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증오·그리움·자유…김환희의 '마지막 4분'

최종수정2021.04.25 21:14 기사입력2021.04.25 21:10

글꼴설정

뮤지컬 '포미니츠' 김환희 인터뷰
스스로를 세상과 격리시킨 제니 役
걸음걸이까지 바꾼 새로운 도전
"매일 새로운 도전…매 장면 고민 중"

[뉴스컬처 이솔희 기자] 단 4분간의 연주인데, 6개월이 넘는 시간을 피아노와 싸우면서 보냈다. 피아노를 부드럽게 쓰다듬기도, 강하게 내리치기도, 거침없이 현을 뜯기도 하면서 김환희는 피아노와 가까워졌고, 또 제니와 가까워졌다. 그간의 땀방울이 찬란하게 반짝이는 '포미니츠'의 마지막 4분, 김환희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는 순간이자 제니가 자신을 둘러싼 온갖 속박으로부터 해방되는 순간이다.


뮤지컬 '포미니츠'(연출 박소영, 제작 정동극장·몽타주컬처앤스테이지)는 살인수로 복역 중인 천재 피아니스트 제니와 2차 세계 대전의 상처를 품에 안고 60년 동안 여성 재소자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온 크뤼거가 서로를 이해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김환희는 제니 역을 맡아 무대에 오르고 있다. 2015년 뮤지컬 '판타지아'로 데뷔한 이후 '베르나르다 알바', '빅 피쉬', '킹키부츠'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지만 이처럼 거친 역할을 소화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터뷰①]증오·그리움·자유…김환희의 '마지막 4분'


그는 "저 스스로도 기대를 많이 했다. 이번 작품 덕분에 제 연기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 싶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이미지가 구축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조심스럽기도 하고, 신경도 많이 썼다"고 말했다.


자신과는 너무도 다른 인물이었기에, 걸음걸이와 말투까지 바꿨다. 김환희는 "제 모습이 제니와 반대되는 부분이 많아서 걷는 것부터 힘들었다. 걷는 것 자체가 안 된다는 게 너무 '멘붕'이었다. '내가 무대 위에서 걷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이 무대를 하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박소영 연출의 정성 어린 조언이 큰 힘이 됐다. 김환희가 캐릭터 구축에 어려움을 겪자 자신이 생각하는 제니의 특징을 밤새 메모장에 적어 김환희에게 건넨 것. 김환희는 여전히 그 메모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고, 그가 조심스레 꺼내놓은 메모에는 제니를 설명할 수 있는 수식어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김환희는 "제니라는 인물 자체에 대해 적어 보내주셔서 도움이 정말 많이 됐다. 거칠게, 늑대소년처럼 행동하려고 했다.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지만 재미있었다. 원래 항상 밝은 성격인데 매일 제니의 감정으로 마무리해야 한다는 게 힘들었다"고 이야기했다.


"자기 자신을 벽에 가둔 사람은 마음에 상처가 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게 제니라고 생각했어요. 움직임도 격하다 보니 손과 발에 항상 멍이 들어있었어요. 그걸 보면서 제니는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했죠. 너무 과장되지 않게, 최대한 아픈 마음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표현하려고 했어요."


[인터뷰①]증오·그리움·자유…김환희의 '마지막 4분'


모든 배우, 스태프가 고민에 고민을 거쳐 '포미니츠'를 완성했다. 손짓, 발짓 하나도 허투루 하는 부분이 없다. 김환희는 "연출님도 새벽 2시까지 노트를 보내주시고, 회의도 정말 많이 했다. 배우들도 고민을 계속 쌓아가다 보니 두 달의 연습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고 지난 시간을 회상했다.


이어 "쉬운 게 하나도 없었다"고 웃으며 "피아노에 대해 가장 많은 고민을 했다. 더 좋은 걸 보여드리자는 생각에 음악이나 움직임 수정도 정말 많이 했다. 안무 감독님도 이렇게 공연 직전까지 마음을 졸이게 되는 공연은 처음이라고 하셨다. 피아노 연주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움직임, 그 안에서 연결되는 호흡,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했다"고 전했다.


"안무 선생님하고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제니가 땅에 가까워질수록 삶으로, 하늘과 가까워질수록 죽음으로 느껴졌어요. 제니가 피아노 위에 올라가서 담배 피우는 장면도 죽음을 뜻하거든요. 또 땅에 발을 구르는 장면은 살아있는 순간을 뜻하기도 하고요. 마지막 연주 때 제니가 손을 하늘로 올리는 모습도 죽음과 관련이 있어요. 땅과 하늘,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한 것 같아요."


극 중 제니는 배 속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남자친구의 죄를 뒤집어쓰고 교도소에 들어간다. 김환희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수를 한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면 아빠가 피아노만 치게 할 것이고, 아이를 어떻게 할지는 뻔하지 않나. 제니에게는 교도소가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는 공간이다. 집보다 더 집 같은 공간"이라고 이야기했다.


[인터뷰①]증오·그리움·자유…김환희의 '마지막 4분'


제니는 자신의 재능을 발견해준 크뤼거에게 점점 마음을 열고,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아 자신의 모든 감정을 분출하는 연주를 선보인다. 이 마지막 4분간의 연주는 '포미니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다.


김환희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가둬두지 않으셨다. 안무 감독님도 제니가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안무로 정하기에는 조심스럽다고 하셨다. 건반 하나 두드리고, 현 하나 뜯으면서 감정을 찾는 건 배우의 몫이었다. 피아노 연습을 하면서 동시에 감정을 찾아 나갔다"고 눈을 반짝였다.


이어 "공연할 때마다 마지막 장면의 감정이 조금씩 다르다. 증오일 수도, 그리움일 수도, 자유일 수도, 자신감일 수도 있다. 만감이 교차하는 것 같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하다. 정해진 몇 개의 행동이 있지만, 전체적인 움직임을 정하는 건 배우가 해야 할 일이었다. 24시간이 모자를 정도로 연습을 했다"고 강조했다.


"지난 시간을 생각해보니 정말 뿌듯해요. 그런 고난의 시간이 있었으니 관객분들이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 자만하지 않고 마지막 공연을 하는 날까지 저의 모든 걸 쥐어짜 내야죠. 매일 새로운 도전이에요. 완벽에 가까운 공연을 보여드리기 위해 매 장면 고민하고 있습니다."


온몸을 내던져 선보이는 마지막 연주. 제니에게도, 김환희에게도 남다른 순간이다. 4분간의 연주를 마친 후 제니의 감정에 대해서 김환희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해방감이었을 것 같다. 나를 옥죄어왔던 것들이 한 꺼풀 벗겨진 느낌일 것이다.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지 않을까. 모든 것으로부터 마음이 가벼워졌을 것 같다"고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커튼콜 인사까지 하고 나서 무대 뒤로 들어갈 때까지 기분이 너무 이상해요. 터덜터덜 들어가는데 눈물이 계속 나더라고요. 제니의 마음이 너무 깊게 느껴져서 마지막까지 쉽게 들어갈 수가 없어요."


사진=김태윤 기자



이솔희 기자 sh0403@asiae.co.kr
<ⓒ뉴스컬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0
좋은번호가 좋은 기운을 나만의 골드넘버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