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성의 STAGE pick up]7. 연극 '그을린 사랑'

최종수정2021.06.02 13:24 기사입력2021.06.0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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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유언을 좇는 쌍둥이 남매 이야기
신유청 연출 대표작
남명렬·백석광 등 배우 8인의 활약

연극 '그을린 사랑'은 작가와 배우, 연출가로도 활약하고 있는 레바논 태생의 캐나다 작가 와다즈 무아와드의 원작으로 국내에서도 이미 영화와 몇 차례 연극으로 공연된 바 있다.


'그을린 사랑'은 작가의 연작 시리즈 네 편 중 두 번째 작품으로 레바논 내전을 통한 전쟁의 참혹함과 피폐함을 야기한, 중동의 정치적 상황으로 빚어진 가족사의 처참한 운명과 고대 그리스 비극의 정점으로 평가되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를 연상시키는 비극적 아이러니가 내재 된 서사로 목이 메이고 숨이 막힐 것 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묵 할 수 밖에 없는 묵직한 연극적 비장미를 경험하게 한다.


원작자 와다즈 무아와드는 1965년 레바논 출생으로, 1975년 내전으로 프랑스로 망명했으며 이후 1983년 캐나다로 이주했다. 2016년 이후로 프랑스 파리의 라 꼴린 국립극장의 예술감독으로 활동했으며, 프랑스 극예술작가, 작곡가 협회(2004)와 아카데미 프랑세스(2009), 프랑스 문인협회(2012) 등으로부터 상을 받았다.


[유희성의 STAGE pick up]7. 연극 '그을린 사랑'


작품은 캐나다에 살다가 생을 마감한 중동 출신의 여인 '나왈 마르완'이 쌍둥이 자녀에게 남긴 두 통의 편지를 각기 지정된 수신인에게 전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공증인 '르벨'의 독백으로부터 시작된다.


1943년 11월, 레바논에서 그리스도와 이슬람 세력 간의 갈등으로 점철 된 레바논 내전이 배경이며 참혹한 전쟁의 학살과 폭력의 끊임없는 반복 속에서 가족과 개인의 몰락과 이어짐, 그 운명의 소용돌이에 있는 나왈의 할머니 '나지라'부터 나왈의 어머니 '지안', 그리고 '나왈 마르안'의 3대에 걸친 여성 서사와 살아남은 나왈의 쌍둥이 딸 '쟌느', 아들'시몽'에 대한 가족에 얽힌 처절한 운명을 조명한다.


쌍둥이 남매의 현재와 어머니의 과거가 교차 되면서, 어머니가 임종하기 전까지 침묵 할 수 밖에 없었던 '나왈 마르완'의 삶을 추척하고 치열하게 그려낸다. 그리하여 '엘키엘' 감옥의 수감번호 72번, 노래하는 여인 나왈의 삶의 모습들을 찾는 지독한 여정이 점차적으로 드러난다.


누나인 쟌느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를, 동생인 시몽에게는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형을 찾기 위한 편지의 내용을 우여곡절 끝에 받아 들인다. 그렇게 남매는 무엇에 이끌리듯,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모든 면을 볼 수 있는 다각형의 중심과 같은 세상 밖으로 나아 간다.


무엇보다도 생전에, 알 수 없는 이유로 여러 해 동안 침묵을 지켰다는 어머니의 알 수 없는 흔적과 행방을 찾아 중동으로 떠난 남매는, 그곳에서 종교로 인한 전쟁과 폭력, 그로 인한 슬픈 역사와 고통으로 얼룩진 어머니의 과거와 마주치고 풀리지 않은 어머니의 침묵을 찾아 나선다. 또한 유서에 남긴 '세상과 등질 수 있게 자신을 엎어서 매장해 달라'고 한 수수께끼같은 유언을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작품은 1+1=2가 아닌 1이라는 기구한 운명의 수학적 정의를 인지하는 순간, 어머니가 취했던 침묵처럼, 진실의 문 앞에서 누구라도 침묵 할 수 밖에 없는 불가항력의 침묵을 경험하게 한다.


[유희성의 STAGE pick up]7. 연극 '그을린 사랑'


최근 가장 주목받으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연출가 신유청은 이 작품으로 2020 백상연극대상 연극상을 수상했다. '와이프' 등 최근 작품에서 매우 상징적이고 연극적인 동선과 메소드로 현대 연극의 무한 성장과 부흥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줬던 것처럼, 빈 무대에서 미니멀 하면서도 상징적인 Led 라인 조명의 무대 기호 같은 세트와, 배우와 대사만으로도 극적 상황과 상태를 충분히 인지하고 어느새 수긍하게 하며, 그만의 연극적 스타일의 깊이와 넓이의 진수를 만끽 할 수 있게 했다.


텅 빈 무대에, 그토록 참혹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변종처럼 나타나는 악의 씨앗 같은 증후군으로 이어져가는 전쟁과 종교, 탄압과 굴욕, 이어진 침묵과 파괴된 운명에 대한 묵직하고 침울한 담론 같은 명제를 던진다.


공증인 르벨 역의 남명렬 배우의 안정적인 존재감의 무대 중심으로부터 나왈 역의 이주영과 사우디 역의 이진경의 호흡과 찰진 상호교감, 쌍둥이 아들 시몽과 첫사랑의 풋풋한 열정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와합 역을 완전 다른 사람처럼 감쪽같이 연기 해 낸 이원석 배우와 더불어 우범빈 배우와 하준호 배우의 능청스럽고 완전 적합한 일인 다역의 연기 변신, 파괴적이고 폭력적이기까지 한 동생을 어르고 달래며 기어이 동참하게 하는 끈기와 지구력을 보여준 쟌느 역의 황은후 배우, 더군다나 니하드 역의 백석광 배우의 존재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다.


영화 '배트맨'의 조커 역을 유쾌하고 익살스럽게 때로는 광끼 넘치는 놀라움으로 연기한 잭 니콜슨, '다크나이트'의 음침하고 잔인한 느낌의 순수한 악의 그 자체 같던 영화 '스파이더 맨'의 제이크 질렌할, 그리고 또 다른 조커로 죽음이 삶보다 가치 있기를 추구하며 혼란스러워하는 조커를 연기한 호아킨 피닉스를 한 몸에 합쳐놓은 것 같은 바로 그런 특별한, 백석광 배우! 그렇게 소수정예의 8명의 배우로 LG 아트센터의 대극장 무대를 가득 채우는 멋진 연기 앙상블로 신유청 식 연극 무대를 완성했다. 배우들의 철저하고 놀라운 연기 변신과 동선, 정확한 대사 전달력은 작품의 품격을 한층 높이며 매력적인 연극의 멋을 만끽하게 했다.


사진=LG아트센터


[유희성의 STAGE pick up]7. 연극 '그을린 사랑'

[유희성 공연 칼럼니스트 겸 공연 연출가]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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