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연극 '빈센트 리버' 진흙길을 달려 마주한 그날의 진실

[공연리뷰]연극 '빈센트 리버' 진흙길을 달려 마주한 그날의 진실

최종수정2021.06.06 12:00 기사입력2021.06.0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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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빈센트 리버' 리뷰
진실을 찾아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
우미화·이주승 열연

[뉴스컬처 이솔희 기자] 이제 막 이사를 마친 듯 짐이 쌓여있는 집. 한 여자가 담배를 피우며 창밖을 유심히 바라본다. 그러더니 이내 문을 열어 누군가에게 "들어오라"고 소리친다. 약간의 정적이 흐르고 검은색 슈트를 차려입은 한 남자가 쭈뼛쭈뼛 들어온다. 어떤 사연으로 연결되었는지 쉽게 가늠하기 힘든 두 사람의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남자가 집으로 들어온 그 순간부터 두 사람은 '그날의 진실'을 향해 달려나간다. 그렇게 진실을 마주한 뒤에는, 끈적이고 질퍽거리는 감정이 보는 이의 마음까지 잠식한다. 연극 '빈센트 리버'의 이야기다.


'빈센트 리버'는 동성애 혐오에서 기인한 폭행 살인 사건으로 하루아침에 아들 빈센트를 잃은 아니타와 그런 아니타의 주변을 맴도는 데이비를 무대 위에 펼쳐내는 작품이다. 영국 작가 필립 리들리의 대표적인 희곡으로, 2000년 영국 햄프스테드 극장에서 초연됐다. 이후 세계 각국에서 공연됐고, 올해 처음으로 한국 관객을 만나고 있다.


[공연리뷰]연극 '빈센트 리버' 진흙길을 달려 마주한 그날의 진실


아니타의 아들 빈센트가 죽은 채 발견된다. 동성애 혐오로 인한 폭행 사건 때문이었다. 아니타는 아들의 죽음과 동시에 그가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고, 비난과 동정이 섞인 시선에서 도망치기 위해 살던 집을 떠난다.


빈센트가 세상을 떠난 후부터 아니타의 주변에는 17세 소년 데이비가 맴돈다. 데이비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곳에서 그저 아니타를 지켜본다. 아니타는 데이비를 집으로 초대하고, 데이비는 자신이 빈센트의 시신을 가장 처음 발견한 사건의 목격자라고 밝힌다.


데이비는 빈센트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어수룩한 태도와 흔들리는 눈동자에서 그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여전히 가슴 속에 숨겨져 있음을 짐작게 한다. 아니타 역시 이를 알아차린 듯 때로는 공격적으로, 때로는 부드럽게 데이비에게 다가가며 그의 속내를 끄집어낸다.


서로의 사연을 털어놓으며 아픔을 공유하고, 빈센트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며 두 사람은 점차 마음의 문을 연다. 겉을 빙빙 돌던 대화도 그제야 중심부를 파고든다. 데이비는 동요하는 마음을 애써 숨기며 빈센트와 자신의 이야기, 그리고 빈센트가 세상을 떠난 그날의 이야기를 툭툭 던져놓는다. 그렇게 그날의 진실이 하나둘 밝혀진다.


[공연리뷰]연극 '빈센트 리버' 진흙길을 달려 마주한 그날의 진실


진실이 밝혀질수록, 아니타와 데이비는 물론 보는 이의 마음도 무겁고 찝찝하다. 질퍽한 진흙길에서 한 발자국씩 힘겹게 떼며 목적지에 다다랐는데, 그 목적지가 발버둥 칠수록 깊이 파묻히는 늪인 것처럼 답답하고 절망적이다. 작품의 마지막, 낡은 아파트에 혼자 덩그러니 놓여있는 아니타를 보고 있으면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몸을 휘감는다.


이처럼 '빈센트 리버'는 무대 위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작품의 중심이 되는 인물인 빈센트의 이야기를 통해 비행 청소년들의 범죄,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 그로 인해 피해자임에도 숨어야만 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냈다.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혐오'다. 동성애에 대한 혐오, 싱글맘에 대한 차별, '자신과 다른' 타인을 향한 사회의 편견 등 시대가 변해도 변치 않는 문제들을 작품에 녹여내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안긴다.


작품은 필립 리들리가 태어나고 자란 영국 동부를 배경으로 한다. 이에 작가는 실제 지형과 장소, 분위기를 자세하게 묘사하면서 관객이 사건의 현장을 상상할 수 있게 도와 인물의 감정에 더욱 몰입하도록 했다. 이와 더불어 낮은 조도의 조명, 특히 저무는 해처럼 붉은 주황빛의 조명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두 사람의 심리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단 두 명의 배우가 120분간 무대를 채운다. 아니타 역의 우미화와 데이비 역의 이주승은 탄탄한 호흡으로 관객의 집중을 이끌었다. 우미화는 아들을 잃고 진실을 알게 되는 어머니가 마주하는 여러 감정들을 깊이 있게 그려내며 인물과 하나 된 듯한 열연으로 감탄을 안겼다. 이주승은 '아들 Le Fils', '킬롤로지' 등의 작품에서 아픔을 지닌 소년의 내면을 섬세하게 드러낸 바 있는 만큼, 이번 작품에서도 캐릭터의 내면을 탁월하게 표현했다. 특히 사건의 진실을 털어놓는 독백 장면에서 높은 집중도를 보이며 흡인력 있는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그을린 사랑', '와이프', '녹천에는 똥이 많다' 등 묵직한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을 주로 선보여온 신유청 연출이 함께했다.


'빈센트 리버'는 오는 7월 11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된다.


사진=엠피엔컴퍼니



이솔희 기자 sh040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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