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최은실, 터닝포인트가 된 '호프'

최종수정2021.02.21 19:00 기사입력2021.02.2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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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호프' 최은실 인터뷰

[뉴스컬처 이솔희 기자] 최은실은 부담을 안고 '호프'를 마주했다. 초연을 통해 입증된 작품의 명성을 향한 주변의 기대가 높았을 뿐만 아니라, 배우 최은실의 존재감을 국내 무대에 확실히 알릴 수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려 힘든 시간을 겪기도 했지만, 마리에게 조금씩 다가가며 점점 여유로워졌고, 비로소 무대 위에서 마리 그 자체로 서 있게 됐다. 그렇게 최은실은 '호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고, '호프'는 그의 20년 배우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뮤지컬 'HOPE: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이하 '호프')는 현대 문학 거장의 미발표 원고를 둘러싼 재판을 통해 평생 원고만 지키며 살아온 78세 노파 에바 호프의 삶을 조명하는 작품이다. 최은실은 호프의 엄마 마리 역을 맡아 무대에 올랐다.


[인터뷰①]최은실, 터닝포인트가 된 '호프'


'호프'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인해 두 달가량 공연을 멈추고 휴식 기간을 가진 뒤 지난 2일 재개했다. 공연이 멈추었던 동안 손을 놓고만 있을 수는 없었던 상황. 그 시간 동안 최은실은 '호프'와 마리에게 조금 더 가까워졌다.


최은실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 않나. 쉬는 동안 더 좋은 부분을 찾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작품과 마리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됐고, 내가 마리로서 조금 더 자연스럽게 무대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공연을 재개하고 나서는 조금 더 쉽게 다가가려고 했다. 이전에는 스스로 표현의 제약이 있었다면, 재개 후에는 그걸 깬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시즌 '호프'에 새롭게 합류하게 된 최은실. 마리와의 공통점을 찾는 것이 첫 시작이었다. 그는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겪어보지 못한 전쟁, 수용소 생활 등을 표현해야 하지 않나. 마리를 이해하기 위해 내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과 마리의 공통점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또 마리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도 잘 알아야 마리를 깊숙이 알 수 있을 것 같아 계속해서 '왜 그랬니' 하고 질문을 던지려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어디서부터 원고에 대한 집착이 시작된 걸까 생각했다. 내가 엄마라면 딸을 먼저 챙겼을 것 같은데. 버스에서 원고가 떨어졌을 때부터 일 거라고 생각했다. 평상시에도 뭔가가 떨어지거나 하면 불안한 느낌이 들지 않나. 이 원고가 지켜지지 않으면 베르트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란 걱정에 집착했을 것"이라고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했다.


"베르트가 떠난 후에는 약속에 집착한 것 같아요. 마리는 마지막까지 집착을 버리지 못했잖아요. 마리가 가장 안쓰러운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베르트도 원고에 집착을 했다가 현실을 직시했고, 호프도 결국에는 원고를 놓게 됐는데, 마리는 죽을 때까지 원고를 품고 살았거든요."


[인터뷰①]최은실, 터닝포인트가 된 '호프'


마리의 불행한 삶의 시작은 그에게 원고를 맡기고 간 베르트에게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을 터. 최은실은 "마리의 사랑은 사랑을 하고서도 외로웠던 사랑"이라며 "베르트도 환경에 지배당한 것이다. 같은 상황이지만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이 있지 않나. 선택은 자신의 몫이니까. 베르트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선택을 해야 하는 환경을 탓해야 하는 시대였다"고 말했다.


마리는 베르트를 사랑한 만큼 호프를 향한 사랑도 컸다. 최은실은 "어느 분야에 심하게 집착하게 되면 정말 사랑하는 사람도 안 보인다고 하더라. 마리도 호프를 사랑했지만 원고에 너무 집착해서 안 보이는 거다. 집착이 정말 무서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이어 "호프에게 원고를 줄 때도 '이걸 지켜줄 사람은 너밖에 없어'라는 감정과 '내가 너무 힘들었을 때 날 지켜준 거야, 그러니까 너도 이걸 가지고 있어'라는 감정이 교차된다. 복잡한 마음이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만 잊지 않으면 돼'라는 대사를 하기 힘들다. 집으로 꼭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면서, 돌아온 후에 나 같은 삶을 살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섞여 있다"고 털어놨다.


"나중에 호프를 떠올리면서 '생일 축하해 호프'라는 대사를 할 때도 정말 힘들어요. 마리가 처음 등장해서 과거 호프의 생일을 축하하는 장면에 그 대사가 없거든요. 그때 해주지 못한 말을 그제야 해주는 그 마음이 정말 어려워요."


최은실은 마리뿐만 아니라 호프의 재판을 취재하는 법정 기자로서의 역할도 해야 한다. 그는 "기자의 대사가 마리로서 호프에게, 그리고 마리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종이 쪼가리에 인생을 바친 여자'라는 대사도 그렇다. 마리도 그랬지 않나. 마리도 그제야 그 종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나 자신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고, '그건 그냥 종이 쪼가리일 뿐'이라고 호프에게 말해주는 것이다. 옷만 기자의 옷을 입고 있을 뿐 대사는 마리가 호프에게 해주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기자로서 제일 힘든 부분은, 호프한테 너무 이입이 돼서 눈물이 나온다는 점이에요. 기자는 울면 안 되는데 호프를 바라보고 있으면 눈물이 흐를 것 같아서 억지로 참는 게 제일 힘들어요.(웃음)"


[인터뷰①]최은실, 터닝포인트가 된 '호프'


'호프'는 애틋한 가사와 대사로 가득한 작품인 만큼, 최은실에게 울림을 주는 대사도 많았다. 그는 "요즘 가장 가슴에 꽂히는 부분은 '잃은 적 있는 사람은 알아'다. 경험에서 나온 아픔인 것이다. 내가 아무리 위로한다고 해도 직접 느끼지 못했고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호프 역의 김선영, 김지현과의 호흡도 특별했다. 특히 김지현과는 일본에서의 활동을 함께한 바 있다. 최은실은 "일본에서도 언니가 정말 많이 도와줬다. 오랜만에 만나 너무 좋았고, 서로 너무 잘 아는 사이라서 큰 힘이 됐다. 저도 제 연기를 보고 평가해주는 걸 좋아하는데, 언니도 본인에게 지적을 해주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큰 도움이 됐다"고 고마움을 드러냈다.


김선영에 대해서는 "지현 언니와는 또 다른 카리스마가 있다. 그 카리스마는 정말 누구도 못 따라갈 것 같다. 예전부터 정말 좋아하던 배우다. 목소리에 어떻게 그런 에너지가 있을까 싶다. 어딜 가나 선영 언니는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저런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배우다. 심지어 재밌기까지 하다"고 미소 지었다.


최은실에게 '호프'는 어떤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까. 그는 "터닝포인트가 된 작품"이라며 "다른 누구에게 기억되기보다 나 자신에게 만족할 수 있었던 공연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또 하고 싶은 작품이다"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사실 공연 연습 시간이 제일 힘들잖아요. 그런데 '호프'는 그런 적이 없어요. 매일 연습실에 가고 싶더라고요. 작품도 너무 좋았고 배우들도 너무 좋았어요. 매일이 즐거웠던 작품이에요."


사진=김태윤 기자



이솔희 기자 sh040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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