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엄태구 "'낙원의 밤' 운명처럼 다가왔죠"

최종수정2021.04.18 08:00 기사입력2021.04.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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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낙원의 밤' 엄태구 인터뷰
범죄조직원 태구役
동명 역할 운명처럼 다가와
서울·제주도 로케이션
주연 분량多 부담 느껴

[뉴스컬처 이이슬 기자] 엄태구는 뛰어난 음성, 눈부시게 화려한 외모를 지닌 배우는 아니다. 태생적으로 능청스러운 기질을 지녔다거나 빼어난 말솜씨로 청자를 들었다 놨다 하지도 못한다. 그런데도 시선을 거두지 못하게 하는 강렬한 에너지를 지녔다. 기억하는 그의 첫인상은 내성적인 성격에 타인을 배려하며 조심스러워하던 모습. 수줍어하면서도 솔직 담백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타인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지 눈치를 살피지 않고 내면에 있는 가장 솔직한 말을 꺼내기 위해 골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따뜻한 물에 서서히 풀어지는 달콤 쌉쌀한 홍차처럼 그의 매력에 어느새 스며들었다. 선하고 따뜻한 기운에 마음의 빗장이 풀렸다.


엄태구는 14일 진행된 화상 인터뷰에서 넷플릭스 영화 ‘낙원의 밤’(감독 박훈정)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영화는 조직의 타깃이 된 한 남자와 삶의 끝에 서 있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는 라이벌 조직의 타깃이 되어 제주로 몸을 피한 범죄 조직의 에이스 태구를 연기한다.


[인터뷰]엄태구 "'낙원의 밤' 운명처럼 다가왔죠"


이날 엄태구는 “분량이 많아서 부담됐다”는 말로 주연을 맡은 겸손한 소감을 전했다. 동명의 캐릭터에 관해 “대본을 보고 캐릭터 이름이 태구라고 적혀있어서 놀라고 신기했다”고 말을 꺼냈다.


‘낙원의 밤’을 연출한 박훈정 감독은 애초에 엄태구를 염두에 두고 태구라는 이름을 쓴 것은 아니었다고. 엄태구는 “감독님이 저를 몰랐을 때 쓴 대본인데 나중에 엄태구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다고 들었다”며 태구와의 만남이 운명처럼 다가왔다고 떠올렸다.


“삶에 찌든 태구의 지친 모습, 누나의 병, 일을 그만둘지에 대한 고민, 조카를 걱정하는 마음 등을 내면에 담고서 연기하려 했다. 외적으로는 스킨과 로션만 바르고 립밤도 바르지 않은 채 거친 모습을 완성했다.”


엄태구는 박훈정 감독과 숱한 대화를 통해 ‘낙원의 밤’을 완성해갔다. “이것저것 시도하며 태구를 만들었다. 감독님을 의지하면서 하나씩 현장에서 만들어갔다. 전 상황과 현재에 집중해서 한 계단씩 쌓아갔다.”


태구는 극한에 내몰리는 감정선을 마지막까지 가져가야 하는 쉽지 않은 캐릭터다. 심리적으로 힘들지는 않았을까. 엄태구는 “분량이 많고 감정선이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돼야 한다는 생각에 디테일을 잡아가는 게 쉽지 않았다. 서울과 제주도를 오가며 촬영을 진행했는데 감정을 이어가려 노력했다. 제주도 촬영을 앞두고 서울 촬영을 복기하고 돌이켜보며 노력했다”고 말했다.


캐릭터를 만들어갈 때 외적으로 살을 찌우거나 걸음걸이를 만들고, 전사를 상상하며 내적으로 파고들다 보면 부딪히는 지점이 있다. 선이든 악이든 다 내 안에 있는 모습들이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답이 없어서 이것저것 되는대로 최선을 다하는 편이다. 일상에서 꺼내지 않은 모습도 현장에서 꺼낼 수 있는 게 배우라는 직업의 특징 같다.


