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회 전주영화제⑤]스르단 고루보비치 감독 "'아버지의 길' 존엄성 찾는 여정"

[22회 전주영화제⑤]스르단 고루보비치 감독 "'아버지의 길' 존엄성 찾는 여정"

최종수정2021.05.02 08:00 기사입력2021.05.0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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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현장
개막작 '아버지의 길'
스르단 고루보비치 감독 인터뷰
세르비아 사회 부조리
존엄성 회복 과정에 방점

[전주=뉴스컬처 이이슬 기자]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는 극빈 노동자의 삶을 다룬 영화 ‘아버지의 길’을 개막작으로 상영했다. 작품을 연출한 세르비아 출신 스르단 고루보비치 감독은 우리에게 묻는다. 무엇이 부모를 부모답게 하는가. 영화는 부패, 관료주의, 사회 시스템을 꼬집으며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든다. 리얼리티 있는 연출을 통해 세르비아의 현실을 보여주지만, 감독은 부조리를 꼬집는 데 방점을 찍지 않는다. 영화는 결국 사회에서 거부당한 남성이 본인의 존엄성을 찾는 이야기가 핵심이다.


실직 후 밀린 월급도, 퇴직 수당도 받지 못한 채 일용직 노동을 전전하는 니콜라(고란 보그단 분)는 아이들을 향한 사랑으로 하루하루 지탱한다. 빠듯한 생활에 아내는 자살을 시도하고 목숨을 건지지만 사회복지센터는 아동 긴급보호조지를 내린다. 남매는 위탁가정에 맡겨지고 니콜라는 아이들을 찾고 싶지만, 가난 때문에 함께 하지 못한다. 니콜라는 세르비아 중앙정부가 있는 베오그라드까지 가서 직접 장관을 만나기로 한다. 300km를 걷어 온몸으로 이야기한다.


[22회 전주영화제⑤]스르단 고루보비치 감독 "'아버지의 길' 존엄성 찾는 여정"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되어 관객상과 에큐메니칼 심사위원상을 받은 ‘아버지의 길’은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했다. 감독은 “영화에 차용한 부분은 아이가 아이를 잃고 목적지까지 걸어간다는 내용이다. 이를 제외한 모든 부분은 완전히 각색됐다. 모티프만 따오고 나머지는 모두 픽션화 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빈곤한 개인이 부패한 조직에 대응하는 모습을 통해 사회 부조리 등 다양한 메시지를 함의한다. 가장 전하고자 한 바는 무엇일까. “부패, 관료주의, 사회 시스템의 부조리를 메시지로 내세웠다기보다 이를 통해 세르비아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며 “사회에서 거부당한 남성이 본인의 존엄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똑바로 사회를 바라보고 가족을 찾아가며 존엄성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니콜라는 건조하다. 격렬하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는 감독의 의도가 깔린 연출이다. 스르단 고루보비치는 “니콜라가 굉장히 가난하다. 극심하게 빈곤한 사람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조차 사치라고 한다. 흔히 일반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감정을 드러내지만 그들은 동물처럼 생존한다. 감정을 드러내는 행위가 약점처럼 여겨지기도 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니콜라는 침묵과 눈빛을 통해 더 명확하게 감정을 드러낸다. 그래서 그의 여정과 투쟁은 조용하지만 조용하지 않다.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이 드는지, 어떤 영혼의 울림이 있는지 침묵을 통해 그리고 싶었다. 3개월간 시나리오를 보며 논의하고 리허설하며 만들었다. 고란 보그단한테 체중감량을 요청했고 20kg을 뺐다. 배우도 살이 빠진 후 몸을 낯설어하기도 했다. 배우가 리얼리티를 충실한 자세로 대하길 바랐다. 자칫 거만해 보여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빈곤한 상태에 진심으로 다가가길 바랐다.”


[22회 전주영화제⑤]스르단 고루보비치 감독 "'아버지의 길' 존엄성 찾는 여정"


아이들을 되찾기 위해 300km를 걸어가는 니콜라의 모습은 달걀로 바위치기, 맨땅에 헤딩처럼 여겨져 더 가혹하게 다가온다. 이를 두고 감독은 “개인의 희생을 통해 자신을 찾는 과정이라고 봤다. 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한 개인적인 몸짓이다”라고 강조했다.


니콜라의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남편의 전 직장을 찾아가 체불된 임금을 달라며 극단적 행동을 하는 첫 장면부터 충격적이다. 강렬하게 영화의 문을 연 장면 촬영에 관해 감독은 “고대 비극처럼 연출하고 싶었다”고 의도를 밝혔다. 그는 “그 장면을 촬영하기가 힘들었다. 리얼리티를 위해 대역을 쓰고 싶지 않았다. 촬영용 콜드 파이어를 사용했고 몸에도 보호장치를 완벽에 가깝게 해서 화상을 입지는 않았다”라고 떠올렸다.


‘아버지의 길’을 비롯해 ‘트랩’까지. 스르단 고루보비치의 작품에는 아버지의 부성애가 인장처럼 찍혀있다. 이를 짚자 그는 “만드는 과정이나 내면의 영혼에서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이야기를 만든다”고 답했다.


“항상 현실과 맞닿아있는 사회 문제에 관심이 있다. 일상에서 볼 수 있지만 간과할 법한 문제를 소재로 찾는다. 누군가 ‘좋은 영화가 어떤 영화냐’는 질문에 ‘좋은 영화란 내가 믿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 말이 내게 큰 영향을 끼쳤다. 작품을 통해 세르비아의 사회 문제를 이야기하고 영화를 통해 예술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2회 전주영화제⑤]스르단 고루보비치 감독 "'아버지의 길' 존엄성 찾는 여정"


고루보비치 감독은 자신의 영화관을 설명하며 익숙한 이름을 꺼냈다. 현실과 맞닿아있는 소재를 주로 영화에 녹여내는데 어디에서 소재를 찾느냐는 질문에 감독은 “제가 생각하기에 영화 소재를 찾는 방식과 과정이 한국 영화감독 이창동과 비슷하리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영화는 진정한 양육자의 조건이 무엇인지 묻는 동시에 이를 감히 누가 판단 할 수 있냐고 묻는다. 국가가 이러한 질문에 답을 내릴 주체가 맞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감독은 “빈곤층은 굉장히 빈곤하다. 숨쉬기 어려울 만큼 극심한 빈곤을 겪고 있지만, 우리 레이더망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세르비아가 이렇게까지 가난하지는 않지만, 일부 지역에 극심한 빈곤층이 살고 있다. 그들은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데 이들이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기본적이고 정상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아버지의 길'은 세르비아에선 강한 반응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건 우리 현실이 아니라는 사람들이 있는 한편, 세르비아인의 삶 그 자체라는 이들도 있었다. 정치적 논쟁으로까지 번졌다. 세르비아 정치인들은 세르비아를 부정적인 모습으로 내보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슬프지만, 세르비아의 이런 이미지는 정말로 우리 현실이다. 정치인들은 그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이 영화가 예상밖에, 그리고 부당하게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위한 세르비아 대표작(국제영화상 부문)으로 뽑히지 않았을 땐 큰 소란이 있었고 타블로이드 언론들은 나를 반역자, 국가의 적으로 선포하기까지 했다. 세르비아 정치 풍속상 으레 있던 일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걱정되거나 하진 않지만 말이다."



사진=전주국제영화제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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