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오스카 新역사' 윤여정이 개척한 유의미한 길

최종수정2021.04.26 17:33 기사입력2021.04.26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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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윤여정 韓배우 최초 女조연상
재치 있는 수상소감 화제
플랫폼 확장, 기회 늘어나

[뉴스컬처 이이슬 기자] “세상에 우리가 오스카까지 왔구나, 구경이나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왔어요.” 오스카 무대에서도 한결같았다. 배우 윤여정은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인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받으며 한국영화사에 새 기록을 세웠다. 75세 나이로 거둔 쾌거다. 올해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로 인한 팬데믹 여파로 2월이 아닌 4월에 개최됐다.


앞서 오스카 레이스에서 윤여정은 북미 다수 영화제에서 트로피를 휩쓸며 오스카에 한발 다가갔다. 미 비평가위원회부터 LA, 워싱턴 DC,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뉴욕 온라인, 그레이터 웨스턴 뉴욕, 오클라호마, 캔자스시티, 세인트루이스, 뮤직시티, 노스캐롤라이나, 노스텍사스, 뉴멕시코, 샌디에이고, 아이오와, 콜럼버스, 사우스이스턴, 밴쿠버, 디스커싱필름, 미국 흑인, 피닉스, 온라인 여성, 할리우드, 디트로이트 비평가협회와 미국 여성 영화기자협회, 라티노 엔터테인먼트 기자협회, 팜스프링스 국제 영화제, 골드 리스트 시상식, 선셋 필름 서클 어워즈, 국제 온라인 시네마 어워즈 등 다수 영화제를 석권한 것. 특히 오스카의 바로미터라 여겨지는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차지하자 국내외 시선이 모아졌다.


사진=오스카 홈페이지

사진=오스카 홈페이지


윤여정 오스카 새 역사

윤여정은 26일 오전(한국시각)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A) 유니언스테이션·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감독 정이삭)로 여우조연상을 차지했다. 아시아 배우가 해당 부문에서 노미네이트 된 것은 '사요나라'(1957) 우메키 미요시, 쇼레 아그다슐루(2003) '바벨'(2007) 키쿠치 린코에 이어 네 번째다. 아시아 배우로는 일본계 배우 우메키 미요시에 이어 63년 만에 두 번째 여우조연상 수상자로 기록됐다. 남우조연상은 캄보디아인 행 응고르가 1985년 '킬링 피드'로 유일하게 수상한 바 있다.


한국인 배우로는 최초 기록이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작품상, 감독상 등 4관왕에 오르며 한국영화사 최초의 오스카 기록을 썼다. 그러나 연기상에는 노미네이트 되지 못해 일말의 아쉬움을 남겼다. 올해 윤여정이 연기상까지 받으며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간 것이다.


오스카를 앞두고 미국 내 주요 외신은 윤여정의 여우조연상 수상이 유력하다는 관측을 앞다퉈 내놓았다. 영국 아카데미 수상과 올해 오스카의 향방을 예측할 때 윤여정이 무리 없이 받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심지어 윤여정이 올해 오스카 무대에서 어떤 수상 소감으로 즐겁게 할지 주목하는 분위기였다. 이변은 없었다. 윤여정은 무난하게 여우조연상에 안착했다.


‘미나리’를 제작한 플랜B의 수장 브래드 피트가 시상자로 무대에 오르자 윤여정의 수상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브래드 피트는 윤여정의 이름을 정확한 발음으로 호명했고, 무대에 오른 윤여정은 “저희 영화 찍을 때는 어디 계셨나요”라며 재치 있게 반겼다. 그는 다소 긴장된 모습을 보이면서도 “글렌클로즈와 같은 대배우와 어떻게 경쟁을 하겠냐”며 “한국 배우에 대한 미국인들의 친절, 호의 덕에 수상했다”고 겸손한 소감을 전했다.


윤여정은 시상식이 끝난 후 국내 특파원과 가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는 솔직한 이야기를 전했다. 오스카 수상을 응원해준 국내 팬들의 응원에 관해 묻자 그는 “상을 타서 정말 감사하다. 국가대표 운동선수들의 심정을 알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영화를 찍으며 계획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많은 사람이 성원해주는데 못 받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다. 눈에 실핏줄이 다 터졌다.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 영광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온 국민이 응원을 보낼 때 축구팀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또 김연아 선수는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겠더라. 난생처음 받는 스트레스였다.”


