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노트③]위로·공감·공허함…김려원·제이민이 마주한 감정들

[컬처노트③]위로·공감·공허함…김려원·제이민이 마주한 감정들

최종수정2021.03.25 08:47 기사입력2021.03.24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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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관부연락선'의 김려원·제이민
김려원 "무대에서 위로 받아 행복"
제이민 "화려한 삶 살았던 윤심덕, 공허함 있었을 것"

[뉴스컬처 이솔희 기자] 김려원에게 '관부연락선'은 "잔향이 있는" 작품이었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작품의 매력에 푹 빠진 그는 제이민에게 대본을 건넸고, 제이민 역시 대본을 읽자마자 '관부연락선'이 주는 여운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관부연락선'의 홍석주와 윤심덕으로 다시 만나, 무대 밑에서 그랬던 것처럼 무대 위에서도 사랑스럽고 애틋한 우정을 펼쳐내고 있다.


연극 '관부연락선'(연출 이기쁨, 제작 플레이더상상·스텝스)는 윤심덕이 살아있다는 상상에서 시작되는 작품으로, 배에서 우연히 만난 홍석주와 윤심덕이 점차 가까워지고,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김려원은 밀항을 위해 배에 숨어사는 홍석주를, 제이민은 죽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지만 홍석주 덕분에 목숨을 건진 윤심덕을 연기한다.


제이민은 "전작이 끝난 다음 오래 쉬어볼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관부연락선' 대본을 봤는데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더라. 큰 사건도 없고 잔잔하지만 울림이 있었다. 호수에 돌을 던지면 물이 퍼지는 느낌이었다. 이건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작품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전했다.


[컬처노트③]위로·공감·공허함…김려원·제이민이 마주한 감정들


두 사람은 입을 모아 "모든 순간이 행복하다"고 말하며 '관부연락선'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윤심덕과 홍석주가 서로에게 전하는 위로가, 두 사람을 연기하는 배우들에게도 전해진 것. 작품 자체가 따뜻함을 지닌 만큼 연습 과정에서도 모든 배우가 한마음 한뜻으로 서로를 배려하며 작품을 준비했고, 그런 돈독함이 무대 위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김려원은 "무대 위에서 이런 위로를 받는 게 정말 오랜만이다. 서로가 서로를 위로해주니까 정말 행복하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 모두가 행복하게 공연하고 있다"고 미소 지었다.


제이민 역시 "공연 전에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에도 공연을 시작하고 나면 에너지가 생길 거라는 믿음이 있다. 공연을 하고 힐링을 받으면 에너지가 순환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행복 속에 공연 중인 만큼, 작품과 인물을 잘 표현해내고 싶은 마음도 컸다. 두 사람은 고민에 고민을 거쳐 윤심덕과 홍석주를 만들어냈다. 제이민은 "실존 인물이지만 극 중 이야기는 픽션이지 않나. 그래서 좀 더 자유롭게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화려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인물이잖아요. 최고의 스타로 살던 사람의 화려한 인생 뒤에는 어떤 외로움이 있었을까 고민했어요. 인간의 외로움과 공허함,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희망을 어떻게 극대화해서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윤심덕이 소년을 대할 때 여왕처럼 행동하는 모습이 극 중에서는 유머러스하게 담겨있지만, 저는 그게 가면을 쓴 윤심덕의 모습처럼 슬프게 느껴졌거든요."


김려원은 "심덕이와 반대되는 부분에 대해 생각했다. 홍석주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지만 단단하고 꿈이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심덕이가 잘 만들어진 조각상인데 안이 텅 빈 느낌이라면, 석주는 돌멩이이지만 안은 꽉꽉 찬 느낌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런 삶을 계속 살아왔으니까 내내 아파할 것 같진 않았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더 거칠고, 털털한 척, 괜찮은 척하는 모습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가 숨겨둔 아픔을 꺼낼 때 작고 약해지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 사실은 너무 아팠어'를 말하지 않아 단단하게 보이는, 그렇지만 그걸 말하지 못해 더 가슴 아픈 인물이에요."


