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회 전주영화제⑥]정재광, 나른한 청춘의 얼굴(인터뷰)

최종수정2021.05.05 08:00 기사입력2021.05.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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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현장
정재광 인터뷰
한국영화 경쟁 '낫 아웃'
야구선수 광호役
"고강도 훈련에 물집, 자랑스러워"

[뉴스컬처 이이슬 기자] 정재광의 얼굴에는 나른한 청춘이 비친다. 오르고 올라도 지독하게 빠져드는 절망의 늪에서 하루하루 고뇌하는 무기력한 표정 너머, 새롭게 떠오르는 내일의 태양과 마주하는 환희에 찬 얼굴이 공존한다. 정갈하게 자리한 이목구비 사이로 뿜어지는 청춘의 포효. 그는 엄청난 에너지를 뿜으며 작품마다 새로운 배역으로 숨 쉰다. 이번에는 야구선수 광호로 분해 마운드에 오른다.


이정곤 감독은 결혼식 하루 전날, 정재광을 찾아갔다. 가방에서 꺼낸 서류봉투 하나. 그 안에 담긴 영화 ‘낫 아웃’ 대본을 건네며 “같이 하자”고 말했다. 무려 6년간 집필해온 시나리오를 그렇게 땅에 심었다. 둘의 만남은 당시로부터 4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정재광은 2016년 제42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영화 ‘수난이대’로 독립스타상 배우부문을 수상하며 크게 주목받았다. 영화를 본 감독은 “정재광을 염두에 두고 야구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데 언제 준비가 언제될지 모르겠지만 꼭 같이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순간이 ‘낫 아웃’의 출발이자 광호의 시작이었다.


[22회 전주영화제⑥]정재광, 나른한 청춘의 얼굴(인터뷰)


정재광은 30일 오후 전주 완산구 고사동 영화의거리 한 카페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생애 처음으로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전주를 찾았다”며 “어제 한옥마을에도 다녀왔고, 초코파이도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며 웃었다. 철저한 방역 속 진행된 영화제이지만 전국에서 조용히 모여든 씨네필들의 열정으로 가득했다.


‘낫 아웃’은 청춘의 삶을 새로운 시각으로 담아내 약 1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의 한국영화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정재광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속에도 영화제가 열리고 ‘낫 아웃’이 경쟁 부문에 초청되어 감사하다”고 전했다. 지난해 10월 촬영을 마쳤지만, 코로나19로 쉽게 개봉을 기약할 수 없었다고. 당시를 떠올리며 정재광은 “대구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한창 진행 중에 코로나19가 번졌다. 다행히 촬영은 마무리 할 수 있었지만, 개봉을 기대하지는 못했다. 영화제에서 관객과 만나길 간절히 바랐는데 전주영화제에서 상영된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두 손을 꽉 쥐었다.


영화는 프로야구 드래프트 선발에서 탈락하게 된 고교 야구부 유망주 광호(정재광)가 야구를 계속하기 위해 위험한 선택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야구를 소재로 하면서 청춘의 좌절, 갈등과 방황을 그리고 일반 사람들이 흔히 알 수 없었던 스포츠계의 어두운 현실을 다룬다. 감독은 광호를 구원하지도, 포기하지도 않는다. 스트라이크 아웃 낫 아웃 규칙처럼 아웃됐지만, 아웃이 아닌 상태로 1루에 간신히 출루한다. 한국영화아카데미(이하 KAFA) 출신으로 단편 ‘윤리거리규칙’(2016)으로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경쟁 섹션에 초청된 바 있는 이정곤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남성 배우들이 열망하는 야구 영화. 가슴이 뛰었냐고 묻자 정재광은 뜻밖의 답변을 내놓았다. “야구에 관해 잘 몰라서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고 느꼈다. 야구뿐 아니라 청춘의 성장을 통해 남다른 의미를 전한다. 또 서스펜스적 재미도 놓치지 않았다. 거의 모든 장면에 내가 나온다. 연극으로 치면 한 번도 등 퇴장을 하지 않는 셈이다. 이를 극복해야 다음에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도전하고 싶었다. 성장을 위한 과제처럼 받아들였다.”


열아홉 광호는 여느 청춘영화 주인공과 달리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다. 다른 이의 희생 따위는 중요치 않다. 그는 자신의 욕망이 중요하다. 채 스무살이 되지도 않았지만, 그의 삶은 엉킬 대로 엉켰다. 프로 대신 대학 진학이라도 하려는 그의 욕망은 동기들에겐 배신행위가 되고, 감독에게는 뇌물을 챙길 건수가 된다. 어떻게든 대학에 가려던 그는 돈을 구하기 위해 나선다.


