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비밀의 정원' 존중의 시선으로 바라본 위로와 치유

[영화리뷰]'비밀의 정원' 존중의 시선으로 바라본 위로와 치유

최종수정2021.04.03 09:00 기사입력2021.04.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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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밀의 정원' 리뷰

[뉴스컬처 이이슬 기자] 정원은 출근길 정류장에서 간발의 차로 버스를 놓친다. 한숨을 훅 내쉬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정원 씨죠? 10년 전 신고한 사건의 범인이 잡혔습니다. 진술조서를 다시 써야 해서요." 전화 한 통에 잊고 지내온 그날이 다시 번개처럼 스친다. 도시의 소음은 정적으로 바뀌고 가슴이 저려온다. 고등학생 때 원치 않은 사고를 당한 후 세월에 깊이 묻어둔 감정들이 고개 들자 불안함을 느낀다.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을 마주하는 것도 그에게는 큰 고통이다.


영화 '비밀의 정원'은 박선주 감독 단편 '미열'(2017) 장편으로 확장시킨 작품이다. 전편에 이어 배우 한우연과 전석호가 부부로 등장하고 염혜란, 유재명 두 베테랑이 든든히 극을 받친다. 정원(한우연 분)은 남편 상우(전석호 분)와 이사를 준비하며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그들의 곁을 다정하고 든든한 이모 혜숙(염혜란 분)과 이모부 창섭(유재명 분)이 지킨다. 수영강사인 정원은 평범하고 행복한 일상을 보내던 중 그렇게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영화리뷰]'비밀의 정원' 존중의 시선으로 바라본 위로와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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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는 기분이 들어요"…고개를 떨군 채 힘없이 말하는 정원을 향해 혜숙은 말한다. "뭘 속여. 너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정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모든 글자에 힘을 꼭꼭 주며 말한다. 이는 극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대사다. 어쩌면 이 세상 모든 피해자를 향해 우리가 모두 하고 싶은 말인지도 모를 터. 정원은 잘못한 게 없는데도 계속해서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오래 사로잡혀온 내면의 상처를 온전히 마주하기란 쉽지 않다.


목공소에서 일하며 아내와 행복한 일상을 보내던 상우는 정원의 일을 우연히 알게 되고 부부의 소중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고민한다. 자신의 상처는 회복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정원은 이를 정면으로 가리키는 상우가 불편하다. 마주하기 버거운 지난 시간이 불편한 것이다. 동생과 엄마의 관계도 어긋나있다. 가족 구성원에겐 각기 다른 상처와 트라우마가 있다. 어찌하지 못한 감정들을 추스르며 가족은 조심스럽게 마주한다.


우연과 상우는 범인의 재판에 참석한다. 판사는 "피해자에겐 공소시효가 없다는 말이 있다"며 형을 내린다. 범인은 철창에 갇히며 죗값을 치르지만 우연에게 남은 감정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영화는 섬세하고 사려 깊게 치유의 과정을 비춘다. 천천히 흐르는 시간처럼 일상 속 이해와 유대를 찬찬히 그려간다. 존중의 시선을 견지하며 서로를 지지하고 보듬는 과정을 담담히 보여준다. 자극적인 장치를 배제하면서도 예리하게 포착한 감정의 편린들이 빛난다. 그 사이 조심스럽게 피어나는 희망이 눈부시다.



[영화리뷰]'비밀의 정원' 존중의 시선으로 바라본 위로와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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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쏟아지는 폭우, 수영장에 가득 찬 물은 정원의 심리를 대변한다. 예측할 수 없이 쏟아져 감당하기 벅찬 비바람. 고요하고도 무섭게 들어찬 물은 이를 상징하는 메타포다. 따뜻한 시선으로 가만히 들여다보며 치유와 메시지를 전한다.


'비밀의 정원'은 연기를 보는 재미도 크다. 영화는 내밀한 감정들의 치열한 순간을 그대로 포착한다. 한우연은 충무로의 발견이다. 만만치 않은 무게를 깊게 소화하며 존재감을 발휘한다. 특히 염혜란, 전석호, 유재명은 등장과 동시에 공기를 묵직하게 바꾸는 호연을 펼친다. 수십번의 고민을 거듭한 후에야 입 밖에 꺼냈을 대사 사이사이의 땀방울이 영화를 빛낸다. 러닝타임 110분. 12세 이상 관람가. 4월 8일 개봉.



사진=영화 스틸컷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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