[인터뷰]엄태구 "'낙원의 밤' 운명처럼 다가왔죠"


엄태구는 제주도에서 무기상을 하는 삼촌과 함께 사는 재연을 연기한 전여빈과 동행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초연한 태도를 잃지 않는 재연은 서울에서 쫓기듯 내려온 태구가 못마땅하기만 하고, 그에게 그런 기색조차 숨기려 하지 않아 그를 당황하게 한다. 두 사람의 동행은 새로운 빛을 낸다. 엄태구는 “전여빈과 ‘밀정’ 때 잠시 마주쳤고 이후 ‘죄 많은 소녀’를 봤다. 당시 ‘연기 괴물’이라는 기사를 읽고 연기를 얼마나 잘하기에 괴물이라고 할까 궁금했는데 함께 연기하고 놀랐다”고 떠올렸다.


감독의 말처럼 엄태구 역시 태구와 재연의 관계가 멜로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태구는 재연을 보며 누나, 조카 생각이 많이 났을 거다. 내 모습 같기도 하고 공감하며 동질감을 느꼈을 거 같다.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까지 하게 된 게 아닐까. 감독님과 논의를 많이 했다. 내가 생각한 대로 연기한 후 감독님께 물어보며 촬영했다.”


박훈정 감독은 로케이션을 진행한 제주도에서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의 엄태구와 전여빈과 자리를 마련해 두 사람이 친해질 수 있도록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엄태구는 “첫 촬영할 때 떨림, 긴장, 새로움이 떠오른다”며 “감독님이 저희를 불러서 맛있는 음식과 커피를 사주셨다. 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됐다. 전여빈과 또 다른 작품에서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제주도에서 촬영이 끝나면 하늘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했다는 엄태구는 “해안도로에서 풍경을 보는데 다른 촬영장에서 느끼지 못한 풍경에 힐링됐다. 맛있는 바닐라 라떼와 음식이 인상적이었다”며 웃었다.


엄태구는 태구를 추격하는 북성파의 2인자 마 이사, 차승원을 향한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촬영이 끝나면 그날 찍은 분량을 같이 봤다. 다 함께 하나 되는 소중하고 위한 경험을 했다. 그때마다 차승원 선배가 연기한 마 이사를 보며 깜짝 놀랐다”고 떠올렸다. 이어 “미세한 표정 하나로 현장 모든 스태프와 배우가 웃기도 하고 정적이 되기도 했다. 놀라운 순간들이 기억에 남는다. 또 액션 장면을 찍고 나면 매니저를 통해 에너지 드링크를 몰래 챙겨주신 것도 따뜻한 기억으로 남았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독립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던 경험이 내 안에 쌓여 도움이 됐다”며 “감독님과 차승원, 박호산 선배와 전여빈 등이 있어서 부담을 덜었다”고 말했다.


[인터뷰]엄태구 "'낙원의 밤' 운명처럼 다가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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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의 밤’ 촬영 중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사우나 장면을 꼽았다. 탈의한 채 수건에 의지해 진행된 촬영이 민망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처음엔 부끄러웠는데 시간이 흐르며 여유도 생겼다. 사우나가 습하고 더웠는데 스태프들은 다 옷을 입고 있었다. 땀을 많이 흘리면서 엄청 고생한 기억이 난다.”


엄태구는 애청하는 TV 프로그램으로 ‘동물농장’을 꼽으며 출연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TV 동물농장’의 애청자인데 불러주시면 나가고 싶다. 동물들과 함께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다”며 수줍게 웃었다.


그러면서 엄태구는 반려견 엄지를 향한 남다른 애정도 보였다. “집에서는 취미도 없고 재미없게 지낸다. 별 볼일이 없지만, 반려견 엄지를 보며 지낸다. 부모님이 촬영해 보내주신 엄지의 동영상과 사진을 보며 웃는 게 낙이다.”


형인 엄태화 감독의 반응을 묻자 엄태구는 “저희가 별로 길게 말은 안 하는데 영화 이야기를 나누면 늘 대답은 비슷하다. 좋은데? 괜찮은데? 라고 말한다. 이번에도 그렇게 말했다. 다른 말은 잘 안 해준다”며 연신 웃었다.


‘낙원의 밤’은 당초 극장 개봉을 목표로 제작됐으나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여파로 인터넷 동영상 플랫폼(OTT) 넷플릭스에서 공개됐다. 극장 상영을 건너뛴 채 OTT에서 상영된 것에 관해 엄태구는 “솔직히 좋은 사운드, 큰 화면의 극장에서 다 함께 보지 못한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다”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OTT를 통해 전 세계에서 시청할 수 있게 된 것은 신기한 경험”이라고 덧붙였다.



사진=넷플릭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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