[22회 전주영화제⑥]정재광, 나른한 청춘의 얼굴(인터뷰)


극 초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욕망을 향해 돌진하는 광호에게 선뜻 이입하기란 쉽지 않다. 그를 이해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정재광은 이를 걱정했다고 했다. 이날 첫 관객과의 대화(GV)를 앞두고 그는 “영화를 오늘 처음 본다. 첫인사를 전하게 될 텐데 관객들이 어떻게 보실지 궁금하다. 영화가 지닌 메시지가 잘 전달되길 바란다”며 “광호가 자칫 비호감으로 비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의도를 가진 지점이다. 순수한 아이처럼 꿈에 다가가는 열정, 간절함, 절박함이 관객에게 잘 전달되길 바란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정재광은 영화를 준비하며 전국 야구부 대회를 찾아 수많은 광호를 관찰하며 배역을 연구해갔다. 그는 “사전 로케이션 당시 감독님, 피디님과 전국 야구부 대회 경기를 보러 갔다. 대본을 보며 상상했던 광호의 모습과 비슷한 한 친구가 눈에 들어왔다. 유심히 관찰했다. 밀도 있는 뜨거운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몸은 185cm 정도 되는 키에 다부진 체격을 지녔지만 웃는 모습이 어린아이처럼 풋풋했다. 그를 보고 광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순수하고 두려움이 많은, 미성숙한 아이라고 정의를 내렸다”고 떠올렸다.


정재광은 야구선수 역할을 위해 몸을 키우며 외적인 변신을 감행했다. 그는 “관중석에 앉아 마운드에 있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고 내 허벅지를 내려다보니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오전에 일어나서 근력 운동을 하고 오후에는 야구 훈련을 했다. 하루에 밥을 네 끼씩 먹으며 체력을 키웠고 나중엔 수원의 한 야구 동호회에서 타자 영입 제안도 받았다. 야구 규칙도 모르던 내가 160km를 던졌다. 다시 군대에 간 느낌이었다”며 강도 높은 훈련 과정을 전했다.


고된 훈련으로 손에 물집이 가득한 장면은 실제 정재광의 물집이었다. “훈련을 계속 하다 보니 저절로 물집이 잡혔다. 영화 속 손에 난 물집이 모두 실제 제 것이었다. 분장팀이 빨갛게 색만 입혔다. 정말 자랑스러웠다.”


프로야구 진출에 성공한 1%의 선수들을 제외한 나머지 99%의 선수들이 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포기 혹은 대학 진학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가 존재한다. 정재광도 배우가 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통해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문턱을 넘었다고 했다.


“미성년에서 성년으로 바뀌는 중간 단계가 고3이 아닐까. 당시 저도 연극영화과 입시를 준비하며 절실했다. 연기하고 싶었지만 ‘혹시 떨어지면 어쩌나’ 두렵고 절박했다. 광호를 준비하며 그때를 떠올렸다. 어떻게든 노력해서 원하는 학과에 진학하고 싶었던 때를 떠올리며 감정을 극대화했고, 투박하게 표현하고자 했다.”


[22회 전주영화제⑥]정재광, 나른한 청춘의 얼굴(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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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광은 촬영 도중 수시로 영화 ‘폭스캐처’(2014)의 OST를 들으며 배역에 몰입했다. 그는 “음악은 직관적이다. 주관적 해석 없이 바로 느껴지는 것이기에 음악을 찾아 들으며 주로 영감을 얻는 편이다. 레퍼런스가 될 만한 영화를 보고 OST를 찾아 듣는 편인데 ‘낫 아웃’을 준비하며 ‘폭스 캐처’의 채닝 테이텀을 보며 도움받았다. 하관도 튀어나오게 하고 발음도 뭉개면서 투박함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드래프트 장면은 굉장히 중요한 장면이었다. 촬영이 3회차 때 진행됐는데 촬영 전에 ‘딱 10분만 달라’고 한 후 OST 음악을 들으며 명상했다. 현장에 모인 스태프들도 그 장면이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모두 광호를 응원하는 마음이었다. 마치 다들 광호의 편이 돼 준 느낌이랄까. 다행히 한 번에 오케이가 났다. ‘액션!’ 하는 순간 모두가 숨죽이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정재광은 현재 드라마 ‘알고 있지만’을 촬영 중이며 ‘범죄도시2’와 ‘파이프라인’ 등을 통해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최근 제93회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서 한국인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 트로피를 품에 안은 윤여정의 모습을 보며 큰 위안을 받았다며 남다른 각오를 다졌다.


“윤여정의 이야기에 마음의 위안을 받았고 ‘아 나도 할 수 있겠구나’라는 용기도 생겼다. 영화를 하고 배우의 길에 들어선 사람으로서 자부심도 커졌다. 지금은 밑천이 없지만, 자부심도 커졌다.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고 건강하게 더 열심히 좋은 연기를 할 수 있겠다고. 좋은 그릇을 가진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의 슬로건은 ‘영화는 계속된다’(Film Goes on)이다. 마지막으로 정재광에게 영화란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영화에 익숙해져서 오히려 익숙하지 않음을 찾고 싶어 하는 거 같다. 중학교 때부터 영화를 봐 왔는데, 아주 익숙해진 친구 같다. 오히려 가까이에 있지만 그럴수록 더 멀리, 다양한 각도에서 보려고 한다. 앞으로 더 새로운 지점을 계속해서 찾고 싶다.”



사진=김태윤 기자, 영화 '낫 아웃' 스틸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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