[컬처노트③]위로·공감·공허함…김려원·제이민이 마주한 감정들


극 중 윤심덕과 홍석주는 서로의 옷을 바꿔입고 새로운 발걸음을 시작한다. 김려원은 "의상이나 신발처럼 내가 어떤 것을 걸치고 있느냐에 따라 생각과 행동이 달라지는 것 같다. 이해할 수 없었던 두 여자가 서로의 옷을 입었을 때 느끼는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심덕이의 옷을 입고 처음에는 불편함을 느끼면서, 심덕이의 불편했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제이민은 "심덕이가 석주에게 슈크림빵이나 사이다 같은 신문물을 접하게 하지 않나. 옷도 그 일환이다. '너도 네가 원하는 삶을 선택하면서 살 수 있어'라는 의미가 담겼다. '조금 더 자신의 삶을 고귀하게 느껴도 되는 여잔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너도 선택해도 돼'라는 마음으로 옷을 건네게 되더라. 두 사람이 새로운 삶을 살게 되지 않나. 새로운 시작을 위한 아이템을 장착하는 것"이라고 깊이 있으면서 재치 넘치게 표현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성악가이자 배우. 대중의 관심 속에 살았던 사람. 제이민과 김려원은 윤심덕의 공허함에 공감했다. 제이민은 "윤심덕이 김우진에게 죽음을 말하기까지의 삶이 얼마나 공허했을까. 그 공허함을 안고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윤심덕만큼의 명예와 명성은 아닐지라도, 저희도 관객의 박수와 응원을 받고 사는 사람들이지 않나. 무대를 내려오면 문득 외롭고 고독하고 공허함이 찾아올 때가 있다. 맨날 연습을 하고, 공연을 하다가 쉬는 날이 생겼을 때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더라. 특히 코로나19 때문에 공연이 중단됐을 때는 어느 순간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없어지는 것처럼 느끼게 됐다"고 털어놨다.


[컬처노트③]위로·공감·공허함…김려원·제이민이 마주한 감정들


김려원 역시 "그런 배우가 많다. 일을 너무 사랑하고, 일이 전부가 되어 버려서 일상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 쉬지 않고 일하다가 막상 쉬게 되면 무기력하고, 컨디션이 안 좋다. 공연할 때는 나를 사랑해주시는 분들 사이에 있다가, 공연을 하지 않으면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잊힐 것 같은 불안함이 생길 때가 있다"고 배우로 살아오며 느낀 고충을 조심스럽게 꺼내놨다.


삶을 짓눌렀던 아픔과 상처를 딛고 성장해나가는 홍석주와 윤심덕의 모습을 보며, 제이민과 김려원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봤다. 제이민은 "어렸을 때부터 가수 활동을 하고, 공백기도 거치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10대부터 가수 준비를 하면서 많은 기대와 실망, 어른들에 대한 배신감을 겪었다. 순조롭지 않은 길을 걸으면서 정말 힘들었다. 20대로 돌아가라고 하면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상처를 털어놨다.


이어 "그러다가 기적 같은 기회로 뮤지컬이라는 길에 오게 됐다. 내가 원하는 노래도 마음껏 부를 수 있고, 접해보지 못했던 연기도 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시행착오가 많았고, 좌절도 많이 겪었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보니 단단해져 있더라"고 눈을 반짝였다.


그러면서 "내 꿈이, 노래가 내 삶이라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해왔는데, 어느 날 그 생각을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은 그냥 내 삶이야, 음악이 없어도 내 삶이야'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꿈과 삶을 동일시하면 행복해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쇠를 두드리면 단단해지잖아요. 저는 무수히 두드려졌거든요. 예전에는 뒤를 많이 돌아봤는데, 이제는 앞만 보고 달리게 됐어요. 먼 미래를 보는 것도 아니고, 오늘 내일을 잘 사는 걸 목표로 해요. 진흙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나를 단단하게 하는 시간들이었더라고요. 그런 아픔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속이 꽉 찬 사람이 됐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시간을 겪고 나니 또 다른 어려움이 생겨도 '나는 할 수 있어'라는 믿음이 있어요."


