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조영남은 빠져" 상은 윤여정이 받았는데, 인터뷰가 웬말

[포커스]"조영남은 빠져" 상은 윤여정이 받았는데, 인터뷰가 웬말

최종수정2021.04.27 14:04 기사입력2021.04.2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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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 오스카 여우조연상
조영남 인터뷰 도마 위
왜 그에게 소감을 묻나
개인의 승리에 복수가 웬 말
가정 버려놓고 눈치 챙겨야
온라인상 거센 비판

[뉴스컬처 이이슬 기자] 무례하기 짝이 없다. 최고의 자리에서 축하만 받아도 모자랄 터인데, 누가 바람나 이혼한 전 남편을 소환하나. 또 입이 열 개라도 모자랄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시시콜콜 늘어놓나. 한국인 배우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이 전 세계 주목을 받았다. 모두가 박수를 보낸 가운데, 국내 일부 언론이 먼 옛날 외도로 이혼한 전(前)남편이자 현재 아무런 관계도 없는 조영남에게 수상 소감을 묻는 촌극이 벌어졌다. 인터뷰에 나선 조영남의 경솔한 발언이 뭇매를 맞고 있다.


윤여정은 26일(한국시각)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A) 유니언스테이션·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감독 정이삭)로 여우조연상을 차지했다. 아시아 배우가 해당 부문에서 노미네이트 된 것은 '사요나라'(1957) 우메키 미요시, 쇼레 아그다슐루(2003) '바벨'(2007) 키쿠치 린코에 이어 네 번째다. 일본계 배우 우메키 미요시에 이어 63년 만에 아시아 배우 두 번째 여우조연상 수상자로 기록됐다. 남우조연상은 캄보디아인 행 응고르가 1985년 '킬링 피드'로 유일하게 수상한 바 있다.


사진=뉴스1

사진=뉴스1



오스카는 국제영화제가 아니다. 미국 내 가장 큰 영화 시상식이다. 영화배우로서 오스카는 꿈의 무대이고, 할리우드는 최고의 공간이다. 많은 이가 동경하고 바라던 무대에서 한국인 배우가 미국 영화 '미나리'로 큰 영광을 차지한 것이다. 윤여정은 올해 한국 나이로 75세다. 55년 차 배우로 꾸준히 연기 활동을 이어왔고, 전 세계가 주목하는 오스카에서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한국영화사라는 거창한 잣대를 대기보다 윤여정의 개인 승리라는 생각이 든다"는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이는 어디까지나 윤여정 개인의 영광이다.


윤여정은 1947년 태어나 1966년 동양방송(TBC) 3기 공채 탤런트로 입문했다. 이후 영화 '하녀'(1960)로 이름을 알린 김기영 감독의 '화녀'(1971)로 충무로에 입성해 그해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과 대종상 신인상을 받으며 최고 전성기를 맞았다. 이후 1975년 가수 조영남과 결혼 후 미국에 거주하며 잠시 공백을 가졌으며, 이혼 이후 13년 만에 연예계에 복귀한 후 더욱 활발히 연기 활동을 이어갔다. 조영남은 '어느 날 사랑이' 등의 책과 인터뷰에서 자신의 외도 때문에 이혼한 것이라고 밝혀왔다. 이후 윤여정은 두 아들의 양육을 위해 국내에 들어와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요즘이야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오랜 공백에 '이혼녀'라는 낙인까지 찍혀 배우로 자리 잡기는 쉽지 않았다.


윤여정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한국에서 결혼한 여성 배우는 배우 생활이 끝났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결혼 당시 연기를 그만두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됐다. 이혼은 주홍글씨처럼 새겨졌다. 나는 졸지에 '남편에게 순종하고 결혼이라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규칙을 어긴 사람이 되어 버렸고, 고집이 센 여자처럼 여겨졌다. 이혼 이후 시간은 끔찍했다. 두 아들을 양육하기 위해 어떤 역할이라도 맡기 위해 노력했다. 자존심은 내게 중요치 않았고 나는 더 성숙해졌다."


하지만 윤여정은 멈추지 않고 연기했다. 영화 '바람난 가족'(2003), '여배우들'(2009)로 충무로에 복귀했으며, 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2005), '내 마음이 들리니'(2011) 등에서는 깊이 있는 감정 연기로 안방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스크린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임상수 감독 '바람난 가족'(2003)에서는 투병 중인 남편을 뒤로한 채 불륜을 선언하는 시모 역으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어 '돈의 맛'(2012), '장수상회'(2015),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 '계춘할망'·'죽여주는 여자'(2016) 등에 출연했다.


'미나리'는 국내 제작사에서 만들고 배급한 한국영화가 아니다.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가 설립한 플랜B가 제작하고 다수 작품의 오스카 레이스를 이끈 북미 배급사 A24가 배급을 맡은 미국 영화다. 연출은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리 아이작 정) 감독이 맡았으며, 남성 주인공으로는 한국계 미국인 배우 스티븐 연이 나섰다. 윤여정은 극 중 할머니 순자를 자신만의 유니크한 빛깔로 잘 지어 보였고 이는 전 세계인의 가슴에 닿았다. 배우가 강산이 5번이나 바뀌는 동안 갈고 닦은 자신만의 보석 같은 매력이 빛을 낸 것이다.


