새다. 과도한 노출, 여고생 동성애 등 감독의 판타지가 불쾌할 만큼 과하게 묘사된다. 10대 여성을 성적으로 부각한 장면이 연이어 등장해 소음처럼 그려진다. 여고생 낙태라는 예민한 소재를 다뤘으면서도 충분한 고민 없이 만들어진 영화라는 인상이 강하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 불편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감독의 의도는 알겠다. 10대 여성을 성적으로 이용하려는 나쁜 어른들의 현실을 반영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다. 영화는 관객 없이 존재할 수 없다. 관객이 극장에서 관람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영화는 완성된다. 더군다나 '어른들은 몰라요'는 상업영화로 기획, 제작된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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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의도가 궁금했다. 그는 시사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작품 기획 당시 낙태 찬반 문제로 대한민국이 떠들썩했다. 토론을 보며 '나는 찬성인가 반대인가'라는 고민을 했던 기억이 난다. 영화를 촬영할 때까지도 단정 짓지 못하겠더라. 그렇다면 영화를 만들어서 관객들과 토의를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묻고 싶다. 왜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스스로 내려야 하는가. 자신이 의견을 피력할 주체가 맞다고 보는가. 사회가 그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낙태는 한 여성의 인생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다. 그렇기에 개인의 선택이 가장 먼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낙태 이슈를 사회적 문제인 것처럼 공론화시키는 것이 타당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이어지며 저항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 만들어진 영화와 영화를 연출한 남성 감독의 말은 무척 위험하게 들린다.


만약 이러한 문제를 진정성 있게 다루고자 했다면 더욱 신중했어야 맞다. 아이를 갖게 되는 과정과 세진의 캐릭터 설정에도 더 많은 고민이 선행됐어야 했다. 세진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 같은 톤으로 대사를 한다. 마치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처럼, 애교 많은 캐릭터로 그려진다. 극 초반, 세진이 정신적 장애를 지닌 인물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장면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심지어 후반으로 갈수록 약에 취한 건지 술에 취한 건지 알 수 없는 캐릭터로 묘사한 것은 심각한 문제로 여겨진다. 캐릭터의 설정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 왜 그렇게 불안정한 사람이 되었어야 했는지가 타당하게 그려졌어야 맞다.


이환 감독은 첫 상업영화 '박화영'(2018)을 통해 어른들의 관심이 닿지 않는 10대 문제를 다루며 주목받았다. 차기작에 대한 부담과 고민이 깊었을 것으로 보인다. 더 센 소재와 장면 묘사를 통해 관심을 더 끌 수는 있겠지만, 아쉽게도 주제 전달과 건강한 화두를 던지지는 못한 모습이다. 자극적 소비만 남은 불편한 영화로 기억될 듯하다.


'어른들은 몰라요'는 10대들의 현실을 너무도 생생히 그려서 불편한 게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 문제를 지적하는 허울을 쓴, 감독의 판타지를 노출했다는 점이 불편하게 다가오는 영화다. 차기작에서는 감독이 더 깊은 고민을 통해 사려 깊게 주제를 전달하기를 기대한다. 러닝타임 127분. 청소년 관람불가. 15일 개봉.


사진='어른들은 몰라요' 영화 스틸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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