오스카를 기점으로 해외 러브콜은 없는지 묻자 윤여정은 “영어를 못 해서 해외에서 들어올 일은 없다”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오스카까지 가는구나, 구경이나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왔다”고 말해 웃음을 줬다.


[돋보기]'오스카 新역사' 윤여정이 개척한 유의미한 길


"모두 평등한 사람, 서로 끌어안아야" 화제가 된 수상소감

윤여정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남다른 소신을 드러낸 솔직한 발언으로 주요 외신의 시선을 붙잡았다. 이날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가 마련한 온라인 기자 간담회에서 아시아 영화를 향한 관심과 할리우드 시장의 확장에 관한 질문을 받고 “무지개도 7가지 색깔이 있다. 여러 색깔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고 백인과 흑인, 황인종으로 나누거나 게이와 아닌 사람을 구분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따뜻하고 같은 마음을 가진 평등한 사람이다. 저는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끌어안아야 한다.”


윤여정은 솔직하기로 유명하다. 최근 몇 년 사이 영화 개봉을 앞두고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주어진 질문에 속내를 거침없이 대답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여느 기성세대와 달리 쿨하고 있는 그대로 생각을 유쾌하게 전했다. 그 모습이 개성으로 읽히며 회자된 바. 과연 전 세계 시청자 시선이 쏠리는 오스카 무대에서는 어떨지 궁금했다. 다소 부담되는 무대인 만큼 정제된 언어와 준비된 소감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는 빗나갔다.


윤여정은 오스카에서도 솔직했고 그래서 더 빛났다. 현장에 자리한 영화인 다수는 그의 유쾌한 발언에 박수와 웃음으로 화답했다. 가장 눈여겨볼 점은 위축되지 않고 유머를 구사하는 등 당당한 모습으로 마이크 앞에 섰다는 점이다.


사진=후크엔터테인먼트

사진=후크엔터테인먼트



75세 아시아·여성 배우가 닦은 길

1947년생인 윤여정은 1966년 동양방송(TBC) 3기 공채 탤런트로 입문했다. 이후 영화 '하녀'(1960)로 이름을 알린 김기영 감독의 '화녀'(1971)로 충무로에 입성해 그해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과 대종상 신인상을 받으며 최고 전성기를 맞았다. 이후 1975년 결혼 후 미국에 거주하며 잠시 공백을 가졌으며, 이혼 이후 13년 만에 연예계에 복귀한 후 더욱 활발히 연기 활동을 이어갔다. 영화 '바람난 가족'(2003), '여배우들'(2009)로 충무로에 복귀했으며, 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2005), '내 마음이 들리니'(2011) 등에서는 깊이 있는 감정 연기로 안방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스크린 활약이 두드러졌다. 임상수 감독 '바람난 가족'(2003)에서는 투병 중인 남편을 뒤로한 채 불륜을 선언하는 시모 역으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어 '돈의 맛'(2012), '장수상회'(2015),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 '계춘할망'·'죽여주는 여자'(2016) 등에 출연했다.


이재용 감독과 '여배우들'(2009)과 '죽여주는 여자'(2016) 작업을 함께 했으며, '하하하'(2009), '다른 나라에서'(2011), '자유의 언덕'(2014),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 등을 통해 홍상수 감독과도 손발을 맞췄다. '죽여주는 여자'(2016)를 통해서는 종로 일대에서 가난한 노인들을 상대하는 박카스 할머니를 연기하며 어두운 이면을 통해 인간 욕망을 그려냈다.


올해 75세, 55년 차 배우 윤여정의 이번 수상은 많은 가능성을 열어둔 행보로 분석된다. 전 세계 플랫폼이 확장되며 다양한 영화를 선보일 기회가 생겼고 이를 통해 얼마든지 오스카 무대를 밟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윤여정의 수상을 통해 이러한 가능성을 입증했다. 윤여정은 노인이자 여성이고 아시아인이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수상 모습을 미국 할리우드 현지에서 취재하며 믿을 수 없었는데, 오늘 윤여정의 모습은 국내 영화인들에게 자신감을 안긴 분위기로 읽힌다. 오늘 윤여정이 수상하는 모습을 보며 다수 한국인 배우가 용기를 가졌으리라. 제2의 윤여정, 제2의 봉준호를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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