김려원은 어머니를 향한 고마움을 떠올렸다. 그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엄마가 힘들게 키워주셨다. 아무래도 돈 문제가 있다 보니 배우고 싶은 걸 마음껏 배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에는 많이 속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하다.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엄마의 사랑과 따뜻함 덕분에 밝게 자란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평소에 밝은 모습을 보이지만 사실 우울하거나 약한 부분도 많은데, 엄마 덕분에 잘 자란 것 같다. 엄마의 존재가 그렇다는 걸 어렸을 때부터 배워서 '호프'의 마리를 할 때도, 지금 석주를 표현할 때도 엄마를 많이 생각한다. 이제야 그때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된 것 같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컬처노트③]위로·공감·공허함…김려원·제이민이 마주한 감정들


'관부연락선'을 통해 김려원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후 두 번째로, 제이민은 처음으로 연극 무대에 도전하게 됐다. 두 사람은 대사와 대사 사이의 적막이 주는 교감을 연극의 매력으로 꼽았다. 김려원은 "뮤지컬은 템포를 신경 쓰면서 달려가는 느낌이라면, 연극은 내 감정을 충분히 느끼면서, 교감을 하면서 느껴지는 대로 할 수가 있다. 내가 이 정도의 감정을 가지고, 여유 있게 대사를 해도 관객분들이 받아들여 주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있다. 감정적인 기운을 전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러닝타임이 90분 정도인데, 연습실에서 한 시간 만에 연습을 끝낸 적이 있어요. 뮤지컬을 주로 하던 친구들이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웃음) 뮤지컬은 대사하고, 움직이고, 노래하는 게 다 약속이니까, 그걸 흐트러지지 않게 지키는 게 중요하잖아요. 근데 지금은 여운을 가져야 할 때 여운을 가져가고, 빠르게 진행되어야 할 때는 빠르게 진행하면서 이어가고 있어요."


제이민은 "적막을 누릴 수가 있다. 내가 이 안에서 표현하고 싶은 놀람, 쓸쓸함, 슬픔 등을 다 연기할 수 있는 기쁨과 자유로움이 있다. 관객분들도 그 감정을 충분히 느끼실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적막이 주는 희열이 있다. 연출님도 저희가 표현하고 싶은대로 자유를 주셨다. 그래서 더더욱 모든 걸 느끼면서 연기할 수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컬처노트③]위로·공감·공허함…김려원·제이민이 마주한 감정들


두 사람은 뮤지컬 '리지'에 이어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추게 됐다. 두 작품은 여성 주인공이 작품을 이끌어 간다는 공통점을 지녔지만, 작품과 캐릭터의 결은 전혀 다르다. 배우로서 이처럼 다양한 모습의 여성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기쁨을 느낄 터.


제이민은 "처음 뮤지컬을 시작했을 때는 아무래도 남성이 중심인 이야기의 상대역인 경우가 많다 보니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서사가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처럼 내가 표현하는 인물의 이야기가 관객분들에게 전달이 되는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려원 역시 "주체적인 인물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건 복인 것 같다. 이런 변화 덕분에 관객분들에게도 선택의 폭이 넓어져서 좋다고 생각한다. 더 다양해져야 하고, 더 다양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과도기다. 더 다양한 여성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전했다.


인터뷰 내내 서로를 향한 신뢰와 믿음을 드러낸 두 사람은 마지막까지 애틋함이 흘러넘치는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애정이 가득 담긴 말을 전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너무 믿음직하고 편안한 사람이에요. 무대에서 배려를 가지고, 저를 당황하지 않게 하는 사람이죠. 자신이 해야 하는 역할을 굉장히 잘 해내는 사람이에요. 자기가 돋보이려고 과하게 하지도 않고요. 상대방이 잘 맞춰주고 있으니 나만 잘하면 되겠다고 생각하게 해요. 따뜻한 사람이다 보니 저에게 주는 감정도 커요. 진심으로 작품을 좋아하고 아끼는 게 느껴져서, 함께하면 시너지가 생겨요."(김려원)


"저도 똑같아요. 언니도 정말 믿음직하고, 잘 이끌어줘요. 연기에서나 일상에서나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을 도와주고, 걱정해줄 수 있는 부분을 걱정해줘요. 함께 무대에서 호흡하고 같이 만들어가는 상황에서는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의 마음을 읽어주는 게 중요한데, 언니는 그런 면에 있어서 정말 믿고 가요. 김려원 배우가 좋고, 김려원 언니가 좋아요."(제이민)


사진=김태윤 기자



이솔희 기자 sh040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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