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전 30주년④]설경구 "포스터 붙이다 김민기 대표에 발탁됐죠"

[학전 30주년④]설경구 "포스터 붙이다 김민기 대표에 발탁됐죠"

최종수정2021.03.29 15:25 기사입력2021.03.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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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전 30주년 기획
설경구 1기 단원
'지하철 1호선' 94년 초연
포스터 붙이다 발탁
학전 발판으로 배우의 길

[뉴스컬처 이이슬 기자] 설경구는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후 한양레파토리에 있었다. 졸업은 했지만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느꼈다. 학교 선후배가 사회까지 이어지니 마치 대학교 5학년 같다 느낀 것이다. 이후 그는 다양한 경험을 위해 극단을 나왔다. ‘연극판’에서 극단 일을 통해 번 50만 원에 행복해하던 그였지만, 수입이 없어지자 당장 생활할 길이 막막했다. 대학까지 졸업한 청년이 집에 손을 벌릴 수는 없었기 때문. 그래서 학전 극단에 있는 선배의 도움으로 포스터 붙이기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 달 반쯤 지났을 때, 김민기 대표가 그에게 ‘지하철 1호선’을 제안했다. 그렇게 그는 초연 무대에 오르며, 학전 1기 단원이 됐다. 한결 같이 성실한 모습을 지켜본 김 대표가 그를 발탁한 것이다.


1991년 3월 15일 태동한 학전은 올해 30주년을 맞았다. 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 대학로 한편을 묵묵히 지켜왔다. 그곳에서 수많은 배우가 웃고 울고 구슬땀 흘리며 좋은 배우로 자리 잡았고, 창작터로 역할을 해왔다. 1기 배우인 설경구의 감회는 남달랐다. “대학로에서 포스터 붙이던 나를 뭘 보고 같이하자고 해주신 건지. 오디션을 본 것도 아닌데 참…” 그는 최근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학전 입단 당시를 떠올리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설경구/사진=뉴스1

설경구/사진=뉴스1



설경구는 “제가 단원 1기예요”라고 먼저 말을 꺼냈다. 자신의 뿌리를 당당히 드러내는 모습에서 남다른 애정과 우아함이 묻어났다. “1995년에 공연 준비하다가 학전이 몇 주년 됐다고 기념했던 기억이 나는데, 벌써 30주년이 됐네요. 대학 졸업하고 대학로 나와서 오갈 때 없었을 때 저를 딱 잡아주신 분이 김민기 선생님이었어요. 선생님, 아직 건재하시잖아요. 만약 그때 '연극판'을 떠났다면 글쎄, 지금 어떻게 됐을지…”


1994년 5월 14일 초연된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2008년 12월 31일까지 15년간 4천 회 넘게 공연됐다. 70만 명이 넘는 관객이 작품을 봤고, 독일, 일본, 중국, 홍콩 등 해외 무대에도 올랐다. 2018년 10년 만에 다시 장막을 걷은 4,001회 공연은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신예 배우들로 꽉 채웠다. 남북 정상회담 당시 환송 행사 '하나의 봄' 음악감독을 맡은 정재일이 음악을 새롭게 편곡해 선보였다. 작품은 1986년 초연된 독일 폴커 루드비히 원작을 김민기 대표가 국내에 맞게 번안, 연출한 작품으로, 연변 아가씨 선녀의 눈을 통해 90년대 말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 이후 한국사회의 모습을 지하철 공간에 축소, 풍자한다. 중국에서 서울로 온 연변 처녀를 비롯해 실직가장, 가출소녀, 지하철 잡상인, 자해공갈범 등 다양한 인간군상을 통해 현실적 문제를 꼬집으며 호평을 이끌었고, 이를 통해 설경구·황정민·김윤석·장현성·조승우 등 배우 다수가 태어났다.


설경구는 30년 전 ‘지하철 1호선’ 초연에 합류하던 순간을 떠올렸다. “김민기 선생님이 포스터 붙이던 저에게 같이 ‘지하철 1호선’ 하지 않겠냐고 제안해주셨어요. 아무것도 없는 저에게 같이 하자고 해주신거죠. 지금 생각해도 궁금해요. 오디션을 본 것도 아니고 연기를 보여드린 것도 아닌데 포스터 붙이던 놈을 뭘 보고 공연하자고 해주셨는지”라며 허허 웃었다.


“김민기 선생님이 저에게 큰 장을 마련해주셨어요. 덕분에 지금까지 연기 일을 계속할 수 있지 않나, 배우로 길을 걸어오고 있지 않나 싶죠. 저한테 학전과 ‘지하철 1호선’은 기회였습니다.”


[학전 30주년④]설경구 "포스터 붙이다 김민기 대표에 발탁됐죠"

사진=뉴스1

사진=뉴스1



설경구는 ‘지하철 1호선’을 향한 남다른 애정도 내비쳤다. “11명의 배우가 80개 넘는 역을 모두 소화하는 것이 매력적이에요. 무엇보다 김민기 자체가 이 공연의 매력이죠. 공연 자체가 김민기라는 사람을 닮았어요. 김민기 냄새가 나잖아요.(웃음)”


설경구는 학전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공연을 올린 이정은과의 추억도 꺼냈다. 둘은 오는 31일 개봉을 앞둔 이준익 감독 영화 ‘자산어보’에서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대학교 때 오누이처럼 친했어요. 둘 다 피부가 하얘서 백돼지. 백돼지 오누이로 불렸어요. 학교 다닐 때 연극을 같이 했었죠. 제가 ‘지하철 1호선’ 초연 끝나고 재연을 준비하면서 이정은이 생각나서 학전에 추천했어요. 꽤 오래 같이했죠. 이미 잘 돼야 했던 배우고 자신감이 찬 배우예요. 제가 봤을 때는 늦었어요. 훨씬 더 전에 잘 됐을 텐데. 늦은 만큼 대형 사고를 치더라고요.(‘기생충’ 칸,오스카 수상) 학교 다닐 때부터 자연스러운 연기의 대가였어요. 빨리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가 끝나야 할 텐데. 이 상황만 지나가면 바로 한 잔 깝니다. 허허”


학전을 기억하는 사람들, 뿌리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 한, 학전은 그 자리에 계속 있어줄 것이다. 30년 간 고픔과 풍요의 줄다리기를 이어온 무게를 가늠하기 힘들 터. 그들이 어떻게 학전을 기억하고 지켜나갈지, 지나온 세월을 자양분 삼아 앞으로 또 30년 어떤 역사를 써내려갈지, 이후 행보가 기대된다.



서울 동숭동 대학로에 위치한 극단 학전 블루 소극장 전경. 사진= 김태윤 기자(111355)

서울 동숭동 대학로에 위치한 극단 학전 블루 소극장 전경. 사진= 김태윤 기자(11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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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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