그렇기에 오스카의 이번 수상을 두고 철저히 윤여정 개인의 영광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노인이자 여성, 아시아 배우가 오스카에서 수상한 것은 필드에서 일하는 많은 배우, 영화인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엄청난 동기부여이자, 자신감을 얻게 하고, 영역의 확장 가능성을 입증한 것이다. 윤여정이 갈고 닦은 길을 바라보며 많은 후배가 꿈 꿀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사진=뉴스1

사진=뉴스1



윤여정의 수상 소식에 각계각층의 축하가 이어졌다. 충무로에서 호흡을 맞춰온 동료 선후배와 영화인들. 문재인 대통령까지 수상을 축하했다. 외신에서는 윤여정의 재치 있는 수상소감을 조명하며 극찬을 보냈다. 방송사에서도 각종 특집 프로그램을 앞다퉈 편성하며 관심을 입증했다. 그런데 갑자기 일부 매체가 수십 년 전에 이미 남남이 된 조영남에게 연락을 취해 인터뷰 기사로 작성해 보도했다.


조영남은 인터뷰에서 "그 여자가 나한테 바람피운 남자에 대한 통쾌한 복수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를 본 다수 네티즌은 '실언'이라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조영남은 윤여정의 고귀한 성과를 한 여성의 복수쯤으로 폄하한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남자를 사귀지 않은 것에 대해 한없이 고맙다"라며 망언을 이어갔다.


조영남을 '위해' 윤여정이 '안 사귄 것'이라는 표현은 철저히 조영남 개인적인 견해이며, 이번 윤여정의 수상과 연결 지을 수 없는 발언이다. 이를 두고 '쿨하다', '재치 있다'라고 실은 언론의 태도도 아쉽다. 쿨한 게 아니라 실언이다. 그대로 옮겨선 안 될 말이었다. 농담이라 해도 무례한 말이다. 더군다나 조영남은 윤여정에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입장 아닌가. 말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말이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났다지만 인터뷰를 정중히 고사했어야 맞고, 응했다 하더라도 경솔한 말은 삼갔어야 맞다.


가요계 후배들 조차 등을 돌렸다. 밴드 언니네이발관의 보컬 이석원이 조영남의 발언을 강도 높게 비판해 '사이다'라는 반응을 얻고 있다. 이석원은 27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한국 배우 사상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타셨는데 기자들이 34년 전 이혼한 전 남편에게 소감을 물었다. 묻는 기자들도 이해가 안 가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냉큼 말을 얹는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석원은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낄 때 끼고 빠질 땐 빠지는 최소한의 눈치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나마 했다는 말도 기가 막힌 게 '윤여정의 아카데미상 수상이 자기처럼 바람피운 사람에게 최고의 한방'이라니 이 사람의 이 태평양보다 더 큰 자아를 어쩌면 좋을까"라고 지탄했다.


그러면서 "이 사람 머릿속에는 오로지 자기 자신 밖엔 없어서 온 세상만사를 자기와 연결 짓지 않으면 생각이란 걸 아예 하지 못하는 사람 같다. 너무 당연하게도 윤여정의 오스카 수상은 수십 년 전 무책임하고도 부도덕하게 가정을 버린 남자에 대한 한방의 의미는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복수란 상대가 내 안에서 여전히 의미라는 게 손톱만큼이나마 있을 때의 얘기다. 그런데 지금 윤여정에게 조영남이란 한여름에 무심코 손으로 눌러 죽이는 못생기고 해로운 벌레 한 마리보다 못한 존재일 것인데, 무슨 얼어 죽을 한방 어쩌구 쿨한 척인, 왜 이 나이 먹은 남자의 한심한 자아를 이 좋은 날 대중들이 견뎌야 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오스카 인스타그램

사진=오스카 인스타그램



가정을 해보자. 당신의 칠순 잔치에 수십년 전 헤어진, 기억도 가물가물한 옛 연인이 찾아와 "바람피운 남자에 통쾌하게 복수 했네? 다른 남자 사귀지 않아 고맙다"고 말한다면 어떤 기분이겠는가. 윤여정이 지금 딱 그런 심정 아닐까. 물어서는 안 될 말이었고, 걸어서는 안 될 전화였다. 응해서는 안 될 인터뷰였고, 해서는 안 될 답변이었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이 오스카에서 한국영화사 최초로 4관왕에 올랐을 때는 어땠는가. 어떤 언론도 그의 아내와 인터뷰하지 않았다. 개인의 성과라고 바라봤기 때문이다. 윤여정의 이번 수상과 언론의 온도차가 느껴지는 바다.


한 여성 배우의 승리는 '남성 때문에', 혹은 '남성으로 인해' 이룬 것이 아니다. 남녀를 떠나, 개인의 성과를 타인의 시선에서 바라봐야 할 이유는 없다. 그것도 수십년 전에 외도로 그를 떠난 당사자라면 더욱 그렇다. 시간이 꽤 지났으니 이런 발언쯤은 쿨하다 여겨줄 이유도, 권리도 없다. 우리는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2021년에 살고 있다. 세상은 변하고 있고, 이를 마주하지 못하면 도태된다. 언제까지 아무런 상관 없는 사람에게 소감을 묻고 성과를 이룬 비결 따위를 물을 텐가. '갖다 붙이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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